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열린 구조’ 고등교육…‘일반대-응용과학대’ 자유로이 진학·편입 가능
일반대 예산 70% 중앙정부…‘지역 발전 주도’ 응용과학대 재정은 지방정부가
국내 ‘산학연협력·성인 학습자·평생교육’ 시사점 큰 ‘탐페레 대학교’ ‘개방대학’

사진=아이클릭아트
사진=아이클릭아트

[한국대학신문 김의진 기자] 윤석열 정부가 내년부터 ‘지역혁신 중심 대학지원체계(RISE, 라이즈)’를 본격 도입할 예정인 가운데 라이즈(RISE) 전환을 앞둔 전국 시도 지자체에서도 준비에 분주한 모양새다. 대학을 활용해 지역혁신을 꾀할 전략과제를 설정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고 있지만, 한편으론 기초학문·예체능·직업교육 등 분야 소외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본지는 이에 해외 교육 선진국 사례를 살펴보면서, 라이즈를 준비하는 지자체에 지방분권과 고등교육 생태계 조성이라는 가치의 단초를 제공하고자 한다. 교육부 재정지원사업인 ‘고등직업교육거점지구(HiVE, 하이브) 사업’ 발전협의회가 최근 완료한 ‘광역지자체 지원 지역특화 고등직업교육·평생직업교육 추진체계·제도화 방안 연구’를 바탕으로 미국·독일·핀란드·일본의 사례를 살펴본다. <편집자주>

핀란드는 전 세계에서 교육경쟁력으로는 최정상으로 손꼽히는 국가다. 사교육비를 들이지 않고 공교육만으로 세계 최고의 학력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핀란드 교육의 경쟁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핀란드 교육은 단순히 학업 성취도 측면에서만 좋은 결과를 보이는 것이 아닌, 인성·사회성 교육뿐만 아니라 특히 고등교육(대학) 경쟁력 면에서도 선진국 반열에 올라 있다.

■ 핀란드 고등교육 ‘일반대-응용과학대’ 간 자유롭게 진학·변경 가능 = 핀란드 고등교육(대학) 제도에서 관심을 가지고 바라봐야 할 특징은 핀란드 교육기관이 ‘열린 구조’를 갖췄다는 점이다. 핀란드는 개인이 의지와 목표 의식만 강하다면 어느 단계로든 진학과 편입, 변경·재진학이 가능한 교육 구조(‘열린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일반대학’과 ‘응용과학대학(Universities of Applied Sciences)’으로 양분돼 체계를 발전시켜 왔지만 학생들은 일반대와 응용과학대학 학위를 자유롭게 진학·변경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기본적인 교육 시스템 체계를 살펴보면 핀란드는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다. 유치원에서부터 교육을 시작해, 초등·중등교육은 기본교육으로서 모든 사람이 공통된 교육과정으로 배우고 졸업하게 된다.

핀란드는 고등교육 시스템에서부터 ‘일반대학’과 ‘응용과학대학’으로 구분하고, 두 교육기관의 운영 시스템도 다소 차이를 보인다. 핀란드에서 일반대는 3년제로 운영되고, 응용과학대학은 3년 반~4년 반제로 운영된다. 학제는 일반대보다 응용과학대학이 더 긴 것처럼 보이지만, 핀란드에선 일반대 진학 시 학사과정을 마치고 반드시 2년 석사과정을 거쳐야 해 일반대 트랙은 사실상 5년제로 석사 학위자 형태로 졸업하게 된다.

핀란드에서 공통(기본) 교육과정인 중등교육 단계를 이수하면, 대학 단계인 일반대와 응용과학대 중 구분된 진학 과정을 밟아야 한다.

일반대에 진학하고자 할 때는 우리나라의 대학 수학능력시험과 같은 대입 시험을 치르고 일반대에 진학한다. 학사·석사 학위과정을 마치고 졸업하며 상급 석사나 박사 학위를 딸 수도 있다. 일반대 학사를 취득한 뒤 응용과학대 석사 학위를 따는 것도 가능하며, 이 경우 ‘실무 경력 3년’ 조건을 채우고 응용과학대 석사 과정을 밟을 수 있다. 응용과학대 석사를 취득한 뒤에도 상급 석사, 박사 학위 취득이 가능하다.

