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희 한경국립대학교 총장

이원희 한경국립대학교 총장
이원희 한경국립대학교 총장

최근 교육부 주도로 전국 대학에 도입되는 ‘대학 무전공 입학’은 향후 큰 파급효과를 유발할 수 있는 중요한 정책 실험이다. 학생의 다양한 선택권을 보장하고, 새로운 인재상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인가? 경제학을 전공하고 싶은 학생이 ‘경제학 전공에 지원할 것인가?’ 아니면 ‘무전공에 입학해 경제학 진학을 선택할 것인가?’와 관련한 전략적 선택도 관심의 대상이다. 그럼에도 무전공 입학은 시대의 새로운 동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변곡점을 마련할 것이다. 무전공 입학의 성공적 정착을 위해서는 다양한 제도적 기반의 조성이 필요하다.

대학이 ‘맞춤형 교육’으로 전환해야 하는 이유
오늘의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 고등교육의 발전 과정을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70년대 입학 인구가 적고 대학 숫자도 적은 시대에는 엘리트 교육이 성행했다. 대학이 사회의 지식과 정보를 독점하고 있었고, 소수만 뽑아서 폐쇄적으로 운영할 수 있었다. 80년대 이후 입학 인구도 늘고 대학 숫자가 확대되는 과정에서 고등교육은 대중교육이 됐다. 지금 대학은 어떤 상황인가? 입학 인구는 줄어들었지만 대학 숫자는 줄지 않고 있다. 그리고 사회의 다양화와 다원화를 대학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이제 대학은 ‘맞춤형 교육’으로 전환해야 한다. 고등교육은 소비자 주권을 존중해야 하고, 선택권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무전공은 결국 학생의 선택으로 귀결되고 이에 따라 무전공의 핵심은 학생이 자율적으로 자신의 전공을 설계(self design)하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그러면 대학은 소비자의 선택을 존중할 준비가 돼 있는가? 대학은 무전공 입학의 비율을 결정하는 노력에 그칠 것이 아니라, 무전공 입학의 체제에 적응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 그 핵심은 공급자와 수요자의 칸막이 구조 해소에 있다.

무전공 입학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
과거 대학은 전공을 학과별로 구분하고 학생이 여기에 편입되는 과정으로 운영됐다. 그러나 이제 대학은 뷔페와 같이 다양한 메뉴를 설계하고, 학생 스스로 자율적으로 선택해 자신에게 적합한 전공을 설계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무전공의 성공을 위한 첫 번째 조건이 다양성이 돼야 하는 이유다. 대학은 학생들에게 다양한 선택의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 전공 교과목 이외에 다양한 과목을 수강해 마이크로 디그리(micro degree)를 부여하는 이유다. 이를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제도적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 그리고 그 다양성은 다원화와 연계돼야 한다. 학과별로 내 학생을 고집하는 배타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대학 교육에서 새로운 시대 요구를 반영해야 하고, 칸막이 구조를 없애고 포괄주의를 도입해야 한다. 무전공이 융합전공과 연계돼야 하는 이유다.

최근 한경국립대는 2024년도 탄소중립 분야 농식품 과학기술융합형 연구인력 양성사업을 추진한다. 이 사업은 농식품 미래 신산업의 경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타 학제 간 융복합 연구인력 양성과 혁신적인 연구개발 분야에 지원하는 사업으로 농림부로부터 총 5년(2024~2028)간 57억 원을 지원받아 수행된다. 이를 위해 한경국립대는 상지대와 경기·강원 권역 ‘농업 탄소중립’ 공유대학 컨소시엄을 구축해 농업에너지·축산환경관리·지역양분관리·농촌 RE100 마을 구축 분야와 관련한 융합전공·융합대학원을 개설할 예정이다. 또 국내 관련 산업체 현장실습, 해외 대학과의 글로벌 연수프로그램 등을 운영해 농업·농촌 탄소중립 분야 전문 연구인력을 양성할 계획이다. 이를 기반으로 농축산 바이오매스 순환 탄소중립 융합기술 특성화를 통한 농업·농촌 탄소중립 융합형 전문인력 양성 플랫폼 구축을 최종 목표로 하고 있다. 즉, 이는 전문인력 양성 플랫폼에 학생 전공선택권 확대, 유연학사구조 개편, 핵심역량 중심 교육 확대, 학생 지원체계 고도화 체계를 반영해 농업·농촌 탄소중립 분야 융합 연구 인력을 양성하는 사업이다. 이러한 모형이 확대돼야 한다.

융합교육은 대학 내 차원이 아니라, 대학 간에도 확대될 필요가 있다. 에라스무스 프로그램(European Region Action Scheme for the Mobility of University Students)은 유럽 연합에 속한 나라들 사이의 교환학생 프로그램이다. 대학 간의 칸막이를 없애고 학생들이 자유롭게 이동하면서 다양한 수업도 받고 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 프로그램의 명칭은 네덜란드의 신학자 에라스무스에서 유래됐다. 에라스무스는 생전에 견문을 넓히기 위해 파리, 케임브리지 등을 돌아다니며 공부한 바 있고, 말년에 자신의 재산을 바젤대학에 환원해 이동학습을 위한 지원금을 마련케 했다. 지금 많은 유럽 학생들은 에라스무스 프로그램을 통해 다른 나라에 살면서 공부하는 경험을 쌓고 있다. 에라스무스 학생네트워크는 유럽 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학생조직 중 하나가 됐고, 많은 정치학자들은 에라스무스 프로그램이 범유럽주의를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향후 무전공 입학이 확대되면서 성과를 관리하기 위해 대학별로 다양한 분석이 진행될 것이다. 첫째, 무전공 입학생의 성적은 어떠할 것인가? 전공별 입학생에 비해 더 우수한 학생이 지원할 것인가? 둘째, 학생의 입장에서 전공별 입학을 선호할 것인가, 무전공 입학을 선호할 것인가? 무전공 입학의 경쟁률과 전공별 입학의 경쟁률을 면밀하게 비교 분석하게 될 것이다. 셋째, 무전공 입학생의 전공선택에 쏠림 현상이 발생할 것인가? 극단적으로 생각하면 무전공 학생 전부가 특정 전공을 모두 선택한다고 할 때, 이를 관리할 수도 있어야 할 것이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무전공 입학생의 중도탈락율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학부 단위의 무전공 입학을 시도했던 서울대의 경우 중도 탈락율이 높았다는 부분을 깊이 고민해야 한다.

이제 우리 사회는 1개의 골대를 두고 100명이 달리는 경쟁 체제에서 벗어났다. 100개의 골대가 있기 때문에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골대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경쟁이 아니라 협력의 과정으로 변화된 사회에서는 조금 늦더라도 자신의 골대를 찾는 과정이 중요하다. 대학은 학생 자신의 고유한 독자성(uniqueness)을 찾는 정체성 확보의 과정을 지원해야 한다. 무전공이 자율전공과 융합전공으로 연계돼 학생의 맞춤형 설계를 지원하는 체계 구축이 시급한 이유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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