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철 변호사(법무법인 지평)
고등교육법 제4조 제3항은 대학의 폐지를 규율하고 있다. 공립학교나 사립학교의 설립자·경영자가 학교를 폐지하려는 경우에는 교육부장관의 인가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A대학은 위 조항에 따라 폐지인가를 신청했다. 폐지사유는 ‘신입생 감소로 인한 학교운영의 재정적 어려움’이라고 밝혔다. 학생과 재산 처리계획을 담고 학교폐지 예정일도 기재했다. 교육부장관은 몇 가지 조건을 부과했다. 인가받은 날로부터 학생모집을 정지하고 학생편입학을 적극 추진해 그 결과를 교육부에 보고하도록 했다. 편입학 협의가 완료되지 않은 학생들에 대해서도 끝까지 편입학을 적극 지원해 학습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할 것 등의 조건을 부과하며 폐지를 인가했다. 그러자 A대학교 교수협의회가 폐교인가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해 다퉜다.
피고는 원고에게 인가처분의 취소를 구할 법률상 이익이 없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서울행정법원은 원고가 이 사건 소를 제기해 처분의 취소를 구할 이익이 있다고 보아 각하하지는 않았다. 다만 결론적으로 원고의 청구는 기각됐고 항소하지 않아 판결이 확정됐다(서울행정법원 2019. 1. 10. 선고 2018구합54989 판결).
이 사건을 들여다보면, 고등교육법에서 대학의 폐지에 대해 충분한 규율을 하지 않고 있다는 입법 공백을 발견할 수 있다. 고등교육법과 같은 법 시행령에 따르면, 사립학교의 설립자·경영자가 학교를 폐지하려는 때에는 교육부장관의 인가를 받아야 하는데, 학교폐지의 인가를 받으려는 자는 폐지사유, 폐지연월일, 학생·학적부의 처리 방법, 학교 재산의 처리 방법이 기재된 서류를 갖춰 교육부장관에게 신청하면 된다. 문제는 관련 법령에서 그 밖에 학교폐지 인가 과정에서 제출해야 하는 서류나 구체적 심사기준, 절차 등을 규정하고 있지 않다는 데에 있다. 고등교육법의 다른 조항에서 규율하는 학교폐쇄 명령과 달리 폐지 사유나 요건에 대한 언급이 없다.
사립학교 폐지 시 행정청의 역할
이러한 관계 법령에 비춰보면, 대학이 폐지될 때 행정청의 역할은 최소한의 사전 규제에만 머물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사립학교의 설립자·경영자가 학교를 자진 폐지하려는 때 행정청이 학교폐지의 사유나 절차의 정당성을 규제·심사할 법적 근거는 없다. 관계 법령에서 학교폐지 인가 신청서류에 폐지사유를 기재하도록 한 것도 행정청이 폐지 사유에 관한 정보를 제공받기 위한 수단에 그친다. 폐지사유의 실체가 존재하는지 또는 그 사유에 타당성이 있는지 심사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 행정청이 정보를 제공받더라도 대학의 폐지 과정에 적절히 개입하는, 규제 혹은 지원과 같은 각 대학의 상황에 상응하는 처분을 할 법적 토대가 없다. 학교폐지 사유의 정당성은 학교폐지 절차의 정당성과 같이 기본행위인 학교폐지 결정의 하자에 관한 것이므로 학교폐지 인가의 심사 사항에 속하지 않게 된다.
그간 성장 시대에는 대학의 폐지에 관심을 둘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인구가 계속 늘어나고 대학진학율이 증가하는 시기에는 굳이 대학의 폐지에 대해 깊게 고민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수축사회가 도래하는 현실에서는 다르다. 대학신입생의 숫자가 급감하는 오늘날에는 대학의 구조조정과 통폐합, 나아가 폐지에 대해서도 진지한 논의를 해야 한다.
대학 구조조정과 구조개선을 정면으로 다루는 법률안이 제출되고 있으나 아직 국회 문턱을 넘지는 못하고 있다. 대학의 구조조정을 넘어 폐교에 이를 때에는 많은 이해관계자들이 있으므로 행정청의 재량으로 인가에 조건을 부과하는 방식을 넘어 세밀한 조율을 할 수 있는 입법적 근거가 요구된다. 폐지에 이르지 않는 구조조정과 개편에도 현재 대학의 현실에 부합하는 규제와 지원이 필요할 것이다.
