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상기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진학지원센터장

배상기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진학지원센터장
배상기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진학지원센터장

지인의 딸 A양과 B군의 결혼식에 참석했다. 결혼식은 깨끗한 장소에서 가까운 친지만 초대한 작은 규모로 진행된 아주 훌륭한 느낌을 받았다. 청소년의 진로에 관심을 두고 공부하는 필자에게 신랑과 신부의 직장과 나이가 귀를 자극했다. 신랑 신부는 평소에 필자가 주장하는 진로와 매우 유사한 진로를 선택하고 이뤄왔다. 언론에서 책임 없이 말하고, 사회에서 정도라고 생각하는 것과 다른 진로를 선택한 것이다. 신부 A양은 공무원이고, 신랑 B군은 대기업 기술직 사원이다.

A양은 국립대학교의 경상계열 학과를 졸업했다. 고등학교 때는 역사를 좋아해서 역사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그러다가 현실적으로 공무원이 자신에게 더 어울릴 것 같아서 경상계열 학과로 진학했다. 그러나 대학교 3학년이 끝날 즈음에 학업을 중단하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겠노라고 가족에게 선언했다. 그리고 한 해에 합격할 목표를 세우고 공부에 돌입했다. 그녀의 부모는 A양이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도록 도울 경제력이 되지 않았기에 스스로 인터넷 강의로 공부했다. 부모는 A양이 쉽게 합격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A양은 한 해에 국가직 공무원과 지방직 공무원 시험에 모두 합격했다. 한 곳에 정착해 생활하기를 바라는 A양에게 전국적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은 국가직은 매력이 적었다. 그래서 지방직 공무원을 선택했고, 1년간 휴직하고 다니던 대학을 졸업했다.

신랑 B군도 필자가 생각하는 진로를 걸어온 훌륭한 청년이다. 중학교 3학년 때 사업을 하고 있는 아버지의 권유에 따라 같은 도시에 있는 기계공고(마이스터고등학교)에 진학했다. 대학에 진학하는 것보다 앞으로 살아가려면 기술이 좋아야 하고, 남들이 하지 않는 좋은 기술을 가지면 평생을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B군은 남들이 별로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용접을 전공했다.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학교 수업이 끝났어도 혼자 기술을 연마했고 주말에도 노력했다. 군대 전역 후에는 심도있는 기술을 좀 더  배우고 발전시키기 위해 전문학사도 취득했다. 교수보다도 더 잘하기에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말할 정도로 용접에는 자신이 있었다.

또 몇 년 전 국내의 대기업에 취업했다. 서류를 내자마자 합격한 것이다. 이제 B군은 그 기업이 망하기 이전까지는 기술자로 평생을 살아갈 것이다. 게다가 B군과 같이 용접을 잘하는 사람이 드문 상황이어서 거의 독점적 지위를 누릴 수 있으므로 일자리는 안정적이다. 설사 그 회사를 그만둔다 해도 용접에 대한 수요는 꾸준히 있을 것이고, 용접 기술의 최상위권에 다다르기까지 들인 노력으로 세상을 헤쳐 나가면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런 그가 공무원인 A양을 아내로 맞이했으므로 더욱 안정된 삶을 누리게 될 것이다.

A양과 B군의 선택은 참으로 현명하다. 최근 언론에 보도된 바에 의하면 대학을 졸업하고도 일자리를 못 찾는 청년이 400만 명을 넘는 상황에서 둘은 아주 지혜로운 진로를 가고 있다. 평생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고 일자리를 찾았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고 젊은 나이에 배우자를 만나 가정을 꾸렸다. 그들의 인생은 다른 동년배보다 훨씬 앞섰다. 경제적으로나 가정적으로, 그리고 자녀를 갖는 기쁨 등도 동년배보다 클 것으로 생각된다. 이런 상황은 평생 지속될 것이고 우리 사회를 밝게 비추는 데도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필자는 A양과 B군 같은 경우가 많아지기를 바란다. 대학 졸업장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책임지려고 하는 진로를 선택하는 사람들 말이다. 20대 중·후반에는 자립할 능력을 갖추고 결혼도 할 수 있다면 우리 사회는 더 밝아지고 희망이 있다. 대졸 백수가 넘쳐나도, 이름 있는 대학 진학이 성공적 인생이라고 착각하게 하는 언론과 사회적 분위기가 문제다. 수능 성적과 수시 합격자가 발표되면서 정시가 시작되는 12월은 대학 입시로 떠들썩해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버팀목은 떠들썩한 대학 입시가 아니라, A양과 B군 같이 인생을 야무지게 살아가는 청년들이다. 돈이 궁핍하면 청장년과 노년이 불행하며 사회 역시 불행하다. 이제는 대학이 아니라 경제적 자립을 먼저 강조해야 할 때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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