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우 한국대학신문 고문
삼실(三實)은 내 생애 전체를 관통하는 생명 줄이다. 삼나무 껍질에서 뽑아낸 질긴 삼실처럼 나의 삶을 이끌어 준 삼실은 ‘성실(性實)’, ‘진실(眞實)’, ‘절실(切實)’이다. 성실은 부지런함과 정성으로 일함이며, 진실은 순수하고 용기 있는 자세요, 절실이란 뼈저리고 긴요하며 꼭 맞게 이뤄냄이다.
성실이란 무엇인가? 성실은 혼자 열심히 일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 생각을 열심히 주장하고 행동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성실의 요체는 ‘사람에 대한 관심과 정성’, 그리고 ‘경청과 소통’이다.
성실이란…사람에 대한 관심‧정성, 경청‧소통
예컨대 나는 사람의 이름을 소중하게 여긴다. 이름은 한 사람의 인격 전체를 의미한다. 김춘수 시인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노래했다. 교육부 총무과장이 되었을 때, 나는 먼저 400명이 넘는 교육부 직원들의 이름을 외웠다. 사무실 벽에 직원들의 사진과 이름을 붙여두고 보다가, 누가 들어오면 커텐으로 가렸다. 복도에서 ‘김○○ 사무관!’하고 부르며 근황을 물으면 그는 깜짝 놀랐다. 인사를 담당하는 상사가 그 많은 직원 중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 감동할 수밖에. 어디서 누구와 어떤 일을 하든, 이 작은 일은 소통과 신뢰의 문을 활짝 열어 줬다.
재능대 총장 시절도 마찬가지다. 교수와 직원을 포함해 200명이 넘는 이름을 부임하자마자 곧 모두 외웠다. 나는 매일 열 사람씩 정해 점심식사를 했는데, 그날 만날 사람들의 이름과 인적 사항을 알고 만났다. 직원이나 교수들은 처음 만난 총장이 손을 잡고 이름을 부르며, 자신을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가끔 도대체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 묻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이 기술이나 능력의 문제일까? 아니다. 그것은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는 철학이요 실천의 문제다. 단순한 부지런함과 노력을 뛰어넘어 한 사람 한 사람을 대하는 ‘관심과 정성’ 말이다. 나와 함께 중요한 일을 해 낼 너무도 소중한 사람이 아닌가.
교육부 기획관리실장으로 일할 때 나는 각 실‧국에서 처리하기 어려운 사안은 모두 내게 가져오게 했다. 그러다 보니 국회의장에게 오는 민원도 내가 해결해 주기까지 했다. 나는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라면 어디든, 누구라도 만났다. 그러자 사람들은 나를 ‘민원 해결사’라고 불렀다. 그러면 나는 만능 해결사였을까? 결코 아니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경우 어떻게 해야 할지 그 방도를 단계별로 세심하게 안내해 줬기에 모두 만족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기우가 해결하지 못하는 일은 없고, 이기우가 할 수 없는 일은 아무도 못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진실이란…나 자신과 싸우는 일
진실이란 무엇인가? 진실은 현실에 안주하거나 명예나 이익을 탐하는 일이 아니다. 진실은 목표를 정하고 두려움에 맞서 자기 자신과 싸우는 일이다.
한국교직원공제회 이사장으로 일할 때다. 우리나라 민자사업 1호 인천공항고속도로 건설에 나는 6666억 원을 과감히 투자했다. 총 1조 4602억 비용 중 절반에 가까운 액수다. 컨소시엄으로 여러 기관들이 참여했는데, 그 중 압도적 투자였다. 그 결과 수익률 13.38%라는 놀라운 성과를 이뤄냈다. 두려움을 이기고 사심 없는 결단을 내릴 수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재능대 총장이 됐을 때도 문제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목표에 도전했다. 처음에 부임했을 때 슬펐다. 학생, 직원, 교수들 모두 재능대에서 공부하고, 근무하고, 가르치는 일을 당당히 말하지 못했다. 학교의 재정 상황도 어려웠고, 가장 낮은 등급의 학생들을 받아도 모집 인원을 채우지 못했다. 인천시에 사는 학생들은 먼 지방으로 갈 망정, 재능대에 오고 싶어하지 않았다. 나는 학교를 혁신하기 위해 교육과정을 바꾸고, 교육환경을 개선하고, 취업률을 높일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그에 앞서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나 혼자는 불가능한 일이기에 대학 구성원들의 열정과 긍지에 불을 붙여야만 했다.
