아시아 최초 반려동물 헌혈센터 건국대부속동물병원 ‘KU 아임도그너 헌혈센터’ 직접 가보니
사람처럼 반려견도 사고를 당하거나 질병으로 고통 받으면 수혈 필요…공급이 수요 못 따라가
헌혈 유의사항…만 1~8세 25㎏ 이상 대형견만, 1년에 1~2회 헌혈 권장, 320㎖ 한팩으로 4마리 수혈

서울 광진구 건국대 부속 동물병원에 있는 ‘KU 아임도그너(I'M DOgNOR) 헌혈센터’는 지난해 8월 개소한 아시아 최초의 반려동물 헌혈센터다. (사진= 장헤승 기자)
서울 광진구 건국대 부속 동물병원에 있는 ‘KU 아임도그너(I'M DOgNOR) 헌혈센터’는 지난해 8월 개소한 아시아 최초의 반려동물 헌혈센터다. (사진= 장헤승 기자)

[한국대학신문 장혜승 기자] “헌혈 한 번이 반려견 4마리를 살린다!”

6일 오전 서울 광진구 건국대학교 부속 동물병원에 있는 ‘KU 아임도그너(I’M DOgNOR) 헌혈센터’에 들어서자 제일 먼저 벽면에 붙은 큼지막한 문구가 눈길을 끌었다. 아임도그너 헌혈센터(이하 헌혈센터)는 반려견을 대상으로 헌혈을 진행하는 전문 헌혈센터로 지난해 8월 문을 열었다. 개(Dog)와 헌혈자(Donor)를 합쳐 만든 ‘도그너(DOgNOR)’는 ‘헌혈견’을 의미한다.

반려견도 사고를 당하거나 질병으로 고통 받으면 수혈(치료를 위해 건강한 자의 혈액을 환자의 혈관 속에 주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대비한 헌혈(아픈 환자를 위해 자신의 피를 뽑아 기부하는 것)도 필수다. 현재 국내에서 동물 혈액은 대부분 공혈 동물(혈액 제공용 동물)을 통해 공급되고 있다. 하지만 공장형 사육시설, 매혈 논란 등 윤리적 문제가 제기된 데다 공급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왔다.

‘KU 아임도그너(I’M DOgNOR) 헌혈센터’ 내부 모습. (사진= 장혜승 기자)
‘KU 아임도그너(I’M DOgNOR) 헌혈센터’ 내부 모습. (사진= 장혜승 기자)

헌혈센터는 이 같은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개소한 아시아 최초의 반려동물 헌혈센터다. 아임도그너는 건국대가 2019년부터 현대자동차와 함께 진행하고 있는 반려견 헌혈 캠페인의 명칭이기도 하다. 건국대 부속 동물병원은 2019년 현대자동차 등과 함께 반려견 헌혈을 위한 특수 차량을 제작해 찾아가는 헌혈 캠페인을 전개했다. 이를 계기로 건국대 부속 동물병원과 현대자동차가 함께 반려견 헌혈센터를 열게 됐다.

반려견 헌혈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는 것일까. 헌혈을 하기 위해 이날 센터를 찾은 반려견 ‘두부’, ‘단우’의 헌혈 과정에 동행했다.

헌혈을 위해 센터를 찾은 두부(왼쪽)와 단우(오른쪽)가 옥상정원에서 뛰놀고 있는 모습. (사진= 장혜승 기자)
헌혈을 위해 센터를 찾은 두부(왼쪽)와 단우(오른쪽)가 옥상정원에서 뛰놀고 있는 모습. (사진= 장혜승 기자)

■ 간 수술 필요한 친구 살린 단우 = 생애 처음으로 헌혈에 나선 두부와 단우는 동거하는 가족이다. 단우는 올해로 만 4살이 된 풍산개, 두부는 만 5세가 된 삽살개다. 헌혈센터는 헌혈을 신청한 반려견의 보호자가 원할 경우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오전에 반려견의 거주지에 현대자동차가 기증한 펫 앰뷸런스를 보낸다. 두부와 단우는 펫 앰뷸런스 대신 보호자의 차를 타고 강화에서 2시간 반을 걸려 헌혈센터에 도착했다. 센터에 들어오자마자 두부와 단우는 센터 내부를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둘러봤다.

두부와 단우의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은 건 헌혈센터에 조성된 ‘옥상정원’이다. 푸른 잔디가 깔린 이곳은 헌혈을 하기 위해 센터를 찾은 강아지들이 좋아하는 장소 중 하나다. 

