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교수들의 진료 축소, 집단 사직서 제출 등 의료 공백 7주째 이어져
정부와 의료계 간 갈등 장기화 국면 속 대학 병원·의과대학 캠퍼스 현장 가보니
“진료 인원 줄여 한가해 보일 뿐”…전공의 없어 치료 못 하는 진료과 나타나
증원 원하는 환자들, 근무 여건 개선이 먼저라는 의사·의대생
휴학 장기화 따라 불안감 커져…“이왕 이렇게 된 이상 끝까지 가자”는 의견도 있어
의대에서는 “교육부든 어디든 나서 교통정리 해달라” 반응 보이기도

지난달 27일 오전에 찾은 서울 성북구 고려대 안암병원 피부과. 피부과는 ‘모든 검사·치료가 불가하다’, ‘외래진료 대기시간이 길어질 수 있다’는 안내문을 모니터 옆에 부착했다. (사진=강성진 기자)
지난달 27일 오전에 찾은 서울 성북구 고려대 안암병원 피부과. 피부과는 ‘모든 검사·치료가 불가하다’, ‘외래진료 대기시간이 길어질 수 있다’는 안내문을 모니터 옆에 부착했다. (사진=강성진 기자)

[한국대학신문 강성진 기자] 정부의 의대 증원을 둘러싼 정부와 전공의의 대립이 장기화 국면을 맞으면서 의료공백 사태가 7주째 이어지고 있다. 의대 교수들의 집단 사직서 제출일인 지난달 25일을 기점으로 의대 증원 갈등도 더 커지는 모양새다. 1일 윤석열 대통령이 의대 증원 관련 대국민 담화를 통해 2000명 증원안 논의 여지는 열어뒀지만 의정 갈등의 출구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정부와 의료계 간 갈등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고 있는 가운데 지난달 26일과 27일 대학 병원과 의과대학 캠퍼스를 둔 현장을 찾았다.  

■ 교수들이 정말 사직한다면, 이들을 누가 책임지나…대책 불투명 = 27일 오전 8시 50분, 서울 성북구 고려대 안암병원 1층 접수처는 빈자리가 유독 많았다. 병원 내 식당이나 카페도 한가했다. 군데군데 자리한 환자와 보호자들은 당일 진료를 위해 일찍 도착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고대안암병원의 진료 시작 시각은 오전 9시다. 아직 접수하지 못한 이들은 대기 번호를 기다렸다.

이날 정형외과를 찾은 김 모(45) 씨가 병원에 도착한 시간은 9시가 채 되기 전이었다. 김 씨는 의료 대란을 걱정해 동네 정형외과를 먼저 찾았다고 한다. 그는 정형외과에서 상급종합병원에 가보라는 진단을 내려 고대안암병원을 찾게 됐다고 말했다.

김 씨가 접수를 마친 시간은 9시를 조금 넘긴 시각이었다. 진료까지 남은 시간은 30분 안팎이었다. 그는 접수를 끝낸 뒤에도 접수처 앞 빈자리는 채워질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종일 기다릴 거라 생각해 월차를 쓰고 왔다는 그는 “이럴 줄 알았으면 반차를 쓰고 왔을 것”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같은 날 오후 1시에 찾은 서울 동대문구 경희의료원도 한적한 모습이었다. 심장내과 앞 대기열에 앉아 오후 진료를 기다리던 최 모(68) 씨는 생각했던 것보다 사람이 적다고 말했다. 간혹 앉을 곳을 찾기 어려울 만큼 사람이 차는 날도 있지만, 이날 정도면 평소보다 많은 편은 아니라고 했다.

최 씨는 전공의들이 사직한 뒤 예약이 조금 빠듯해졌다고 전했다. 그는 “다른 곳은 아프면 동네에 있는 의원에 가면 되는데 심장질환을 살피는 병원은 동네에 없다”라며 “예약이 전보다 빠듯해 생각보다 며칠 늦게 병원을 찾았다. 그래도 대기 시간이 늘진 않아 다행”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틀간 만난 의사들은 병원이 받는 환자가 줄어 여유로워 보일 뿐이라 말했다. 고대안암병원에서 만난 의대 교수는 전공의가 사직하며 의사가 줄어든 만큼, 예약·외래로 찾아오는 환자의 수가 적어 균형이 유지되는 것처럼 보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 의사는 “당장 피부과만 해도 전공의가 사직해 치료를 못 한다고 안다. 지금 의사가 있어 운영 중인 진료과도 있지만, 갈수록 줄어들 것”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대학병원이 의대 교수들의 사직서까지 수리한다면 더 이상의 진료는 어렵다”라고 토로했다. 실제로 고대안암병원 피부과는 모니터 양옆에 ‘전공의 사직으로 인해 모든 검사·치료가 불가하다’라는 공지와 함께 ‘전공의 업무 공백으로 인해 외래진료 대기 시간이 길어질 수 있어 양해 부탁한다’라는 안내문을 게시했다. 고대안암병원 피부과 관계자 또한 “전공의가 없어 인력이 부족하다. 약 처방과 진료만 가능하다. 치료를 원하는 환자들에게는 다른 병원을 찾아야 한다고 공지한다”라고 전했다.

