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문사회연구소협의회, 제4차 인문사회분야 ‘메가프로젝트’ 정책토론회 고려대서 개최
‘해외사례·운영 거버넌스’ 고찰…“국가 차원의 장기적·거시적 관점의 인문사회 분야 지원 필요”

18일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에서는 인문 ‘제4차 인문사회분야 메가 프로젝트 정책토론회’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이지희 기자)
18일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에서는 인문 ‘제4차 인문사회분야 메가 프로젝트 정책토론회’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이지희 기자)

[한국대학신문 이지희 기자] 한국사회의 인문·사회 학문 분야 입지가 좁아지면서 인문학 소멸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인문·사회 분야에 대한 국가의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18일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에서는 ‘제4차 인문사회분야 메가 프로젝트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참석자들은 저마다 인문·사회 분야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해외사례 등을 참고해 지속적인 국가의 지원을 촉구했다.

강성호 한국인문사회연구소협의회 회장(순천대 인문학술원장)은 개회사에서 “인문사회 분야 메가포르젝트 제안은 21세기 세계와 한국사회가 제기하는 ‘거대 위기’에 대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문제 의식에서 시작됐다”면서 “올해에는 실제적인 연구 사업으로 실현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 미·독·프 사례로 본 국가의 대규모 인문사회 분야 지원 = 유요문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교수는 해외사례를 바탕으로 인문사회분야 메가프로젝트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메가프로젝트의 해외사례 중 하나로 미국 국립인문기금(NEH)이 있다. 1965년 설립된 미국 국립인문기금은 역사, 문학, 철학 등 인문학 분야의 연구화 학습을 지원한다. 2024년 기준 한화로 약 2780억 원이 투입되는 사업으로 △미국의 공공을 위한 고등 연구 △학교와 지역 사회에서의 심화 교육 △평생 학습과 문화유산의 보존 등을 도모하는 기능을 한다.

2008년에는 세계 최초로 독립된 ‘디지털인문학 전당 사무국’을 신설해 국제파트너십와 대규모 데이터 토대를 마련했다. 이를 세계 문화와 연결해 문화 연결에 관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또 다른 메가프로젝트 사례로 독일 독일연구협회(DFG)를 소개했다. 독일연구협회는 1951년 독일비상연구협회와 독일연구위원회가 통합하면서 출범한 ‘해외 연구소 및 대학과 협력하는 비정부 기구’다. 정부 재정지원은 받지만, 학문의 자유를 인정받아 정부 기관이 아닌 독립적 조직으로 작동한다. 이 때문에 정부의 간섭이 없는 자율적인 연구를 할 수 있는 풍토가 마련됐다. 예산은 연간 35억 유로, 한화로 약 5조 500억 원을 사용한다. 인문·사회과학에는 약 7200억 원을 지원한다. 대학은 최장 12년, 아카데미는 12~25년이라는 장기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유 교수는 “독일연구협회는 국가가 적극적으로 지원하지만, 연구의 자율성을 완벽히 보장해주는 연구 풍토가 조성돼 있다”면서 “눈앞의 이익을 좇기보다 사회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문제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 학자들이 자율적으로 문제를 찾아 연구를 진행한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마지막 사례로는 프랑스 인문사회연구소(INSHS)가 있다. 인문사회연구소는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원 산하 10개 기관 중 하나로 국가 산하 중앙집권적 체제로 운영된다. 여기에는 약 2만 5000명의 연구원이 소속돼 있으며 2022년 기준 예산은 3억 9000유로, 한화로 약 5634억 원 규모다.

■ 메가프로젝트의 질적 평가·사회적 영향을 평가할 수 있어야 = 이주호 세한대 소방행정학과 교수는 ‘메가프로젝트 평가 및 운영 거버넌스’라는 주제로 발표를 진행했다.

메가프로젝트 운영에 있어 질적 평가와 사회적 영향을 평가하는 분위기가 마련돼야 하며, 정부주도의 의사결정보다 연구그룹의 주도적인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거버넌스가 형성돼야 한다는 게 발제의 취지다.