최희재 KU 아임도그너 헌혈센터 책임수의사는 “첫 헌혈에 나선 개들은 헌혈센터 자체가 생소하고 의료진도 낯설기 때문에 긴장감을 많이 느낄 수 있다”며 “반려견들이 헌혈에 대한 두려움을 내려놓고 마음껏 뛰어놀며 안정감을 찾도록 ‘긍정 강화’ 차원에서 센터 내에 정원을 따로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헌혈을 준비하는 동안 두부와 단우의 보호자 김위선 씨(여·61)는 반려견들의 건강에 대한 정보를 의료진과 공유했다. 건강한 사람이 헌혈을 할 수 있듯 반려견도 헌혈을 위해선 몇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몸무게 25㎏ 이상의 대형견 △만 1∼8세의 나이 △매달 심장사상충·구충예방약을 복용 △전염성 질환을 앓지 않은 경우에만 헌혈이 가능하다. 

본격적으로 헌혈에 들어가기 전 보호자 김위선 씨가 의료진과 반려견들의 건강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사진= 장혜승 기자)
본격적으로 헌혈에 들어가기 전 보호자 김위선 씨가 의료진과 반려견들의 건강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사진= 장혜승 기자)

성격이 순한 단우가 먼저 친구를 살리기 위해 나섰다. 단우는 체중계 위에 얌전히 앉아 체중을 쟀다. 체중계에 표시된 단우의 몸무게는 26㎏. 몸무게를 충족한 단우의 다리에서 의료진은 소량의 혈액을 먼저 뽑아냈다. 본격적으로 헌혈을 하기 전 혈액을 검사해 헌혈견의 건강상태를 보다 정밀하게 확인하기 위함이다. 

몸에 바늘이 들어오자 긴장한 단우의 몸 이곳저곳을 쓰다듬어준 의료진은 단우의 몸을 감싸 안은 뒤 헌혈에 나섰다. 혈액은 강아지 목에 있는 혈관을 통해 뽑는다. 목 부위에 있는 혈관이 다른 부위에 있는 혈관보다 두꺼워 비교적 빠른 시간에 굳지 않은 혈액을 안전하게 뽑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단우는 아무런 저항 없이 의젓한 자세로 약 320㎖의 헌혈을 했다.

반려견의 헌혈은 사람과 달리 목을 통해 이뤄진다. 의젓하게 헌혈하고 있는 단우의 모습. (사진= 장혜승 기자)
반려견의 헌혈은 사람과 달리 목을 통해 이뤄진다. 의젓하게 헌혈하고 있는 단우의 모습. (사진= 장혜승 기자)

뽑아낸 혈액은 최대 1개월 내로 모두 소진된다. 지금까지 폐기된 혈액이 전혀 없을 정도로 수혈을 필요로 하는 곳이 많은 탓이다.

“우리 단우, 아주 의젓하네!” 순조롭게 헌혈 과정을 모두 끝낸 단우에게 의료진의 칭찬이 쏟아졌다. 단우는 ‘단 하나밖에 없는 우리 임시보호소 개’의 줄임말로 보호자 김위선 씨가 보호소에서 데려온 강아지다. 최희재 수의사는 “단우가 헌혈해준 혈액은 간수술이 필요한 친구에게 요긴하게 쓰일 것”이라고 말했다. 

두부가 체중을 재도록 하기 위해 보호자가 달래고 있다. (사진 = 장혜승 기자)
두부가 체중을 재도록 하기 위해 보호자가 달래고 있다. (사진 = 장혜승 기자)

■ “용기내준 것만으로도 고마워” ‘아차상’ 수상한 두부 = 이날 단우와 함께 헌혈센터를 찾은 두부도 헌혈에 도전했지만 결국 헌혈을 하진 못했다. 

체중검사 과정에서부터 낯선 환경에 겁을 먹은 두부가 격렬하게 저항하기 시작하자 의료진이 나섰다. 최희재 수의사가 이리저리 두부를 달래봤지만 결국 보호자가 나섰다. 헌혈과 채혈 과정에 보호자 입회는 원칙상 불가하다.

“우리 두부, 여기까지 왔는데 좋은 일하고 가야지.” 걱정 어린 보호자의 말에 의료진이 “좋은 일도 너무 힘들면…”이라고 답했다. 최희재 수의사는 “4년 만에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면서도 “두부가 외부에서 집을 지키려고 데려온 아이라 경계심이 크다. 병원 환경이 낯설고 무서워서 그런 거라 일부러 헌혈을 강요하진 않는다. 여기까지 온 김에 정원에서 놀다 가면 된다”고 위로했다. 

