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훈 제이앤드컴퍼니 이사
지난 2015년 유엔이 17개 항목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발표했고, 2020년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CEO 래리핑크는 투자대상이 되는 기업 CEO들에게 보내는 연례서한에서 “석탄개발 업체나 화석연료생산 기업 등엔 투자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어 2021년 연례서한에서는 전 세계 투자기업에 넷-제로(Net-Zero) 계획을 공개적으로 요구했으며, 2021년 EU는 그린텍소노미라는 새로운 산업분류체계를 통해 친환경 사회를 위한 기준을 제시했다.
이러한 흐름은 인류가 삶을 영위하는 데 가치지향적으로 변화하는 가운데, 지구가 없으면 우리의 삶도 없고, 사회가 없으면 인간도 없으며, 모두에게 투명하고 공정한 사회를 지향하는 데 대한 절박한 시대정신이 반영된 것이다. 결국 ESG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인류 생존의 문제가 됐음을 의미한다.
경제적 가치 창출 논리, ESG 흐름 막지 못해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어떠한가? 혹자는 ESG가 체감할 수 없는 거대 스케일의 주제로 대중을 현혹해 사회적 문제를 기업에 떠넘기고 경제적 가치 창출을 저해할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가 반영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제기된 과학적 경고를 토대로, 우리 사회가 진일보하도록 형성된 공감대 안에서 이제는 그 가치창출의 논리로도 피해갈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부정할 수 없다.
유럽연합은 2024년 3월 공급망 내 모든 기업이 ESG 가치를 공유하도록 하는 공급망실사법(Corporate Sustainability Due Diligence)을 통과시켰고, 이에 따라 당장 시멘트, 전기, 비료, 철 및 철강 제품, 알루미늄, 수소 등 6대 품목을 유럽에 수출할 때 우리 기업은 생산단계에서 발생한 탄소배출량을 보고할 의무와 탄소세 부과의 부담을 지게 됐다. LG화학의 배터리납품계약 무산을 비롯해 BMW는 3년동안 150여개사와 거래를 중단(뉴스트리, 2024.04.19.)했으며, 우리 금융위원회는 2026년부터 ESG공시를 의무화한다고 발표했다. 대한상공회의소 조사결과에 따르면 MZ세대 64%는 “비싸도 ESG 실천기업 제품을 구매하겠다”는 의향을 내비치기도 했다. 여기서 우리는 ESG가 현학적 표현의 미사여구(美辭麗句)가 아님을 체감할 수 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서 우리 대학도 예외일 수 없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대학 역할론이 말해준다. 인류 문명의 성과는 배움과 탐구로부터 시작했듯, 연구와 교육활동을 통한 ESG 전도사로서 대학의 역할이 우리 사회에 필수적이라는 생각이다. ESG 활동 및 연구, 그리고 ESG 맞춤교육을 통해 우리 사회의 ESG전환을 선도해야 한다. 이것이 ESG시대 대학이 모색해야 할 방향성이라 생각한다. 시대적 요구에 따라 ESG 교육과정 확대,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발간 등 선제적인 ESG 대응발전계획의 수립이 필요하다.
ESG를 대학에 도입하기 위한 정부 정책의 변화도 엿보인다. 정부지정 공식 대학평가인증기관인 한국대학평가원은 2026년 시행 예정인 4주기 대학기관평가인증에 지속가능발전(SDGs, ESG, 탄소중립)에 대한 항목을 추가할 계획을 담은 대학기관평가인증 평가기준(안)을 발표한 바 있고, 이러한 계획은 학계 공감대 형성 후 수년 내 이뤄질 전망이다. 이는 교육부 재정지원의 근거가 대학기본역량진단평가에서 대학기관평가인증으로 이동하는 흐름 위에 있어 더욱 의미가 크다 할 수 있다.
국내 대학의 현실은 어떠한가? 안타깝지만, 현재 국내 대학은 지속가능성 부문에서 해외 선진 대학들에 뒤처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2024년 QS랭크를 보면, 글로벌 상위 100개 대학 중 국내 대학 5개 대학이 포함돼 있지만, 지속가능성 순위에서는 1개 대학(서울대, 46위)이 유일하며, 나머지 4개 대학은 100위권 아래(103위~394위)에 랭크됐다. 지표 부문별로 비교해 보면 국내 지속가능성부문 상위 3개 대학의 주요 지표들이 글로벌 Top 50 평균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으며, 특히 사회와 환경 부문의 개선이 필요했다. 또한 2024년 QS 지속가능성평가에서 국가별 대학 점수의 평균값을 기준으로, OECD 38개 국가 중 QS 지속가능성평가 전체 점수(Overall Score)가 나타난 33개 국가를 비교한 결과, 국내 대학은 전체 20위에 위치하면서, OECD 평균값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ESG 비전과 목표의 부재, 그리고 관련 연구활동 및 공감대 부재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기존 ‘대학이념 및 경영’에 대한 평가영역을 ‘대학경영 및 사회적 책무’로 변경하고 ‘SDGs, ESG, 탄소중립 실천 계획 및 실적’을 세부지표로 설정함으로써 ‘대학의 건학이념 및 발전계획 등에 부합하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즉 SDGs, ESG, 탄소중립 등을 위한 구체적 계획을 수립하고 있는가’를 확인하는 4주기 대학기관평가인증 평가기준안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글로벌 수준 못 미치는 국내 대학, 대응책 마련 시급
그렇다면 ESG시대, 대학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ESG시대 우리 대학의 역할과, 그 철학적 취지는 전술한 방향성을 통해 제시했으니, 이제는 현실적으로 대응할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때를 같이해 한국ESG경영원에서 대학ESG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작년에 이어 올해 두 번째 버전을 발표했으며(2024.06.17), 이는 대학이 해야 할 일에 대한 가이드가 될 수 있다.
첫째, ESG 비전과 목표를 수립하고, ESG 경영진단을 주기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또한 실무적 교과과정을 개발하고 지원하며, 연구재단의 ESG 연구조직 신설을 통해 친환경, 기후변화, 재난안전 등에 대한 ESG 연구활동을 확대해야 한다.
둘째, 탄소배출량을 주기적으로 측정함은 물론, 연도별 감축목표를 설정하고 소비하는 전기를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RE100 이행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대학은 연구 및 교육기관 특성상 전기소비를 통해 많은 양의 탄소를 배출하고 있다. 수도권 대학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량이 연 40만 톤에 달하며, 지역사회 온실가스 배출 및 에너지사용량 가운데 학교시설이 차지하는 비중은 10.2%에 달한다.
셋째, ESG 전문인력 양성에 힘써야 한다. ESG 교육모델을 구축해 마이크로디그리, 부전공, 전공 등에 반영해야 하며, 관련 대학원 과정을 신설하고 평생교육 및 특성화교육을 통해 인재양성 대상연령을 확대해야 한다.
넷째, ESG 운영위원회를 설치해 ESG 전담조직을 신설하고 전문인력도 채용, 배치함과 동시에 위임전결규정 개정을 통해 법인과 학교의 역할을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또한 차세대통합 시스템 구축을 통해 회계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다.
ESG 시대를 맞아 대학이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실행에 옮기는 것은 선택이며, 이를 실현하는 것은 우리 대학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한국대학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