나는 과감하게 신입생의 입학 성적 기준을 상향시켰다. 첫해는 자격을 8등급 이상으로 올리고, 그 다음 해는 7등급 이상만 받는 식으로 점차 기준을 올렸다. 9등급으로도 채우지 못했는데, 어떻게 7등급 이상의 학생으로 입학 정원을 채울 수 있냐고 반대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자신감이다. 정면 승부를 통해 실력 있는 학생들이 지원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 학생모집 전략회의에서는 서울 등 먼 곳에 사는 학생들이 쉽게 올 수 있도록 통학버스를 더 많이 운용하자는 의견을 내놨다. 나는 단호히 반대했다. 멀리서 학생들을 데려올 필요가 없다. 인천에 사는 학생들이 가까이서 다니기 좋은 학교를 만들어야 한다는 게 나의 신념이었다. 그 결과 재능대의 명성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4년제 대학을 포함해 서울, 경기, 인천의 수도권에서 취업률 1위 대학, 대학 운영을 배우기 위해 전국에서 가장 많이 찾는 대학이 됐다.
진실은 거짓 없는 순수함을 뛰어넘어 목표를 정하고 두려움에 맞서 용기 있게 결단하고 실천하는 일이다.
절실이란…상대를 울리는 간절함
절실이란 무엇인가? 절실은 삼실 중 가장 중요한 마음이다. 절실은 당위나 필요와 같은 밋밋한 정신이 아니다. 상대방의 가슴을 절절히 울리는 간절함이다.
아주 평범한 예를 들자. 열 번 찍어 안 넘어 가는 나무가 없다고들 한다. 이 말을 모르는 이는 없다. 하지만 정말 열 번 반복할 용기를 가진 사람이 얼마나 될까? 흔히는 한번 해 보고는 안 된다고 하고, 두 번 하면 많이 했다 한다. 세 번은 무척 드물기에 ‘삼고초려(三顧草廬)’를 대단한 열정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교육부 과장 시절, 교육 방송 조직을 만들 때 얘기다. 이를 위해 정부 내에서 여러 기관의 협조가 필요한데, 가장 중요한 건 인원 배정이나 운영을 위한 예산 확보였다. 세부 계획을 세워 기획재정부를 찾아갔지만 예산실 예산총괄과장은 합의해 주지 않았다. 광화문 청사에서 과천 기재부까지 무려 열 번을 찾아갔다. 하지만 모두 퇴짜였다. 만나주기는커녕, 설명할 시간도 주지 않았다. 참 답답한 일이었다. 광화문 정부종합청사에서 과천에 있는 기재부를 오가다 보면 오전 시간이 다 가곤 했다. 그러나 나는 너무도 중요한 이 사업을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 열한 번째는 아예 아침 일찍 과천으로 직접 출근했다. 아침 여덟 시에 출근한 예산총괄과장은 삼십 분 전부터 와서 기다리고 있는 나를 보고 깜짝 놀랐다. 하지만 그날도 역시 설명 시간조차 얻지 못한 채 손님용 의자에 하염없이 앉아 있다 돌아왔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도 역시 나는 일찍 가서 기다렸다. 신경이 쓰였는지 예산총괄과장이 ‘어쩌자는 거냐’며 화를 냈다. 나는 처음으로 진지하게 따지고 들었다.
“열 번 이상 왔지만 과장님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했을 뿐, 단 한 번도 제 설명을 제대로 들어주지 않으셨습니다.” 당황한 예산총괄과장의 얼굴이 붉어졌다. “한 시간만 제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간절히 말했다.
그렇게 해서 처음으로 제대로 설명할 기회를 얻었다. 나는 자료를 꺼내 놓고 간결하지만 절실하게 설명했다. 그제야 예산총괄과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승낙 사인을 하며 ‘오늘은 내가 이 과장에게 졌다’라고 했다.
나는 당당하게 말했다. “졌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교육의 미래를 위해서 지금 중요한 결정을 하셨으니 과장님이 이긴 겁니다!”
절실함이란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다. 반드시 이루겠다는 마음이 있다면 열 번이든 스무 번이든 횟수는 문제가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삼실(三實)은 내 생애 전체를 관통하는 생명 줄이다. 왜냐하면 이 세 가지 원칙이 없었다면 오늘의 나도 없고 아무 일도 이루지 못했을 테니까 말이다. ‘위대한 일을 하라, 그러나 만약 위대한 일을 하지 못한다면 작은 일을 위대하게 하라’는 말이 있다. 누구든 삼실을 자신의 삶의 원칙으로 삼는다면,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그 일을 가장 멋진 일로 만들게 되리라.
<한국대학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