헌혈을 끝낸 두부와 단우가 헌혈센터에서 받은 다양한 기념품들. (사진= 장혜승 기자)
헌혈을 끝낸 두부와 단우가 헌혈센터에서 받은 다양한 기념품들. (사진= 장혜승 기자)

헌혈을 끝낸 단우와 두부는 파란 스카프를 비롯해 센터가 준비한 기념품을 선물받았다. 특히 두부는 친구를 위해 용기낸 공로를 인정받아 ‘아차상’을 수상했다. 반려견 헌혈에 참여한 반려견과 보호자는 헌혈증서 1장당 혈액 제제 1팩 비용을 면제받는 등 다양한 혜택을 누린다.

두부는 친구를 위해 용기낸 공로를 인정받아 ‘아차상’을 수상했다. (사진= 장혜승 기자)
두부는 친구를 위해 용기낸 공로를 인정받아 ‘아차상’을 수상했다. (사진= 장혜승 기자)

두 강아지의 보호자가 헌혈에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두부와 단우의 보호자 김위선 씨는 “보호자들이라면 다 (헌혈을) 하고 싶어할 것”이라며 “대형견 3마리를 키우다 보니 지인이나 주변 사람들이 대형견을 무서워하는 경우가 있는데 대형견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아이들이 사회적 가치가 있는 일을 하게 하고 싶어서 헌혈을 하게 됐다”고 계기를 말했다.

최 수의사는 반려견 헌혈 과정에서 가장 신경쓰는 점으로 “스트레스를 안 받게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빠르고 안전하게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한현정 초대 KU 아임도그너 헌혈센터장. (사진= 장혜승 기자)
한현정 초대 KU 아임도그너 헌혈센터장. (사진= 장혜승 기자)

[미니 인터뷰] 한현정 초대 KU 아임도그너 헌혈센터장 “헌혈, 견생에서 보람되고 뜻깊은 일”

- 가장 기억에 남는 ‘도그너’가 있다면.
“‘설악이’는 도살장에서 구조돼서 발가락도 몇 개 없고 귀도 잘렸는데 그렇게 어려운 환경인데도 너무 착하고 순해서 기억에 남는다. 지금은 다행히도 좋은 보호자를 만나 본인이 행복해지니까 다른 친구들을 도와주고 있다. 3회 이상 헌혈했다. ‘별꽃이’도 빼놓을 수 없다. 별꽃이는 오밤중에도 응급헌혈을 해줬다. 정기헌혈로 보유한 혈액을 냉장고에 보관하는데 다 소진돼서 급하게 수혈 필요한 환자가 발생할 때가 있다. 그럴 때 헌혈견 친구들에게 연락 돌려서 바로 와달라고 하면 밤 12시에도 달려와준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어려울 때 도와줄 줄 아는 민족성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다른 친구들을 살리겠다고 응급헌혈을 와준 것만으로도 존경받아야 한다.”

- 헌혈을 망설이는 보호자와 예비 ‘도그너’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우리는 헌혈견을 ‘헌혈영웅’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사람도 다른 사람을 도운 적이 몇 번 안될 텐데 하물며 내 강아지가 다른 강아지를 도울 기회가 몇 번이나 있겠나. 강아지 입장에서 견생 동안 정말 보람되고 뜻깊은 일이 되지 않을까 싶다. 두 번째로 헌혈해서 이 혈액이 아깝게 쓰이는 일이 없다. 이 혈액으로 살릴 수 있는 강아지가 수백, 수천 마리에 달한다. 실제로 수백 마리를 살리기도 했다.
두 번째로 헌혈 과정에서 건강검진을 하는데 그 과정에서 심장사상충을 조기발견한 아이들도 있다. 정기적으로 헌혈은 일년에 1~2회를 권장한다. 이 과정에서 진드기매개질환이나 헌혈 관련 질환을 다 검사해 주니까 강아지의 정기적 검진 차원에서도 이점이 있다. 나중에 우리 친구들이 수혈받을 일 있을 때 수혈비용도 부담될 수 있는데 헌혈한 친구들은 헌혈 횟수에 따라 건대동물병원에서 수혈비용이 면제된다.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건 우리 강아지가 다른 강아지를 살리는 데 큰 도움을 줬다는 가치다. 실제로 헌혈을 끝내고 보호자들이 센터를 나갈 때 굉장히 뿌듯해하고 ‘우리 개가 견생을 살면서 보람된 일을 했구나’라는 표정으로 귀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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