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처장 시절 해외 입학설명회…‘KAIST판 풀브라이트 프로젝트’ 확장
국가‧나라 위상에 걸맞은 유학생 정책 필요…국제적 기여 고려
일관성 있는 정책 펼치기 위해서는 국민 공감‧철학 기반돼야
유학생 정책, 숫자에 치중하기보다는 질 담보가 더 중요
‘스터디 코리아 300K’ 프로젝트 ‘영주권’ 측면에서 고민 필요

이승섭 KAIST 기계공학과 교수. (사진=백두산 기자)
이승섭 KAIST 기계공학과 교수. (사진=백두산 기자)

[한국대학신문 백두산 기자] “입학처장을 맡고 고민한 것 중 하나는 세계적인 대학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카이스트(KAIST)의 위상에 걸맞은 국제적인 기여를 해보자는 것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르완다에서 온 유학생을 만나 그 생각이 아프리카까지 이어져 KAIST판 풀브라이트 프로젝트로 확장될 수 있었다.”

2014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한국판 풀브라이트 프로젝트를 운영한 이승섭 카이스트 KAIST 교수는 당시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그는 이 프로젝트가 아프리카 국가의 우수 인재에게는 한국 유학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개인의 인생이 바뀌고, 학교는 우수 인재를 유치를 통해 국제화에도 이득을 얻을 수 있는 성공적인 유학생 정책이었다고 평가했다.

이후 KAIST는 에티오피아, 르완다, 탄자니아, 케냐 등 아프리카 국가에 직접 방문해 KAIST 입학 설명회를 개최하고 각 나라 명문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한국 유학의 길을 열어주었다. 유학을 마친 학생들은 더 많은 공부를 위해 한국에 남아있는 경우도 있었고, 고국에 돌아가 정부 요직을 맡거나 대학 교수가 된 경우도 있었다.

이 교수는 “유학생 정책은 전략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며 “세금이 투입되는 만큼 국익에 도움이 돼야 국민들이 공감을 하고 정책을 지지해 준다. 그런 부분에 있어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철학이 기반이 돼야 일관성 있는 정책을 펼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8월 정부는 2027년까지 유학생을 30만 명 유치하겠다는 ‘유학생 교육경쟁력 제고 방안(Study Korea 300K Project)’을 발표했다. 이를 통해 세계 10대 유학 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도 밝혔다. 기술패권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첨단 신기술 분야와 제조업 분야의 인재 부족을 외국인 유학생 유치 및 정주 여건 개선을 통해 해결하겠다는 정책이다.

그러나 이 유학생 정책은 불법체류자를 양산할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인구 감소와 세수 악화를 막기 위한 단편적 정책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또한 많은 유학생들이 공부가 목적인 경우보다는 한국에서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인 경우도 많아 이에 대한 조치도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유학생 정책은 다양한 환경의 학생이 오는 만큼 고려해야 할 부분도 많다. 국가와 개인 모두에게 이득이 될 수 있는 정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고민이 필요할까. 가장 성공적인 유학생 정책이라 평가받는 ‘KAIST판 풀브라이트 프로젝트’를 운영한 이 교수를 지난달 29일 연구실에서 만나 그의 생각을 들어봤다.

- ‘KAIST판 풀브라이트 프로젝트’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입학처장을 맡게 되면서 많은 고민이 있었다. KAIST는 세계 대학 순위와 연구 업적 등 가시적 측면에서 세계 수준으로 인정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과학기술과 산업 발전에 많은 공헌을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과연 인류 발전과 국제 사회에 어떠한 기여를 했는가?’라는 질문에는 제대로 답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했다. KAIST가 훌륭하고 위대한 대학이 되기 위해서는 국제 사회에서 기여를 할 필요가 있었다. 이런 고민을 하던 중에 1960~70년대 우리나라를 돌이켜 생각해봤다. 당시 우리나라는 못 살고 모두가 어려웠지만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 속에서 간혹 외국 유학을 떠났던 극소수 학생들도 있었다. KAIST가 저개발국가의 학생들에게 그런 기회를 제공하자는 것이 아이디어의 시초였다. 그러다 우연히 르완다에서 유학 온 학생을 만나 아프리카 국가로까지 생각이 이어졌다. 그러면서 직접 아프리카에 위치한 르완다, 에티오피아, 탄자니아, 케냐 등 여러 국가를 방문해 직접 KAIST 입학 설명회를 개최했고, 해당 국가의 우수한 인재를 KAIST로 데려올 수 있었다.”