다른 병원도 상황은 비슷했다.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만난 한 의사도 “병원이 받는 환자가 줄며 큰 문제가 없어 보일 뿐”이라며 “지역 의원이나 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는 환자들은 다른 병원으로 가도록 유도 중이라고 한다”고 말했다.

다만 상급종합병원에서 대응할 수 있는 중증·응급 환자까지 지역 의료기관으로 보낼 수는 없다고 했다. 그는 “전공의가 사직하며 대학병원에서 중증·응급 환자를 살필 이들이 줄어든 것도 사실이다. 만약 교수들이 정말 사직한다면, 이들을 누가 책임질지 대책은 불투명하다”라며 우려를 표했다.

지난달 27일 오후에 찾은 서울 동대문구 경희의료원 심장내과. 오후 진료를 앞두고 군데군데 빈자리가 보인다. (사진=강성진 기자) 
지난달 27일 오후에 찾은 서울 동대문구 경희의료원 심장내과. 오후 진료를 앞두고 군데군데 빈자리가 보인다. (사진=강성진 기자) 

■ 환자는 “증원해야”, 의사는 “수가 인상 먼저”, 일부 의대생은 의견 갈리기도 = 기자가 양일간 찾은 대학병원에서는 의대 증원을 두고 환자·의사·의대생의 상반된 여론을 접할 수 있었다. 환자들은 전공의 사직 이전에도 의료진이 부족했다며 증원에 찬성했다. 의사들은 증원이 이뤄져도 필수의료·비수도권으로 향하는 인력은 적을 것이라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의대생들은 대부분 증원에 반대하는 입장을 보였지만, 일부 의대생은 증원의 필요성을 조심스레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말을 건넸다.

26일 오전 8시 45분, 어머니 김 모(65) 씨를 모시고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온 딸 윤 모(40) 씨는 지역에 의사가 충분히 있었다면 이렇게 먼 길을 떠나오진 않았을 것이라 밝혔다. 경기도 연천군에서 왔다는 이들은 새벽 5시에 집을 나섰다. 김 씨는 허리가 아파 찾은 동네의원에서 큰 병원에 가보라는 말을 듣고 세브란스병원에 오게 됐다고 말했다.

윤 씨는 이렇게 급하게 올 생각이 없었지만, 전날 뉴스에서 의대 교수들의 집단 사직 소식을 접하며 이른 시간에 출발했다. 병원에 오며 산 김밥 한 줄로 아침 식사를 때우던 윤 씨는 “지금도 지역에 상급종합병원이나 전문의가 없어 먼 길을 떠나는 이들이 있다. 의사를 늘리면 외진 지역에서 큰 병원을 찾아오느라 고생하진 않을 것”이라며 증원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인터뷰 내내 소극적으로 임하던 의대 교수들은 증원에 대한 질문을 던지자 적극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혔다. 경희의료원 인근 카페에서 만난 교수 2명은 증원이 아닌 필수의료 부문 수가를 먼저 올려야 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필수의료는 통상적으로 내과·외과·소아청소년과 등 생명에 직결된 분야를 지칭한다.

이들은 수가 인상 대신 ‘수가 현실화’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들은 필수의료·응급의학과 등 의사들이 선호하지 않는 진료과의 수가가 오르지 않는다면, 전체 의사의 수만 늘어날 뿐 필수의료 인력은 여전히 부족할 것으로 전망했다. 또한 “2000명을 증원한다는데, 그 많은 학생을 다 가르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가르치는 이들의 입장도 난감하다”라며 고개를 저었다.

의대 캠퍼스에서 만난 일부 학생들은 대부분 의대 증원에 대해 찬성한다는 입장을 전하기도 했다. 서울대 연건캠퍼스(의대 캠퍼스)에서 만난 의대생 김 모(20) 씨는 무작정 의사를 늘린다고 비수도권에 필요한 의사가 충당되지 않을 것이라 봤다. 김 씨는 타 학과 학생들처럼 의대생들도 인프라와 생활 여건이 확보된 수도권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며 정당성을 강조했다.

