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한주 한국대학경쟁력연구원 대학재정운용분석센터장

양한주 한국대학경쟁력연구원 대학재정운용분석센터장
양한주 한국대학경쟁력연구원 대학재정운용분석센터장

한국 사회가 의료대란이라는 중대한 시험대에 올랐다. 지난 11월 11일과 17일에 걸쳐 열린 ‘여·야·의·정 협의체’는 의료계와 정부 간 갈등이 얼마나 깊은 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정부는 2025학년도 의대 정원을 2024학년도 대비 1509명 증원한 4565명으로 확정했지만, 의료계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특히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와 의대생 단체는 협의체 참여를 거부하며 정부 정책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의료계는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정원 증원 계획을 철회하고, 이를 전면 재검토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전공의와 의대생들은 수련 환경 개선과 필수 의료정책의 근본적 수정 없이는 협상이 불가능하다는 강경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반면 정부는 대입 전형 시행계획이 이미 확정된 만큼 정원 변경은 법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2026학년도 의대 정원 증원 문제를 둘러싸고도 양측의 의견 차는 뚜렷하다. 정부는 추계위원회를 통해 원점에서 증원 규모를 논의하자고 제안했으나, 의료계는 이를 2027년 이후로 미루자고 주장한다. 여기에 의대 교육의 질을 평가하는 의학교육평가원(의평원)의 자율성을 둘러싼 논의까지 더해지며 협상은 난항을 겪고 있다.

의료계와 정부의 대립이 길어지면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국민이다. 의사들의 파업으로 인해 치료를 받지 못하고 소중한 생명을 잃은 환자들의 억울함은 누가 책임질 수 있는가. 국민은 생명을 볼모로 잡힌 채 의사들이 복귀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파업으로 인해 발생한 의료 공백은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며, 사회적 신뢰마저 흔들고 있다.

만약 화재가 발생했는데 소방관이 파업으로 출동하지 않고, 정전이 됐는데 전력공사가 복구를 거부하며, 전쟁이 발발했는데 군인이 파업으로 임무를 수행하지 않는다면 국가는 어떻게 존립할 수 있겠는가. 의사들의 파업도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국민의 생명과 국가의 안위를 위협하는 파업은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의대 정원 증원은 국가의 인력 수급 계획에 따른 정책이다. 특정 분야의 대학 입학정원이 그 분야 종사자들의 요구로 결정된 사례는 전무하다. 정부의 인력 수급 계획에 따라 합리적으로 결정해야 할 의대 정원이 마치 의료계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는 현 상황은 비정상적이다.

의사 수가 부족하지 않다는 주장은 국민의 의료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OECD 통계와 별개로, 환자 1인당 평균 진료 시간이 3분에 불과한 현실은 의사 인력 부족을 여실히 보여준다. 진료 대기 시간이 길어지는 상황에서 환자들은 의사와 충분히 소통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외면한 채 정부의 정책을 반대하기 위해 파업을 지속하는 것은 국민의 신뢰를 잃게 만드는 행위다.

의료대란의 근본 원인은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정책이 아니라, 의사들이 파업으로 의료 서비스를 중단한 데 있다. 의료계는 지금이라도 정부와 협상 테이블로 돌아와 합리적 대안을 논의해야 한다. 필자는 여·야·의·정 협의체에 모든 의사단체가 적극적으로 참여해 바람직한 결론을 도출함으로써 의료대란 이전의 상태로 복귀할 것을 간곡히 요청한다.

정부는 의료계의 요구를 최대한 수용하고 있지만 이미 발표된 대입 전형 계획을 철회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불가능한 요구를 지속하며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잡는 상황은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다. 국민은 의료대란의 스트레스로 이미 극도로 지쳐 있다.

정부와 의료계는 이제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로 국민의 입장에서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 의료계는 특권 의식을 내려놓고 국민 생명을 지키는 본연의 책무에 충실해야 하며, 정부는 현실적인 문제를 반영한 정책으로 의료계와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양측이 성숙한 자세로 협력할 때만이 의료대란을 해결하고 국민의 신뢰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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