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석수 공주대 정책융합전문대학원 초빙교수(전 한국교육학술정보원 원장)

한석수 공주대 정책융합전문대학원 초빙교수(전 한국교육학술정보원 원장)
한석수 공주대 정책융합전문대학원 초빙교수(전 한국교육학술정보원 원장)

5월이 되면서 윤석열 정부 1년에 즈음한 평가가 많이 보도된다. 대부분 부정적 평가가 주를 이루는데 교육정책에 대한 평가 역시 박한 편이다. 정부 출범 이후 6개월 정도 장관 공백 사태를 겪은 탓이기도 하겠지만 우선 정부의 교육정책 의제 설정 및 정책 구체화 단계가 매끄럽지 못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물론 교육전문대학원, 사교육비 대책 등 몇몇 추진 사례에서 빚은 혼선도 부정적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교육부는 대통령 업무보고를 통해 ‘모두를 위한 맞춤교육’ 10대 개혁과제를 발표하고 이를 교육개혁 3대 정책으로 묶어 ‘세계 최고 수준의 어린이 교육·돌봄’, ‘세계에서 가장 앞선 디지털 교육’, ‘과감하게 벽을 허무는 대학혁신’ 등을 추진하고 있다. 교육개혁의 성공적 추진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교육정책의 효과성 및 현장 적합성을 높이기 위한 몇 가지 제안을 해본다.

우선, 지속가능한 교육정책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주역적 시각으로 살펴봄은 어떨까. 64괘 중 마지막에 미제(未濟)괘를 두어 기제(旣濟)괘를 이어받는 주역의 지혜를 배울 수 있으면 좋겠다. ‘도올주역강해’에서 기제는 완성이 아닌 완성을 향해가는 과정이고, 미제는 미완이 아닌 완성 이후의 새로운 과정임을 강조한다. 행진하듯 목표를 향해 밀어붙이지 말고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처럼 끝나지 않음을 끝남으로 삼아 현장 중심의 끊임없는 혁신과 변화가 계속되도록 하자는 것이다. 현 정부에서 혹은 임기 내에 성과를 내겠다는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정책이 스스로 성장, 변화, 발전해 나가도록 했으면 좋겠다.

카(E.H.Carr)는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는데, 정책이야말로 미래 지향적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생각이다. ‘학습하는 조직’에서 센게(Peter M. Senge)의 지적처럼 어제의 해결책이 오늘의 문제를 야기하는 것일 수도 있다. 효과적 정책 추진을 위해서는 과거와 끊임없는 대화를 나누며 환류할 수 있어야 한다. 확신했던 과거 정책들의 실제 추진과정과 현재 모습을 반추하며 지금 추진하는 정책이 정부 교체라는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을 과연 어떻게 건너낼 지 4년 후를 내다볼 수 있어야 한다. 미완성 교향곡에 청중들이 시대를 넘어 열광하는 이유는 그들이 새로운 완성의 주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입전형, 사교육 대책, 대학 구조조정 등은 과거 정부에서도 치열하게 추진해왔던 정책들이다. 과거의 논의 및 추진과정, 정책 결과 등을 제대로 곰삭히고 발효시켜 새 포대 찾기에만 급급하지 말고 향기로운 새 술을 빚어낼 수 있어야 한다.

지나치게 맞춤을 강조해 대학들이 양을 그려달란다고 교육부가 양 그리기에만 몰두해서도 안 될 것이다. 《어린 왕자》에서와 같이 ‘너무 늙었다, 염소 같다, 병 들었다’라는 투정을 계속 피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맞춤 제공도 필요하겠지만 대학 스스로 자신의 체구와 취향에 맞는 양을 골라 기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사막에 불시착한 생텍쥐페리가 그랬던 것처럼 고장 난 비행기 엔진 수리가 교육부의 급선무라고 할 것이다. 어쩌면 대학들에는 품 넓은 상자만 그려주면 충분할 일이다.

또한 정치적 흐름에 휩쓸리지 말고 욕먹을 일에도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야 한다. 구조조정과 관련해 대학, 특히 국립대학의 역할과 기능을 재정립하고 비대해진 관료제적 거버넌스를 정비할 수 있어야 한다. 보수, 진보 정부를 거치며 오락가락해온 현재의 총장 선출방식은 과연 보편적 글로벌 기준에 합당한 것일까. 이런 것들이 고등교육의 국제 경쟁력 확보에 결정적 장애가 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볼 일이다.

지역대학 혁신에만 매몰되지 말고 수도권 대학 혁신과 지원에도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연구중심대학으로 세계적 유수 대학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우선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 외국의 연구중심대학들을 보면 대학원 정원이 학부 정원의 2배 정도인데 우리 대학들은 그 반대다. 학부 정원이 대학원 정원의 2배를 상회한다. 물론 교육과 연구 모두 잘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국내에서 도토리 키재기 할 때나 가능한 얘기지 그런 비대한 몸집으로는 국제 경쟁력을 갖추기 어렵다. 수도권 학부 정원을 줄이고 등록금을 자율화시켜 대학원 중심의 진정한 연구중심대학으로 발전할 수 있게 하자. 이는 학령인구 감소로 어려움을 겪는 지방대학에 탄력을 주고 고등교육 생태계 조성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세상 만물은 크로노스적 시간의 흐름을 피할 수 없다. 하늘 아래 영속하는 것이 어디 있으랴. 교육 생태계 파괴를 막아보겠다는 정부의 곰바지런함 때문에 콘크리트 대학 서열화 파괴나 게임체인저의 출현 및 교체 등 대학의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이 지지부진한 것일지도 모른다. 규제개혁이나 구조조정을 통한 대학혁신은 자율성이 담보될 때 의미가 있다. 주체적 변화를 움츠리게 하는 개혁 인센티브는 정부 의존성을 심화시킬 뿐만 아니라 단순한 규제를 넘어 제곱 승 대학 규제가 될 수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카이로스적 기회의 시간을 잡는 것은 대학의 몫이다. 대학 스스로 저울과 칼을 쥐고 미완성의 완성을 이룬 슈베르트와 같이 시간의 운명을 헤쳐나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모쪼록, 현장과의 활발한 소통을 통한 정책 조율과 합리적 추진으로 윤석열 정부의 교육정책들이 내년 2주기 평가에서는 모두 A 학점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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