비록 소수의 의견이지만 증원에 찬성한다는 뜻을 밝힌 학생도 있었다. 27일 고려대 의대 건물 앞에서 만난 의대생 이 모(22) 씨는 증원 취지까지 무시해선 안 된다는 답을 조심스레 건넸다. 잠시 주변을 살피던 그는 멋쩍은 듯 주변에 휴학한 친구들이 많아 눈치를 보게 된다고 말했다. 이 씨는 “의사가 공공의 이익에 기여할 의무가 있다는 점을 간과한 채 파업에 돌입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의사와 의대생이 나서 적절한 증원 범위를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경희대 의과대학 건물 1층에 위치한 종합실습실의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문 앞에는 지난 2월에 진행한 학위수여식 관련 공지가 그대로 붙어있었다. (사진=강성진 기자)
경희대 의과대학 건물 1층에 위치한 종합실습실의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문 앞에는 지난 2월에 진행한 학위수여식 관련 공지가 그대로 붙어있었다. (사진=강성진 기자)

■ 불안감 속 학교 돌아오는 학생들…결정 못 내린 대학들 = 의대 캠퍼스에서 만난 의대생들은 휴학이 길어지며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교육부는 지난달 27일 기준 전국 40개 의대에서 유효한 휴학계를 제출한 건수는 총 8967건이라 발표했다. 2월까지 학칙 준수 여부와 무관하게 제출한 휴학계는 1만 3697건으로 집계됐다. 또한 전국 의대 40곳 중 개강을 연기하거나 휴강 중인 대학도 30곳으로 조사됐다.

26일 오후 12시에 찾은 서울대 연건캠퍼스에서는 몇몇 의대생이 건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전반적으로는 한산한 분위기였지만, 일부 학생들은 유급을 걱정해 학교를 찾았다고 말했다. 의대 재학생 박 모(20) 씨는 “사태가 금방 끝날 줄 알고 휴학계를 낸 학생들도 4월이 가까워질수록 낙제를 걱정한다. 복학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불안해하는 반응을 보인다. 여차하면 유급된다는 얘기도 돈다”라며 어수선한 분위기를 전했다.

27일 오후에 찾은 경희대 의대에는 적막이 감돌았다. 이날 방문한 건물 1층에는 카페 직원 2명의 목소리만 가끔 울려 퍼졌다. 같은 층에 있는 종합실습실의 문에는 2월 학위수여식 이후 사용한 적 없다는 듯 ‘학위취득자 안내사항’이 그대로 붙어 있었다. 학생 휴게실은 텅 비어있었다. 정문을 따라 학교로 향하는 학생들의 행렬은 의대 건물로 이어지지 않았다.

오랜 시간 기다려 마주한 한 의대 학생은 휴학계를 제출했지만, 강의가 재개될 거라는 기대를 안고 가끔 의대 건물을 찾는다고 했다. 이 학생은 3월이 끝날 때까지 학교에 돌아오지 못할 거라는 생각은 해본 적 없다고 답했다. 그러나 지난달 12일 경희대 의대 교수의회가 “전공의 사직·학생 유급이 이뤄진다면 사직서를 제출하겠다”라는 뜻을 밝히며 학생들의 불안감이 커졌다고 한다.

그가 말한 학기 초의 분위기는 지금과 달랐다. 이전의 의사 파업처럼 집단행동이 끝나면 빠르게 수습될 거라는 여론이 팽배했으며, 일부 교수들은 ‘2000명 증원은 절대 불가능한 수치’라고 공공연하게 말했다고 한다. 이 학생은 “불안을 느끼는 의대생이 늘며 지금이라도 돌아가자는 의견과 이렇게 된 이상 끝까지 가자며 의견이 갈린다”라고 전했다.

고려대 관계자는 온라인으로 일부 수업을 개설한 상태지만, 전체적으로는 휴강에 가까운 상황이라 답했다. 현재 휴학계를 제출한 의대생의 비율은 90%에 달한다고 한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수업을 듣고 싶은 학생들을 위해 온라인 강의를 열어뒀지만, 자신의 의지에 따라 듣지 않는 학생도 있다. 유급 등 처분에 대해서는 “계속 논의 중인 것으로 안다”라며 말을 아꼈다.

서울 소재 A대학 의대는 “예과 2학년부터 본과 4학년 학생 대부분이 휴학계를 제출한 것으로 파악했다”라고 말했다. 향후 대책을 물었을 때는 한숨을 쉬며 잘 모르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간 의대를 중심으로 진행한 파업 중 이렇게 오래 이어진 경우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관계자는 “교육부든 어느 기관이든 나서 교통정리를 해주면 좋겠는데, 현재로서는 명확한 방안이 없다”라며 답답한 심경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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