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의학 교수, 2018년 1424명→2022년 1277명 감소…의학교육 수행 어려워
준비 안 된 의대 정원 확대, 서남의대 폐교 사태 재현 우려…부가 정책 추진돼야
복지부“ 증원에 따른 부담 경감, 사전 컨설팅 등 잘 진행될 수 있도록 지원할 것”

의대정원 확대 논의가 사회적 이슈로 부상하면서 대안으로 ‘의료일원화’가 거듭 거론되고 있지만 의료계-한의계의 입장차는 여전한 것으로 보이고 있다. (사진=아이클릭아트)
의학교육 전문가들은 의대 증원에 앞서 학생들을 교육할 기초의학 전임교수와 시설·장비 등 인프라 등부터 갖춰야 한다고 제언했다. (사진=아이클릭아트)

[한국대학신문 임지연 기자] 의대 증원에 앞서 학생들을 교육할 기초의학 전임교수와 시설·장비 등 인프라 등부터 갖춰야 한다는 의학교육 전문가들의 제언이 나왔다. 지금도 교육 인력·시설 부족으로 의사 양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정원 확대가 이뤄지면 교육의 질이 더욱 하락할 수 있고, 서남의대 폐교와 같은 사태가 재현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 일부 의대, 인적·재정적 측면 부족으로 양질의 의학교육 수행 어려워 = 지난해 12월 28일 국회의원회관 제8간담회의실에서 진행된 ‘정원 확대 이전 의과대학의 준비: 부실의대 방지를 위해 노력할 것들’ 주제 제4차 의대 정원 확대 연속토론회에서 이종태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 정책연구소장은 “기초의학 교육을 담당하는 교수가 부족하다”며 “일부 의대는 양질의 의학교육을 수행하기에 인적·재정적 측면에서 부족함이 많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전국 의대 기초의학 교수 이탈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 DB(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8개 기본 과목을 가르치는 의대 기초의학 교원 수는 2018년 1424명(평균 35.6명)에서 2022년 1277명(평균 31.9명)으로 5년 새 147명(평균 3.7명) 감소했다. 8개 기본 과목은 기생충학, 미생물학, 병리학, 생리학, 생화학, 약리학, 예방의학, 해부학 등이다.

이 소장은 현재 의대 입시의 문제점으로 △학생 선발 전형 자율성 부족 △수련의 제도와 인턴제도 존속 여부, 지역의료 참여 부족 △의대교육과 전공의교육(BME-GME) 연속성 부족 등을 꼽으며, 현재 우리나라 의대 교육 과정이 미래지향적이지 못한 점도 지적했다. 지역 필수의료 의사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지역 참여 임상 실습을 시행해야 하는데, 재정적인 한계가 있어 각 대학에서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소장은 “지역사회를 이해하고 책임지는 의사와 의사과학자, 바이오헬스 연구자 양성을 위한 교육이 부실한 상황에서 기초의학 임상교수 부족은 앞으로 더 가속화될 것”이라며 “기초의학 전문의 제도를 도입하고 전공자에 대한 급여를 지원하는 등 기초의학자 양성을 위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12월 28일 국회의원회관 제8간담회의실에서 진행된 ‘정원 확대 이전 의과대학의 준비: 부실의대 방지를 위해 노력할 것들’ 주제 제4차 의대 정원 확대 연속토론회 현장. (사진=신현영 의원실)

■ 제2의 서남의대 사태 우려…부실의대 방지 위한 부가적인 정책이 추진돼야 = 의료계에서는 대표적 부실 운영 사례로 서남의대 폐교 사태를 꼽으며 준비되지 않은 의대 정원 확대로 제2의 서남의대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서남의대는 2018년 폐교한 종합대학으로, 당시 서남의대 재학생들은 전북의대와 원광의대로 편입학했다.

권근상 전북의대 교무부학장은 서남의대 폐교 당시 학생들을 수용한 경험을 토대로 학생 수용에 따른 문제점을 언급하며 “의대 정원 확대가 준비되지 않은 대학은 서남의대 폐교 때 벌어졌던 일을 겪을 수 있다. 임상교수의 이탈 방지를 위해 정책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권 학장에 따르면 당시 준비가 부족한 상태에서 서남의대 학생들이 전북의대에 편입하면서 전북의대 학생과 서남의대 학생 간 갈등이 일어났고, 강의실이나 교육 인프라 부족도 커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150명의 교수가 1인당 3.8명의 학생을 맡다 편입 이후 교수 148명이 1인당 5.5명의 학생을 맡는 등 진료와 연구를 병행해야 하는 교수들의 부담이 가중됐다고 지적했다.

의대생 역시 비슷한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강기범 전 대한의과대학‧의전원학생협회 비대위원장(경희의대 본과 3학년)은 “일부 의대는 강의실 부족으로 자리를 잡지 못해 수업을 듣지 못하는 학생이 있고, 학생 자치공간도 미흡해 4개 동아리가 작은 동아리방 하나를 돌려쓰고 있다”고 토로하며 “유급자가 많은 어느 의대의 경우 운이 좋은 소수의 학생만이 간이의자와 책상을 강의실에 욱여넣고 수업을 들을 수 있다. 실습 실태도 심각한데, 해부학 실습을 위한 카데바(기증된 해부용 시체) 수급이 되지 않아 간신히 학사 일정을 소화하는 학교도 있다”고 전했다.

이어 강 비대위원장은 “인프라는 그대로인데 정치적인 이유와 대학 재단의 금전적인 이익을 위해 의대 정원 확대 목소리를 높이는 행태가 부실 의대를 만드는 근본적인 원인은 아닌지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고 꼬집었다.

이에 김예슬 보건복지부 의료인력정책과 사무관은 “여러 국책연구기관 소속의 전문가들을 위촉해 의학교육점검반을 운영하고 있다”며 “운영 목적과 기준, 방법을 논의 후 40개 의대 수요조사를 통해 2023년 현재 역량으로도 감당이 가능한 최소 수요와 그 이상의 최대 수요를 알아보는 작업이 이뤄졌다. 증원에 따른 부담을 경감하고 사전 컨설팅 등이 잘 진행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정부와 대한의사협회는 지난해 스무 번이 넘는 의료현안협의체 회의를 갖고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해 논의했지만, 구체적인 증원 규모는 합의되지 않은 채 해를 넘겼다.

보건복지부는 2025학년도 입시에 증원된 의대 정원을 반영하려면 늦어도 올해 4월까지 증원안을 교육부에 전달해야 하지만, 증원 뒤 각 의대가 적정 환경에서 학생들을 올바르게 교육할 수 있을지 의문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이에 대한의사협회와 대한병원협회는 4일 용산 의협 회관에서 진행된 2024년도 의료계 신년하례회에서 의료계-병원계 간 ‘소통’을 강조하며, 정부와 정치권도 현장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이라 전했다.

또한 의협은 의과대학 정원 문제와 필수·지역의료 문제 해결 등과 관련해 “이같은 문제는 합의로 풀길 바란다”며 “이를 위해서는 정부가 진정성 있는 태도로 협상에 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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