종래 대학구조조정 과정에서는 교원의 신분보장을 침해하지 않는지가 자주 문제되는 쟁점이었다. 사립학교법에서는 교원의 신분을 보장하는 조항을 따로 두고 있다. 구체적으로 보면 형의 선고, 징계처분 또는 사립학교법에서 정하는 사유에 의하지 않고는 교원 본인의 의사에 반해 휴직이나 면직 등 불리한 처분을 받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이때 다툼이 되는 지점은 단서 조항이다. 학과의 개편 또는 폐지로 인해 직책이 없어지거나 정원이 초과된 경우는 가능하다는 단서의 의미가 문제된다.
학과 개편·폐지 시 충족 요건
예외로 허용되는 학과 개편이나 폐지는 어떤 요건을 충족해야 할까. 대법원은 ‘학과의 개폐에 의하여 폐직이나 과원이 된 때’는 적법한 학칙 개정절차를 통해 학과가 폐지되거나 편제가 축소되는 등으로 인해 소속 교원의 직위나 정원이 없어지게 된 경우를 의미한다고 한다(대법원 2017. 1. 12. 선고 2015다21554 판결). 핵심은 ‘적법한 학칙 개정절차’라는 대목이다. 학칙 개정절차가 필요할 뿐 아니라 적법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법원은 학칙을 개정해 학과를 폐지한 후 소속 교수를 직권면직한 사안에서, 교수회의에 자문을 요청해 교수회의의 심의를 거쳐야 함에도 이러한 절차를 누락한 개정은 적법하지 않고, 그에 따른 직권면직이 위법하다고 판단했다(대법원 2010. 6. 24. 선고 2010두5103 판결).
나아가 대법원은 국가공무원법과 지방공무원법을 사립학교 교원에도 유추 적용한다. 사립학교법에 명시적으로 정하지 않은 요건을 요구한다. 면직시킬 때에는 임용 형태, 업무 실적, 직무수행 능력, 징계처분 사실 등을 고려해 면직 기준을 정해야 한다는 제한이다. 이러한 제한에 따라 실적과 능력 등을 심사한 결과 별다른 하자가 없는 교원은 가급적 구제하는 조치가 요구된다는 것이 대법원의 입장이다(대법원 2008. 3. 13. 선고 2007다66071 판결). 객관적 기준과 구제조치가 부족한 경우 교원 임면에 관한 재량권을 일탈·남용했다고 평가될 수 있다.
학습권도 중요한 고려 요소다. ‘학과의 폐지’는 학생의 학습권을 실질적으로 침해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만 허용된다. 재적생에게 피해가 없어야 한다. 학과를 폐지하기 전에, 사립학교 법인은 대상 학과에 학적을 두고 있는 재학생과 휴학생을 포함한 모든 재적생에 대해 전과 등의 적절한 조치를 취해 재적생이 존재하지 않게 돼야 비로소 학과를 폐지할 수 있다. 모든 재적생의 학습권이 보호돼야 한다. 학습권 보호를 위해 합리적 조치가 취해져 학습권이 실질적으로 침해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학습권 보호가 우선된다.
그런데도 학생들의 학습권에 대한 사항은 학과의 폐지 혹은 대학의 폐교에서 소홀히 다뤄지는 면이 있다. 재학생의 학습권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 어떤 요건을 충족해야 하는지, 구체적 내용을 상세하게 요건화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폐과뿐 아니라 대학의 통폐합과 폐지 과정에서도 학습권 보호를 위한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일방적 폐교는 불법행위가 될 수도 있다. 폐교를 이유로 학교법인의 위자료 지급의무가 인정된 사례가 있다. 사립초등학교를 운영하는 학교법인이 학교를 무단으로 폐교함으로써 학습권·교육권이 침해됐다는 이유로 재학생 등이 법인과 이사장을 상대로 위자료 지급을 구한 사안이다. 대법원은, 학교법인 등이 일방적·전격적으로 폐교 결정을 함에 따라 재학생들의 학습권이 침해됐다는 이유로 법인 등의 위자료 지급의무를 인정한 원심 판단을 수긍했다(대법원 2022. 6. 16. 선고 2022다204708 판결). 대학이 문제된 사례는 아니고 일방적으로 폐교했다는 특수한 사정을 일반화하기도 어렵지만 일단 폐교가 불법행위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대학에 입학할 연령대의 인구가 계속 줄고 있다. 대학의 구조조정과 개편, 나아가 폐교에 이르는 일이 빈번해질 수 있다. 대학의 구성원과 여러 이해관계자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촘촘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한국대학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