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 총선에서 집권여당이 참패하자 국정쇄신에 대한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총선 패배 책임을 지고 총리, 대통령실 비서실장, 비대위원장이 사의를 표명했다. 당·정·대 3축의 인적쇄신이 본격화된 느낌이다. 어느덧 총선 패배 후 국정쇄신용 장관 교체는 한국 정치에서 하나의 패턴이 된 듯하다.
이런 가운데 인적쇄신이 필요하지만 너무 잦은 인사가 국정 운영의 일관성과 안정성을 해친다는 우려도 있다. 여러 부처에 해당되는 얘기기도 하지만 특히 교육 분야에서 이런 우려는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교육은 국가, 사회 발전과 미래를 준비하는 핵심 요소이기 때문에 이를 안정적으로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지속적이고 일관된 정책과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교육정책의 일관성과 안정성을 유지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모델로 클린턴 정부시절 대통령과 함께 임기를 시작하고 마친 리처드 라일리(Richard W. Riley) 교육부 장관의 사례가 자주 인용된다.
그는 1993년부터 2001년까지 8년간 빌 클린턴 대통령 정부에서 교육부장관을 맡아 미국의 교육 개혁을 주도했다. 그는 대통령의 지지를 받으면서도 자신의 정책을 추진하고 국가의 교육체계를 변화시키는 데 기여했다. 워싱턴 포스트가 ‘금세기 교육계의 위대한 정치가 중 한 사람’으로 칭송할 정도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빵점이다. 한국에서는 유독 교육부 장관 교체가 빈번하게 이루어진다. 초대 안호상 문교부 장관부터 전임 박순애 장관까지 교육부 장관 평균 임기는 15개월에 그쳤다. 우리나라 교육정책의 일관성과 안정성을 해친 주범으로 지목될 정도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교육부는 여러 부처 가운데 가장 늦게 자리를 잡았다. 첫 교육부장관으로 지명된 김인철 후보자가 ‘술자리 논문심사’ 문제로 자진 사퇴했고, 이어 임명된 박순애 장관도 ‘만 5세 입학 학제 개편’으로 34일 만에 물러났다.
현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하 이 장관)이 임명되기까지 6개월이란 시간이 흘렀다. 혁신의 방향을 잡아가는 골든타임을 다 소비해 버린 꼴이다. 이런 공백 상태는 이 장관 취임으로 신속하게 메꿔졌다.
일부에서는 ‘시장만능주의자’니 ‘설익은 개혁 추진론자’라는 냉혹한 비판을 가하고 있지만 이 장관에 대한 교육 현장의 평가는 후하다. 특히 일부 고등교육 관련 정책들은 대학 현장의 열띤 호응을 받고 있기도 하다.
정부 출범 이후 2년여 동안 그나마 현장의 지지를 받으며 추진되는 몇 안 되는 정책 중 하나가 교육정책이다. 교육 패러다임 대전환기의 속성을 제대로 파악하고 그에 대응하는 혁신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실무형 장관이 필요한 때 그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다는 평가다.
흔히 교육부 장관을 ‘독이 든 성배’로 부르는 이가 많다. 진영 간 대립 정도가 심하고 여기저기서 자신들의 주장만 반복하는 일명 ‘떼쟁이’ 그룹이 주도하는 교육현장의 현실을 보고 하는 말이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내각 내에서도 서열 3위의 높은 자리다. 그러나 섣불리 나서기 어려운 자리이기도 하다. 이 장관 임명 당시에도 적임자로 거론됐던 많은 인사들이 손사래를 쳤다는 후문이다. 자신이 없었거나 개인적 흠결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교육부는 입시, 학제 등 정책 하나하나가 각 가정의 자녀와 직접 관련된 일을 다루는 부처로, 정책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 매우 뜨겁다. 자칫 잘못 손댔다가는 본전도 못 받고 오히려 몇 곱절의 비용을 치러야 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한마디로 ‘뜨거운 감자’를 다루는 부처라는 말이다.
총선 참패 후 국면전환용 인적쇄신은 필요하다. 그러나 필요 부처에 적용하기 바란다. 현재 교육부장관을 교체하기에는 교육혁신의 씨가 너무 많이 뿌려져 있다는 생각이다.
그동안 뿌린 혁신의 씨앗이 발아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노련한 농부의 경험도 필요하다. 씨 뿌려 밭 갈고 물과 거름을 주고 있는데, 다시 밭을 갈아엎는다면 열매는 언제 맺겠는가.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한국대학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