이승섭 교수가 아프리카 학생들에게 KAIST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모습. (사진=이승섭 교수)
이승섭 교수가 아프리카 학생들에게 KAIST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모습. (사진=이승섭 교수)

- 아프리카 국가에서 진행한 입학 설명회는 어떠했나.
“당시 한류와 삼성 스마트폰의 영향으로 그곳의 학생들은 우리나라를 최고의 선진국으로 알고 있었다. 우리나라를 소개하면서 6.25 전쟁 이야기도 하고, 1970년대 사진을 보여줬는데 이런 과거를 가진 한국이 어떻게 선진국이 됐는지 그 비결에 대해서도 궁금해했다. 입학 설명회에서 우리나라의 높은 교육열과 함께 우리나라 산업 발전에 대한 KAIST의 기여도 설명했는데, 언제나 마무리는 학생들에게 공부를 열심히 해서 자신들의 나라를 위해 크게 이바지하라는 말이었다.”

- 입학처장으로 재직 당시 기억에 남는 유학생이 있나.
“입학 설명회 이후 아프리카 국가에서 많은 유학생이 왔는데 가장 성공적인 나라는 에티오피아였다. 에티오피아는 6.25 참전국이었기 때문에 우리나라와 유대감도 깊고 많은 분들이 봉사 차 교수로 나가있기도 했다. 특히 에티오피아에서 최고 대학인 아디스아바바공과대학의 경우 1학년 신입생 가운데 우수한 학생들을 선발해 매년 3~4명씩 KAIST로 유학을 보내고 교수들과 관계 인사들이 KAIST에서 대학원 과정을 밟고 있다. 기억나는 인물 중 하나는 현직 장관 신분으로 KAIST 기술경영학부 대학원으로 유학 와 4년 만에 박사 학위를 받은 메쿠리아 박사다. 그는 40세에 최연소로 장관에 임용된 인재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로 유학을 와 박사 학위를 받고 다시 고국에서 장관직을 수행하고 있다.”

- KAIST 유학생 정책의 성공 요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유학생을 데려오려는 목적을 명확히 해야 한다. 일단 우리나라는 물론, 인류 사회에, 본인 당사자에게도 도움이 돼야 한다. 무엇보다도 우리나라에서 공부를 한 유학생은 고국에 돌아가 그 나라에서 장관이 되거나 대학교수가 되는 경우가 많다. 즉, 친한파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학교 입장에서 유학생은 다양한 국가에서 학생이 옴으로써 대학의 국제화 지수가 높아지고 뛰어난 유학생은 함께 좋은 연구를 할 수 있는 토양이 된다. 아울러, 유학생들이 KAIST에 와서 이런 결과물들을 만들어내면 국가 예산 활용이나 국민들에게도 좋은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그러나 충분한 공감대를 얻지 못하는 유학생 정책을 펼치면 국민들이 왜 유학생을 데려오냐는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 최고의 유학생을 데려오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아프리카뿐만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유럽 선진국에서도 유학생을 유치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당시 고민은 MIT를 비롯한 명문대에 갈 학생들을 어떻게 우리 대학에 데려오는가였다. 다행히 외국에 살고 있는 교민도 많고, 한국문화가 세계적으로 유행하면서 한국에 대해 호기심을 느끼고 있는 학생들이 다수 있었다. 한 예로, 재미교포를 대상으로 입학 설명회를 진행한 적이 있다. 당시 설명회에 온 학부모에게 자녀가 MIT에 진학하면 그냥 평범한 미국의 엘리트 중 한 명이 되지만 KAIST에 와서 좋은 네트워크를 형성하면 MIT를 졸업한 것 이상의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설득했다.

중국의 경우에는 조금 다른 전략을 사용했다. 중국의 명문대인 칭화대나 베이징대에 진학할 때 북경에서 태어나 자란 학생이 더 유리하다. 각 지역별로 입학 가능한 인원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IQ로 얘기하면 북경에서 태어난 IQ가 120인 학생은 북경대를 갈 수 있지만 타 지역에서 태어난 학생은 IQ가 130이어도 북경대에 갈 수 없다. 그러면 북경에서 KAIST에 올 유학생을 찾으면 IQ 120인 학생은 북경대, 칭화대에 가고 KAIST로 유학 오는 학생은 IQ 110인 학생일 확률이 높다. 그래서 일부러 중국의 2선 도시들에서 입학 설명회를 열었다. 즉 북경대나 칭화대에 충분히 입학할 수 있는 인재이지만 지역 할당으로 인해 갈 수 없는 뛰어난 인재들을 유학생으로 유치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찾아보면 각 국가에서 뛰어난 인재를 유치할 수 있는 방법은 충분히 마련할 수 있다.”

