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진한 계명대 광고홍보학전공 교수
필자는 몇 해 전 (사)한국광고PR실학회 제8대 회장으로 봉사했다. “업(業)이 살아야 학(學)이 산다”라는 취임사를 통해 업(業)과 학(學)의 동반성장(同伴成長)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임기 동안 ‘현업에 기여하는 학회’의 역할을 꾸준하고 성실하게 실천했다. 대학에서 산학협력을 강조하는 이유도 이와 같다. 전공에 따라 다소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학의 학문은 오랜 기간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가 속해있는 사회의 산업과 영향을 주고받아 왔다.
달라진 광고·PR 트렌드…고스란히 대학 교육에 영향
필자가 20여 년 동안 몸담았고, 10년 넘게 연구와 후학양성의 길에 있는 광고나 PR의 경우도 다른 산업 못지않게 업(業)과 학(學)은 밀접한 연관성을 갖는다. 대학에서 ‘광고홍보’라는 학과가 개설돼 전공 학생들을 양성하기 시작한 반세기에 가까운 세월 동안 한때는 선배들의 힘겨운 개척기도 있었고, 업(業)과 학(學)에서 엄청난 성장과 인기를 누리던 시기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크게 달라지지 않은 부분은 국내 10대 그룹은 대부분 어느 정도 규모 이상의 종합광고대행사 하나씩은 계열사(House Agency)로 가지고 있다는 것이고, 달라진 상황은 규모는 작지만 전략이나 크리에이티브에서 나름의 특화된 경쟁력을 지녔던 독립광고회사들의 활약을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또 개인의 성향과 능력에 따라 그룹 소속의 대기업에 입사하는 것보다 광고회사에 입사하고자 하는 인재들이 많았고, 그들은 나름 전문가로서 인정받던 시대를 거쳐왔다. 그런데 요즘의 시장은 좀 다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온라인이나 디지털, 그리고 다양한 콘텐츠들이 우후죽순 격으로 광고 시장에 진출하고 성장하면서 다양성과 총량에서는 긍정적 성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업이 활성화되고 성장하고 있다고 판단하는 광고인은 많지 않다. 이러한 크고 작은 틀에서의 유행과 트렌드는 고스란히 대학의 학문과 교육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비단 광고나 PR 산업뿐이겠는가? 국내는 물론이고 세계적인 경기(economy)와 관련한 대부분 산업은 대학의 교육과 연관된다. 경기는 호황과 불황이 되풀이된다. 이렇게 반복되는 경제 현상을 우리는 ‘경기순환(business cycle)’이라고 부른다. 역사상 모든 경기는 ‘확장(expansion)’의 과정을 통해 ‘정점(peak)’에 도달하고, 정점을 찍고 다시 줄어드는 ‘후퇴(recession)’을 반복해왔다. 물론 경기 확장기에는 생산(production)과 소비(consumption)가 동반상승하는 ‘선순환(virtuous cycle)’ 현상이 나타나지만 경기가 위축되는 후퇴기에는 반대의 ‘악순환(vicious cycle)’ 현상이 나타난다. 그리고 이러한 경기침체가 장기간 계속되는 현상을 ‘불황’이라고 하는데 요즘 우리에게 ‘불황’이란 용어는 낯설지가 않다.
대학은 ‘호황’이나 ‘불황’과 어떤 연관이 있을까? 학령인구의 감소세로 대학이 본격적인 위기를 맞기 전부터 산업의 발전 분야와 맞물리는 대학 전공의 성쇠(rise and fall)는 오래전부터 있던 현상이다. 문학이나 어학, 역사나 철학 등 인문학 전공을 시작으로 시대가 필요로 하는 산업과 직접 관련성이 적은 일부 사회과학 분야의 전공, 그리고 자연과학의 중요한 근간이라 할 수 있는 기초과학 분야의 전공들이 상대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반대로 시대적으로 이슈가 되는 산업과 함께 새로운 인기를 누려 왔거나 누리고 있는 대학의 학과들도 있다. 이러한 전공들은 지속적으로 신설되고 성장한다. 오늘날의 대학은 다양한 산업과의 관계 울타리 안에서 숨을 쉰다.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지만 현시대의 사회나 산업과의 연관성이 떨어지는 전공일수록 그 인기도가 떨어지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 부인할 수 없다.
한강이 쏘아 올린 노벨 문학상…문학교육·출판산업 활성화로 이어질까
2024년 하반기 작가 한강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함으로써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에게 원어(original language)로 노벨상 수상작을 읽을 수 있게 하는 ‘행복한 독서’에 대한 빅 이슈를 선물했다. 건국 이래 문학계의 이슈 가운데 이만한 경사는 없었다. 그의 수상을 예견했든 예견하지 못했든 출판 업계는 거의 ‘벼락 맞은 행복’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물론 대한민국에서 시나 소설과 같은 문학적 글쓰기를 업(業)으로 삼고 있었던 수많은 작가에게도 난생처음 느껴보는 자긍과 동기부여의 에너지가 됐을 것이다. 명확하고 체계적이지는 않지만 어떤 칼럼니스트들은 한강의 노벨상 수상이 주는 경제적 효과에 관해 앞을 다퉈 언급하고 있다.
