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호 한국전자출판학회 부회장

이은호 한국전자출판학회 부회장
이은호 한국전자출판학회 부회장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한 형태의 문화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특히 출판 콘텐츠인 ‘책(冊)’은 정제된 지식과 정보를 담고 있으며 영화, 게임, 웹툰 등 문화콘텐츠의 원천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런데 최근 뉴미디어가 대중화되고 영상 콘텐츠 중심의 소비가 증가하면서 소비자들이 더 이상 책을 찾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출판 산업은 매년 악화일로(惡化一路)를 걷고 있다. 책을 대체할 수 있는 콘텐츠들은 넘쳐나고 있고, 숏폼 콘텐츠 이용량은 증가하며, 바쁜 현대사회 속에서 점점 짧게 요약한 콘텐츠만을 선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읽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면서 ‘책을 읽지 않는 시대’가 되고 있다.

2030에 다가온 ‘텍스트힙’ 현상
그런데 최근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책’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코로나 이후 3년 만에 ‘2024 서울국제도서전’이 지난 7월 코엑스에서 열렸는데 성황리에 종료됐다. 3층이라는 불편한 위치에도 불구하고 무려 15만 명의 방문객이 도서전을 찾았고 이 중 약 70% 이상이 2030세대였다고 한다. 또한 예스24 발표 자료에 따르면 2024년 1~9월 세계문학전집 시리즈 도서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5.8% 증가했으며, 특히 20대의 구매 비율은 14.3%로 5년 전보다 두 배가량 늘었다고 한다. 독자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매우 반가운 소식이다. 그런데 매년 독서율이 크게 감소하고 있는 상황에서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일까? 여기에는 최근 MZ세대들이 ‘텍스트힙(Text-Hip)’에 열광하고 있는 현상을 포함한 복합적 원인들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먼저 ‘레트로(Retro) 열풍’에 주목해야 한다. 레트로라는 용어는 추억(Retrospect)의 준말로 과거의 향수, 전통, 추억 등을 그리워하고 그것을 재현하려는 현상을 말한다. 1970년대 중반 프랑스 저널리스트들이 처음 사용했다. 일반적으로 경기불황이 지속되고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증가할 때 레트로가 나타나는데, 이는 경제위기와 사라져 가는 인간성에 대한 그리움을 과거의 추억 속에서 찾고자 하는 바람의 표상이다. 요즘 주목받고 있는 레트로에서 흥미로운 점은 MZ세대들이 레트로를 신기해하면서도 희소한 경험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뉴트로’나 ‘힙트로’와 같은 새로운 문화로 승화시켜 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복고를 신선하게 생각하고 힙하게 즐기고 있다는 것이며, 복고의 대상도 예전에는 자동차, 의류, 음악 등에서 최근에는 텍스트와 독서로 이어지고 있다.

디지털 세상 벗어나려는 ‘디톡스’ 주목
또한 ‘디지털 디톡스(Digital Detox)’에도 주목해야 한다. 디지털 경제가 가속화되면서 스마트폰의 활용도가 다양해지고, 디지털 콘텐츠와 서비스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다. 이처럼 편리한 환경과 기능들이 제공되고 있지만 한편에서는 부정적 현상들도 나타나고 있다. 특히 소설미디어와 숏폼 콘텐츠에 대한 중독적인 소비가 늘어나면서 가짜 뉴스, 딥페이크 성범죄 등 사회적 문제로까지 확산하고 있다. 이렇게 디지털 중독에 빠지면서 최근 불안감, 우울감, 무기력감 등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그러면서 각종 디바이스, 인터넷, SNS 등에 대한 중독으로부터 벗어나 심신을 치유하기 위한 디지털 디톡스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디지털 세상에서 벗어나 운동, 여행, 종이책 읽기 등의 활동들을 늘리고 있다.

마지막으로 ‘문해력(Literacy)의 저하’가 심각해지고 있다. 최근 여러 매체들을 통해 ‘심심한 사과’, ‘시발점’, ‘사흘’, ‘우천시’, ‘중식’, ‘추후 공고’ 등의 표현을 잘못 이해하면서 문해력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정보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에게 문해력은 정보를 분별하고, 비판적인 생각과 사고를 하며, 여러 정보들을 활용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런데 MZ세대들은 무수하게 생성되는 정보들 속에서도 주로 영상 매체에서 정보를 찾고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면서 긴 글을 집중해서 읽기 어렵게 됐으며 생각하는 힘도 크게 줄어들고 있다. 당연히 어휘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니콜라스 카(Nicholas Carr)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서 “기술혁명을 통해 디지털 기기가 생활을 편리하게 도와주기도 하지만 생각하는 힘도 빼앗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처럼 글 속에서 내용의 의미를 해석하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과 경험에 통합해 나가는 과정이 중요해지고 있다. 그러면서 최근에는 문해력 향상을 위한 방안으로 독서, 토론, 글쓰기 등에 대한 관심들이 커지고 있다.

텍스트힙, MZ세대 특유 책·독서법 인정해야
이처럼 여러 복합적인 원인들과 맞물리며 MZ세대들이 ‘텍스트힙’에 열광하고 있다. 특히 자신만의 모습이나 취향에 집중하는 초(超)개인화 현상이 가속화하면서 자신을 더욱 과시하기 위한 수단으로 독서를 활용하고 있다. 즉, 소수만 하거나 힙한 행위들을 SNS에 공유해서 ‘있어빌리티(있어ability)’하게 보이는 것이다. 물론 인간은 누군가로부터 주목받고 싶고, 있어 보이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다. 최근 이러한 표현이 대표적인 지식 문화 매체인 책과 독서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지적 허영으로 보인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텍스트힙 독서를 일시적 현상으로 바라보는 경향들이 많다. 하지만 너무 지나친 기우는 아닐까? 우리가 정의해 놓은 고정 개념의 틀을 깨고, MZ세대들이 책과 독서에 접근하는 방법이 다름을 인정해주면 된다. 마치 고궁이나 한옥마을에서 한복을 입는 것이 새로운 문화 놀이로 승화된 것처럼 말이다.

정보 접근성이 편리해졌지만 가짜 정보의 판별, 능동적 사고, 문제해결 능력 강화 등을 위해 인지적 기능이 더욱 필요해지고 있다. 이러한 능력을 키우기 위해 읽기와 쓰기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신기하게도 글자는 인간의 경험을 확장시키는 데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데, 글의 구성을 이해하기 위한 독서 과정에서 사고력이 향상되며, 다른 정보들과 연계해 확장해 나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독서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으며, 독서를 통해 지식의 시야를 넓힐 수 있다. 어쩌면 요즘이 출판 산업에 매우 중요한 기회일 수 있다.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들을 새로운 독자로 확보하기 위해 책과 독서에 대한 개념을 재정의하고, 그들이 ‘읽고 느끼는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깊이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힙트로 독서로 시작해 책 읽기에 진심인 충성 독자로 발전해 나가길 희망한다. 바야흐로 독서의 계절이 됐다. 청명한 가을날 ‘있어 보이는’ 독서와 함께 여가 시간을 보내는 것은 어떨까?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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