응용과학대에 진학하려면 수능 시험이 아닌 직업교육학교의 직업능력 자격증, 상급 직업능력 자격증을 취득해야 한다. 이후 특별 직업 능력 자격증을 따야만 응용과학대 진학 자격을 갖춘다. 응용과학대에서 학사 학위를 받고 졸업한 뒤 이어서 응용과학대 석사 학위를 받고자 할 때에도 ‘실무 경력 3년’ 조건을 갖춰야 한다. 반면 응용과학대 학사 학위 취득 후 일반대 석사 과정을 밟을 땐 조건 없이 바로 진학할 수 있다. 일반대나 응용과학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사람은 일반대 박사 학위 진학이 가능하다.

■ 일반대 예산의 70% 중앙정부서…응용과학대학은 지방정부별 재정으로 = 고등직업교육거점지구(HiVE, 하이브) 발전협의회 연구진에 따르면 핀란드의 고등교육기관은 지난 2019년 기준 일반대학 14곳, 응용과학대학 25곳, 고등직업기술 교육기관(upper secondary vocational education) 등으로 구분된다.

핀란드의 고등교육기관에 대한 지원 예산은 중앙정부 예산과 지방정부 예산으로 충당된다. 일반대의 경우 예산의 70%를 중앙정부 예산에서 지원하고 있다. 응용과학대학은 지방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연합에서 운영하고, 일부는 사설로 운영된다.

응용과학대학에 대한 지방정부별 예산은 각 지역 지방정부가 주로 운영하고 있다. 연구진은 이 때문에 이를 포괄적으로 살펴보기는 어렵지만, 핀란드 학생들이 일반대와 마찬가지로 전액 등록금 무상 서비스, 학업지원금, 주택보조금 등으로 월 500유로(한화 75만 원) 정도를 받고 있어 고등교육의 공공성을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

■ ‘지역적 발전 초점’ 응용과학대학, 대도시보다 외곽 소도시서 발달 경향 = 핀란드는 응용과학대학을 중심으로 자국 내 고등교육 단계의 직업·기술교육을 국민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현재 핀란드에는 약 25개교의 응용과학대학이 있고, 이 가운데 23곳의 응용과학대학은 주식회사(Public Limited companies)의 형태로 핀란드 문화교육부(Ministry of Education and Culture) 관리 하에 있다. 나머지 2곳인 오란드 응용과학대학(Åland University of Applied Sciences)과 경찰대학(Police University College)은 행정자치부(Ministry of the Interior) 하에 속해 있다.

연구진에 따르면 핀란드 응용과학대 학사 졸업생은 ‘볼로냐 프로세스(Bologna process)’가 출범하기 전까진 더 이상 정규교육 체제에서 진학할 수 있는 경로가 없었다. 하지만 2000년에 들어서 유럽 어느 대학을 졸업하든 유럽 내에서는 어디서든 취업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출 수 있도록 하는 ‘볼로냐 프로세스’로 통일되면서, 핀란드 역시 일반대학·응용과학대학 구분 없이 모든 학사 졸업생들이 다음 단계 학업으로 진학할 수 있게 됐다.

또한 응용과학대에서도 석사 과정이 신설됐으며, 3년간 실무 경력을 가진 사람이 입학해 1년, 1년 반 과정을 이수하게 된다.

연구진은 “핀란드 응용과학대학은 실용적 학문의 연구·개발에 초점을 맞추고 상대적으로 일반대보다 개인의 경험·경력을 학점체계로 흡수해 선행학습으로 인정해주는 ‘열린 구조’를 갖추고 있다”며 “개인 경험·경력을 학교에서 인증받아 해당 과목·프로그램을 수료한 것으로 처리하기 때문에 불필요하게 소요되는 학생들의 시간과 노력을 아낄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연구진은 응용과학대학의 가장 큰 특징으로 ‘실제 업무에 필요한 기술을 배운다는 점’을 꼽았다. 핀란드 응용과학대학은 학과별로 실습·인턴 실무 경험을 교과과정에 포함하고 현장학습·현장 방문이 필수적으로 포함돼 있다.

연구진은 “핀란드 응용과학대학은 지식의 실천과 활용을 중시하기 때문에 대부분 전공별로 입학시험(본고사)으로 선발한다”며 “지역적 발전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대도시보다는 작은 도시나 시 외곽에 자리를 잡고 있는 경우가 더 많다”고 설명했다.