이 교수는 영국, 호주, 미국, EU 등의 사례를 통해 메가프로젝트의 평가 지표 방식에 대해 설명했다. 영국과 호주는 사회적 영향을 고려한 연구, 혁신 논의를 중심으로 인문사회과학에 대한 위상과 연구평가의 방향성을 논의하는 쪽으로 변화하고 있다. 연구 평가는 질과 양에서 사회적 영향을 나타내는 임팩트(impact)로 확대되는 추세다.

미국은 보조금, 위탁, 계약 방식 중에서 보조금 방식의 연구비 비중이 훨씬 높다는 특징이 있다. 이는 목표 달성에 초점을 두고 정부의 평가나 책임에 대한 관리를 통해 연구 진행 여부를 판단하는 위탁이나 계약 방식보다 연구 자율성을 많이 보장한다. 선진국의 경우 인문사회과학 분야에 대한 진흥, 투자, 연구 필요성 등이 많이 확대된 것으로 분석했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연구에 있어 정량화 된 지표가 주를 이룬다.

이 때문에 이 교수는 정량적 연구 평가 방식, 정부 주도형 연구 진행의 풍토가 바뀌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양적인 부분의 평가보다는 질적 평가와 사회적 영향을 평가하는 방식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질적 성과라는 것은 연구자가 연구 퀄리티는 높이는 쪽으로 부합하는 성과를 의미한다. 또한 창의적 아이디어를 가진 인력을 확보해 함께 연계해야 한다고도 했다.

특히 통제 중심의 정부 주도형 거버넌스를 지양하고 연구그룹이 핵심이 돼 의사결정을 이끌어 갈 수 있는 풍토 마련도 함께 주문했다.

발제 이후 토론자들이 메가프로젝트를 주제로 토론을 벌이고 있다.
발제 이후 토론자들이 메가프로젝트를 주제로 토론을 벌이고 있다.

■ 메가프로젝트의 사업화 위해 연계 확대하고 실효성 높여야 = 김동혁 GIST 융합교육 및 융합연구센터 센터장은 ‘인문사회분야 메가프로젝트 해외사례 분석’을 주제로 토론에 나섰다. 김 소장은 “현시대의 복합적 난제 해결이 기술적 해법만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인문사회분야를 포괄하는 근본적인 사고 전환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정병호 고려대 글로벌일본연구원장은 사회문제 혹은 인류문제 해결이라는 측면에서 단순히 대학 연구자뿐 아닌 대학 밖의 연구기관이나 지자체, 나아가 기업까지 연계해 연구의 파급성을 높이는 방향으로의 기획을 주문했다. 정 원장은 “메가프로젝트는 출발부터 대학원생, 학문 후속세대는 물론 학부생까지 포괄해 최소한 랩(LAB)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구조가 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어 안기돈 충남대 과학기술지식연구소장은 융복합 연구 효과 극대화를 위한 연계성 중심의 평가 시스템 구축을 강조했다. 메가프로젝트의 궁극적인 목표는 거대위기 극복을 위한 정책 발굴로 그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정책의 평가 시스템은 △연구주제의 연계성 △연구활동의 연계성 △평가위원 구성의 연계성 등을 포함해야 한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안 소장은 “정책 발굴과 실행을 위한 정책보고서의 비중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류지헌 전남대 교육문제연구소장은 미국의 ‘국가방위교육법’을 “미국의 교육시스템을 혁신적으로 변화시킨 사례”로 소개했다. 소련의 인공위성 발사에 충격을 받은 미국이 국가방위교육법 하에 고등교육 분야에 대한 재정지원을 확대하면서 과학과 수학분야에서의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고, R&D 분야에서 괄목할만한 변화가 이뤄졌다는 분석이다. 류 교수는 “디지털전환을 목표하는 교육분야에서의 연구나 변화가 대부분 세부 시행전략에 그친다”고 지적하면서 “교육분야에서의 메가프로젝트 성공을 위해서는 초·중등교육과 대학교육이 서로 연계된 형식의 전방위적인 투자와 혁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번 토론회는 한국인문사회연구소협의회 167개 연구기관이 주최하며 김철민 국회 교육위원회 위원장, 이태규·조승래 국회의원, 경제·인문사회연구회,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충북대 국가위기관리연구소가 공동 주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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