가장 기초적으로는 최근의 수상자들을 거론하면서 그들 대표작품의 다양한 국가 언어의 번역과 이전 작품들의 재출간에서 오는 도서 판매량의 급격한 증가세를 거론하면서 이것들을 산술적으로 계산한 경제가치를 언급한다. 어떤 이는 문학 관광의 효과와 관련 주식의 상승효과를 더해 문학의 활성화가 주는 직·간접적 가치를 언급하고 있다. 어디 이뿐이겠는가? 물론 영화나 음악 그리고 드라마 등을 통해 이미 K-Culture의 역할이 세계에 알려지고 있는 상황이지만 이번 수상을 통해 대한민국의 문학 콘텐츠 분야 또한 폭넓은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글의 힘’이 주는 소프트 파워(soft power)의 역할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여기서 필자는 향후 전망에 대한 궁금증 한 가지를 갖는다. 이번 노벨 문학상 수상이 국내 대학의 문학 교육과 출판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개인적으로는 어떤 이유로도 그 당위성에 동의하지 않지만, 사실 지금까지 짧지 않은 기간 동안 대학에서 문학이나 역사나 철학과 같은 기초적인 순수 인문학이 홀대받아 온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심지어 어느 대학에서는 관련 전공이 폐과되기도 하고, 학과나 전공이 살아 있다고 하더라도 신입생 모집이나 졸업생의 진로와 취업 등에서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유는 단 하나, 관련 산업의 비활성화다. 다행히 올해 초부터 소위 MZ라 불리는 세대들에게 ‘종이책 읽기’가 나름의 ‘핫(hot)한 트렌드’라고 하길래 “독서가 트렌드가 되는 시대에 내가 살고 있구나?”라는 묘한 감정과 더불어 “그래! 잠깐의 트렌드라도 좋으니 요즘 학생들 책 좀 읽자!”라는 바람을 갖던 시기에 국민이 마주한 이번 수상 소식은 어떤 힘을 더할까? 항상 그래왔듯 ‘끓다 마는 라면’에 그칠까? 아니면 오랜 시간 우러나는 ‘뚝배기 진국’으로 우러날까?
‘수동적’ 대학 교육, ‘능동적 기여’ 방법 모색해야
우리는 일반적으로 중요한 이슈나 문제해결의 장(場)에 마주하면 본질적 가치보다는 매우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으로 판단하기 쉽다. 대학의 교육도 크게 다르지 않다. 최소한 관련 산업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일반적으로 수동적이다. 산업의 변화에 따라 움직이다보니 주도적이지 않고 추종적이다. 더욱 안타까운 점은 학계나 산업계에 그런 관계 구도에 대한 문제의식도 크게 존재하지 않는다. 대학이 모든 산업을 이끌 수는 없어도, 산업의 변화와 불황을 극복하는 데 능동적이고 긍정적으로 기여할 방법은 없을까? ‘업생학생(業生學生)’이나 ‘업사학사(業死學死)’가 아닌 ‘학(學)으로 업(業)에 기여’하고 ‘학(學)으로 업(業)을 응원’하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모색할 수는 없을까? 업(業)이 가지고 있는 문제를 다양한 관점에서 파악하고, 현실적 솔루션을 제공해 새롭고 긍정적인 변화를 리드하는 대학 교육의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기쁘고 행복하다. 이것이 ‘상생(相生)’과 ‘동행(同行)’의 가치를 실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최근 지역 CEO들과 함께하는 세미나 자리에서 “교수도 생산직입니다!”라는 엉뚱한 화두를 꺼내 큰 공감을 받은 적이 있다. 교수라는 직업이야말로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를 생산하는 생산직이자 공장장이다. 어떻게 교육하는가에 따라 똑같은 원료나 재료를 가지고도 전혀 다른 제품이나 브랜드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 기업이 원하는 인재를 양성하고 산업이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대학 교육이 방향성을 잡아야 한다는 수동적 의미보다 산업이 가지고 있는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고, 산업의 가치를 재정의하고, 산업이 가야 할 바람직한 방향성을 제시하는 데 협력하고 기여한다면 ‘금상첨화(錦上添花)’다. 산업을 무시한 교육은 자칫 탁상공론에 불과하고, 이론이 없는 실무는 사상누각이 될 수 있다. 대부분 학문과 산업은 마치 피아노 연주처럼 왼손의 건반과 오른손의 건반이 환상적 조화를 이루며 클라이맥스를 향해 달려갈 때 가장 아름답고 감동적인 연주를 완성해 낸다.
“업(業)이 살아야 학(學)이 산다”라는 이번 칼럼의 제목을 “학(學)으로 업(業)을 살리다”로 바꿀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대한다.
<한국대학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