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기부, 지난달 27일 ‘국가연구개발사업 예산 배분‧조정안’ 발표
내년 R&D 예산 24조 8000억…“물가상승률 감안하면 오히려 삭감”
득보다 실 많은 R&D 예산 파동…‘생애첫연구’‧‘기본연구’ 전면 폐지

R&D 예산 감축에 대학가의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대학·대학원 이공계생 절대 다수가 R&D 예산 감축에 반대하고 있어 정부가 R&D 예산을 전면 복원할지 등 향후 대응이 주목된다. (사진=아이클릭아트)
정부가 내년 R&D 예산을 발표한 가운데 현장에서는 올해 삭감으로 인한 후유증을 걱정하고 있다. (사진=아이클릭아트)

[한국대학신문 백두산 기자] 정부가 내년 국가 주요 연구개발(R&D) 예산을 올해보다 2조 9000억 원(13.2%) 늘어난 24조 8000억 원으로 확정했다. 삭감되기 전 예산과 비교하면 1000억 원 증가한 금액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달 27일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심의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의 ‘2025년 국가연구개발사업 예산 배분‧조정안’을 확정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해 6월 윤석열 대통령의 “나눠먹기식 R&D는 제로베이스(원점)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에 예산을 대폭 삭감한 바 있다. 이에 과학계와 여론의 비판이 거세지자 R&D 예산을 재조정한 것이다. 박상욱 과학기술수석은 지난달 27일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에서 “재정 여력이 정말 없는 데도 최선을 다해 큰 폭으로 증액한 것”이라며 “오늘 발표된 주요 R&D 예산은 2023년도보다 조금 큰 수준이지만 내용상으로는 환골탈태에 가깝게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과기부에 따르면 2025년 주요 R&D 예산은 올해 21조 9000억 원보다 13.2% 늘어난 24조 8000억 원이다. 올해 6월까지 검토된 24조 5000억 원에 정부안 편성이 완료될 때까지 조정‧반영될 규모(약 3000억 원 예상)를 포함한 수치다. 이는 2023년 주요 R&D 예산 24조 7000억 원과 큰 차이가 없는 금액으로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사실상 2023년보다 줄어든 금액이다.

정부 출연 연구기관인 한국천문연구원 출신 황정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2023년(3.6%)과 올해(2.6%), 내년(예측치 2.1%)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실질 예산은 2023년 24조 7000억 원에 견줘 오히려 4.2%가 줄어든 23조 7000억 원에 불과하다”며 “이걸 보고 역대 최대 규모라고 자화자찬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지적했다.

문제는 단순히 R&D 예산 복구만으로는 올해 예산 삭감의 후폭풍을 진정시킬 수 없다는 점이다. 특히 연구현장은 이미 초토화된 상황이다. 올해 예산이 줄어들면서 대학들은 인공지능(AI)을 비롯한 미래 먹거리라 불리는 차세대 산업 분야 연구원 수를 줄이는 등 자구책 마련에 분주해졌다.

한 대학의 기초과학 연구실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연구실은 프로젝트 수행을 할 때 석‧박사급 연구원을 뽑아 한 달에 200만 원 정도의 연구비를 지원해왔다”며 “올해 예산이 삭감되면서 기존 수행하던 연구는 중단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신입 연구원을 뽑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사실상 이번 R&D 예산을 둘러싼 촌극은 득보다 실이 더 많았다”며 “더욱 우려되는 점은 신진 연구자를 위한 예산이 대폭 줄었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소액과제를 통해 경험을 쌓아야 할 신진 연구자들이 갈 곳을 잃게 되면서 과학기술계가 입을 피해는 1, 2년 안에 복구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내년 R&D 예산안에서 ‘생애 첫 연구’ 지원과 ‘기본 연구’ 지원이 존재를 감췄다. 그간 생애 첫 연구와 기본 연구는 연구비 규모가 가장 적어 연구자들이 성장하기 위한 발판으로 활용돼 왔다. 특히 수혜경험이 없는 전임교원만을 대상으로 해 갓 임용된 연구자들의 필수코스로 여겨졌다.

그러나 두 과제가 사라지면서 ‘우수신진연구’로 연구자들이 몰리는 상황이 발생했다. 지난해 1951명이던 지원자 수가 올해 4559명으로 늘어나 경쟁률이 더욱 치열해진 것이다. 예산이 2164억 원에서 2702억 원으로 늘어났다고 해도 연구자 수를 고려하면 부족하긴 매한가지다. 원래 759개를 선정하기로 한 우수신진연구 과제 수도 644개로 줄었다. 선정률이 전년 20.6%에서 14.1%까지 떨어진 것이다.

이 같은 분위기가 과학기술계 신진 연구자들에게 불안감을 조성하는 것이 더욱 큰 문제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수도권 대학의 한 교수는 “대학의 많은 연구실들이 대폭 예산이 감축되면서 전체적인 활기가 죽었다”며 “연구실에 있던 학생들이 취업 준비를 하는 등 전체적으로 어수선할 뿐만 아니라 많은 학생들이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생각에 진학을 고려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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