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태 세명대학교 디지털콘텐츠창작학과 교수

김기태 세명대 디지털콘텐츠창작학과 교수
김기태 세명대 디지털콘텐츠창작학과 교수

1948년 7월 17일 제정된 대한민국헌법(제헌헌법)은 제1호 제14조를 통해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 저작자, 발명가와 예술가의 권리는 법률로써 보호한다”라고 규정했다. 한국 저작권 법제가 독자적으로 발전하게 된 시발점이다. 이 같은 헌법 규정에도 불구하고 근대시기 이후 줄곧 일본 저작권법이 적용됐다는 점에서 “본 법은 학문적 또는 예술적 저작물의 저작자를 보호하여 민족문화의 향상발전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한다”는 기치 아래 비로소 저작권법이 제정된 것은 1957년 1월 28일(법률 제432호)의 일이었다. 반면에 일본은 1899년 저작권법을 제정함으로써 1999년 저작권법 제정 100주년을 맞이했다.

반면에, 일제강점기 때 우리나라에서의 일본 저작권법은 실질적 효력을 갖지 않았다는 주장도 있다. 1910년대 우리나라 저작권법은 일본의 저작권법을 ‘의용’하다가 ‘적용’했지만 선언적 의미만 가졌을 뿐 우리에게는 ‘무용’한 법률이었다는 것이다. 일본의 강점으로 일본 저작권법이 우리나라에 적용됐지만 일본 저작권법이 저작권 등록을 규정하고 있으므로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기 위해서는 해당관청에 등록해야 한다고 규정하면서도 등록에 관한 규정은 별도명령으로 정한다는 선언적 문장만 있을 뿐이었다. 법률상 저작권 보호의 대항조건으로 등록방법이 없었고, 구제방법으로 총독부에서 등록할 수 있는 절차가 있긴 했지만 일본어 이외 한국어의 등록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에 있었다. 따라서 일제강점기 때 한국어 출판물의 저작권은 법적 보호에서 벗어나 있었으며, 일본 저작권법은 한국어 저작권 보호에 있어서 명분상 선언적 의미를 띨 뿐이었다.

우리의 현행 저작권법은 출판을 가리켜 “저작물을 인쇄, 그 밖에 이와 유사한 방법으로 문서 또는 도화(圖畵)로 발행”(제63조 제1항)하는 것이라 규정한다. 이는 1957년 처음 제정된 저작권법(법률 제432호)에서 출판을 “문서, 회화 등의 저작물을 인쇄술 기타의 기계적, 화학적 방법에 의하여 복제하여 발매 또는 배포함을 말한다”라고 정의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곧 출판문화의 발흥과 출판산업의 발전이야말로 한국 저작권 제도의 정착에 가장 크게 기여한 요소였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출판업계에서는 저작권사용료를 관행적으로 ‘인세(印稅)’라고 부른다. 이는 저작물 사용에 따른 대가로 이용자로부터 저작권자에게 주어지는 금전을 가리키는 말로, 유형물(도서)에 매겨진 가격(정가)의 일정한 비율로 발행부수 또는 판매부수에 따라 계산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세간에 저작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러한 저작권사용료의 비율과 지불방법을 놓고, 또는 이미 정해진 계약내용을 놓고 저작재산권자(저자)와 출판권자(출판사) 사이에 상당한 진통을 겪거나 분쟁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는 최근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기보다는 오래 전부터 구조적인 문제점으로 잠재해 있었다고 봐야 한다. 그것이 어떤 유형의 출판계약이든 거기에는 항상 저작권사용료에 대한 내용이 들어 있게 마련이고, 이를 두고 언제든지 분쟁이 생겨날 소지가 많았던 것이다.

이 같은 저작권사용료 지불방식을 살펴보면 대체로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첫째, 발행부수에 따른 선지불 방법이 있다. 도서의 정가를 기준으로 한 일정비율에 발행부수를 곱한 금액을 저작재산권자에게 도서가 발행되기 전에 지불하는 방법으로, 대개 유명저자와 이것의 흥행에 자신 있는 출판권자 사이에 바람직한 방법이다. 이른바 저작재산권자의 ‘검인지’를 붙이는 것도 이 방식을 따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쌍방 사이에 최소한의 신뢰가 없는 한 분쟁이 발생할 소지는 얼마든지 있다.