- 각 국가별 교육과정 차이에서 오는 영향은 없었나.
“전 세계 어느 나라든 고등학교까지는 큰 차이가 없다. 차이는 대학교, 그리고 대학원에서 수십억 원에 달하는 장비가 없어서 실험을 못하는 그런 차이만 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감하게 아프리카에서도 학생들을 유치할 수 있었다. 교육과정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별로 중요하지 않다. 우리나라 중등교육이 다른 국가와 비교했을 때 월등히 뛰어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한 예로, 아프리카에서 유학 온 학생에게 수학 정석 문제를 풀게 시켜본 적이 있다. 우리나라 학생이라면 공식을 활용해 1분이면 풀 수 있는 문제였다. 그러나 그 학생은 30분 동안 끙끙거리면서 풀었는데 나중에 답지를 보니 한 장을 다 채워서 답을 맞혔다. 그러면 중간 과정에 대한 이해 없이 공식만 활용해서 답을 써내는 학생을 양성하는 교육과 중간 과정을 만들어서 답에 접근하는 학생을 양성하는 교육 중 어느 게 더 좋은 교육이라고 해야 하나. 후자가 훨씬 더 좋은 교육이다.”

한성 손재한 장학회 장학생으로 선발된 에티오피아 학생들. 앞줄 좌로부터 이승섭 교수, 손재한 이사장, 김진성 수석고문, 손창수 고문. (사진=한성 손재한 장학회)
한성 손재한 장학회 장학생으로 선발된 에티오피아 학생들. 앞줄 좌로부터 이승섭 교수, 손재한 이사장, 김진성 수석고문, 손창수 고문. (사진=한성 손재한 장학회)

- 유학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비용이 많이 든다. 특히 저개발 국가에서 유학을 온 학생들은 경제적으로 풍요롭진 않은 경우가 많을 것 같은데.
“기본적으로 KAIST는 외국인 유학생에게 장학금을 준다. 문제는 생활비다. 생활비로 약간의 돈을 주지만 모자란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KAIST 안에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간단한 아르바이트를 통해 생활비를 벌 수 있게 해주고 있다.

처음 아프리카에서 유학생을 유치한 국가가 에티오피아다. 5명이 왔는데 첫 번째 학기 학점을 3.8 받을 정도로 공부도 잘하는 학생들이었다. 이 학생들과 면담을 하면서 한국 생활의 고충을 물어보니 생활비가 부족하다고 했다. 한 달에 100달러 정도만 더 있으면 좋겠다고 해서 아프리카랑 교역하는 회사를 비롯해 여러 곳에 장학금 지원이 가능한지 문의했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우연히 한성 손재한 장학회를 알게 돼 장학금 지원이 가능한지 물었더니 당장 오라고 하시더라. 그래서 그 후로 에티오피아에서 온 학생들은 매달 100달러씩 지원을 받고 있다.”

- 실무를 경험해 본 입장에서 유학생 정책이 어떠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지금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굉장히 좋은 기회다. 한국에 대한 인식이 좋기 때문에 보다 전략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 문턱을 낮추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지만 KAIST처럼 아무도 생각하지 않던 지역에서 유학생을 유치하는 방법도 있다. 좋은 유학생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실무자가 발로 뛰어야 한다. 그리고 단순히 실무적인 정책이 아니라 유학 정책에 철학이 있어야만 한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우리나라도, 대학도, 학생도 모두가 이득이 되는 유학이 돼야만 한다.”

- 그런 면에서 ‘스터디 코리아 300K’는 교육정책 보다는 사회정책에 가깝게 느껴진다.
“유학생의 정주까지 고려한다면 ‘영주권’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가령, 우리가 미국에 갈 때 유학이 쉬운가, 영주권을 얻는 게 쉬운가. 그런데 스터디 코리아 300K는 유학을 시작으로 정착까지 문턱을 낮추는 정책이다. 이 정책은 유학 프로그램이 아니라 영주권 프로그램에 더 가까워 보인다. 유학생이 많다고 무조건 좋은 게 아니다. 중요한 건 우수한 학생이 오는 것이다. 그 학생이 우리나라에서 공부하고 양국의 국익에 도움이 돼야 한다. 정책에는 철학과 전략이 필요하다. 특히 정책은 한 번 추진되면 그 영향이 몇 년은 가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좀 더 심도있게 논의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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