핀란드 고등교육은 커리큘럼의 구성이 자유롭다. 한 학기에 수료해야 하는 최저·최고 학점 이수 등에도 제한이 없기 때문에 원하는 만큼의 수업만 수강할 수 있다. 핀란드 응용과학대학 수업은 보통 학위 프로그램에 따라 210학점, 240학점, 270학점(ECTS) 등으로 구성된다. 이와 함께 실험·실습과 워크숍, 시뮬레이션, 프로젝트 학습, 온라인 학습 등과 같은 실제 개발학습(LbD)을 통해 학습단위 요소들을 개발 프로젝트에 유연하게 통합시킨다는 점도 핀란드 고등교육의 특징이다.

핀란드 탐페레 대학교 캠퍼스 아레나 (사진=탐페레 대학교, 출처=tuni.fi/en)
핀란드 탐페레 대학교 캠퍼스 아레나 (사진=탐페레 대학교, 출처=tuni.fi/en)

■ 기업·연구진·재학생이 한 건물 안에서 생활 ‘캠퍼스 아레나’ = 탐페레 대학교(Tampere University)는 핀란드 대표 국립대학 중 하나다. 핀란드 탐페레에 위치하며 1925년 헬싱키(Helsinki)에서 행정학과를 개설한 단과대학으로 출발했다. 지난 2019년 탐페레 대학(University of Tampere)과 탐페레 공과대학(Tampere University of Technology)이 합병하면서 지금의 탐페레 대학교로 이어지고 있다.

탐페레 대학교는 통합 이후 캠퍼스 아레나(Kampusareena)를 설립하면서 교내 연구진, 학생들과 상생협력을 할 기업·스타트업에 공간을 임대해 활용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기업들은 협력을 전제로 비용을 대학에 투입하면서 네트워킹 자원을 공유하는 등 산학협력 활성화의 우수 성과를 창출하고 있다.

특히 캠퍼스 아레나는 탐페레 대학교뿐만 아니라 탐페레 시에도 아주 중요한 산업 협력자를 모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기업들 역시 캠퍼스 아레나에서 취업 박람회 등 다양한 행사에 참여함으로써 새로운 인재들에게 더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는 긍정적인 효과를 얻고 있다.

■ 우리나라 ‘평생교육원’과 같은 듯 다른 듯, 주목할 만한 ‘개방대학’ = 핀란드에는 ‘개방대학(Open University)’이라는 독특한 형태의 제도를 운영한다. 성인 학습자들에게 전공 분야 선택에 대한 확신을 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으로 작용한다. 학교 측에서도 성인 학습자들의 능력을 검증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있어 결국 학생과 대학 측 모두에 최적의 상황을 마련해 준다는 평가를 받는 제도다. 또한 입학시험에 쏟는 시간과 노력을 줄여주고 더 많은 이들에게 평생교육의 기회를 제공해준다는 점도 핀란드 개방대학의 장점으로 꼽힌다.

핀란드 개방대학 프로그램이 학령기 학생이 아닌 성인 학습자들에게도 학사과정을 개방한다는 점에서 우리 교육계에 시사점이 있다는 분석이다. 실무를 위해 기술을 더 배우고 싶은 사람들이나 입시에서 대입에 실패하는 등 입학 기회를 놓친 사람들, 평생학습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 등 특별한 학벌이나 경력이 없이도 유로로 수업을 청강하는 제도가 핀란드에서는 ‘개방대학’으로 구현되는 것이다.

연구진은 “학생들은 각자 다른 이유로 개방대학에서 학습하고 있지만, 개방대학 학생으로서 특정 학점 이상을 수료하면 학사과정으로 편입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며 “개방대학에서 편입할 경우 입학시험을 별도로 볼 필요가 없으며 이수한 학점이 인정돼 기존 학년제보다 1년 정도 앞당겨서 졸업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핀란드 역시 개방대학 도입 초기에는 중장년층의 수요가 더 많았었다”면서도 “최근에는 낮은 연령대의 성인 수요가 늘어나는 추세다. 이는 개방대학이 평생교육 형태 중 하나로만 치부되는 것이 아니라 대학 입학의 한 전형으로 판단되고 있다는 현상을 설명한다. 우리나라에도 이 같은 부분에서 시사점이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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