둘째, 발행부수에 따른 후지불 방법이 있다. 이 방법은 일단 출판계약을 했음에도 계약금 형식의 선지급금 없이 먼저 도서를 발행한 후 일정기간 안에 그에 따른 저작권사용료를 지불하는 것이다. 중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는 대개 저자가 그 방면의 초보로서 출판사에 의지하는 경향이 강한 경우이거나, 이후 발행부수에 대해 검증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 양자 사이에 분쟁의 소지가 높을 수 있다.

셋째, 발행부수에 따른 선지불 및 후지불 방법의 절충형이 있다. 초판 1쇄에 한해 계약금 명목으로 발행부수에 따른 저작권사용료를 먼저 지불하고, 그 다음부터는 나중에 지불하는 방식이다. 이 경우도 양자 사이에 신뢰도가 낮다면 성공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넷째, 판매부수에 따른 후지불 방법이 있다. 이는 판매부수를 기준으로 삼는 탓에 저작권사용료는 언제나 후지불 형식이 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필수적인 것은 출판사에서 일정 기간 동안의 판매부수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를 주기적으로 저작재산권자에게 제공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외에도 발행부수와 판매부수를 혼합한 절충형이나, 저작권사용료 기준비율의 누진(累進) 또는 누감(累減) 적용 방법 등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한국 근대문학을 이끌었던 소설가 이효석의 수필 《고료(稿料)》는 연재소설 고료에 관한 글이다. 고료 지급의 개념, 혹은 금액 산정이 언제부터 체계화됐는지를 그는 적고 있다. 신문의 경우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잡지 쪽은 1923~1924년경 확립됐다고 한다. 아울러 당시 고료는 200자 원고지 한 매당 15전이었다고 한다. 이효석의 시대에 ‘고료’라 불리던 것이 지금은 종종 ‘인세(印稅)’라고 불린다. 왜 ‘저작권사용료’라고 해야 할 것을 ‘인세’라 부르는 걸까? 한때 한국과 일본에서는 도서의 간기면(刊記面)에 저자 검인(檢印)을 붙여 출판 승낙 및 발행 부수를 확인했다. 그렇게 붙인 증지(證紙)의 수로 저작권사용료를 계산했다. 곧 도장[印]을 찍은 수대로 돈[稅]을 지불했던 것이다. ‘인세’라는 말이 쓰이게 된 배경이다.

이러한 검인첩부(檢印貼付) 방식은 1901년 독일 출판권법이 출판권설정제도와 함께 검인제도를 인정한 데에서 비롯됐다고 알려져 있다. 독일의 검인제도는 일본 저작권법에도 영향을 줬는데, 우리나라가 이를 모방하면서 자연히 검인첩부 또한 받아들인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오늘날 독일은 물론 일본의 저작권법에서조차도 검인첩부제도에 관한 규정은 삭제됐다. 우리나라 저작권법만 아직도 이를 저작권자와 출판권자가 협의해 결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도 ‘인세’라는 말 대신 ‘저작권사용료(저작권료)’, 영어로는 ‘로열티’(royalty)라는 말을 써야 하겠다.

어쨌든 저작권사용료를 둘러싼 분쟁이 발생하는 이유를 들여다보면 대개 과거로부터 출판계약에 있어 합리적인 저작권사용료 지불방법이 정착돼 있지 않고, 그때마다 즉흥적으로 인세율과 지불방법이 정해지거나, 저작권사용료로 지불된 금액에 대한 명확한 자료 제시가 이뤄지지 않거나, 상호 신뢰가 부족하기 때문에 생겨난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밖에 저자가 다수인 경우에도, 편집저작물이나 공동저작물처럼 다수의 저자를 상대로 할 때에 자칫 일어나기 쉬운 오해와 분쟁의 가능성을 이해한다면, 그러한 분쟁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도 출판계약서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한국대학신문>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