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석 스마트스터디벤처스 부대표

김범석 스마트스터디벤처스 부대표.
김범석 스마트스터디벤처스 부대표.

2024년 1월 5일 KBS뉴스에는 <2022년 K-콘텐츠 수출액 132억 달러 ‘역대 최대’>라는 제목의 기사가 보도됐다. 한국의 주요 수출 품목인 자동차(541억 달러)에는 아직 미치지 못하지만 K-콘텐츠는 이차전지(100억 달러), 전기차(98억 3000만 달러), 가전(80억 6000만 달러)를 넘어서는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여준 것이다. 또한 한국수출입은행이 2022년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한국 콘텐츠 수출이 1억 달러 증가할 때 화장품, 식품 등 소비재 수출도 1억 8000만 달러가 함께 증가하는 등 관련 산업에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도 매우 크다고 한다. 그에 따라 정부에서는 K-콘텐츠 산업을 차세대 먹거리로 언급하면서 그 성장을 위해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실제로 K-콘텐츠가 전 세계적으로 갖는 영향력은 꽤 의미 있게 성장한 것이 사실이다. 시간을 조금만 앞당겨 2000년대 초 드라마 한류 붐이 아시아를 뜨겁게 달굴 때, 필자는 일본에 진출한 한국 유명 배우들의 매니지먼트를 전담하는 회사에서 몇 년간 근무한 적이 있다. 그 당시에는 일본 공중파 방송에 한국 드라마를 방송해 주는 시간대가 따로 있을 정도로 한국 드라마의 힘이 꽤 컸고, 드라마 주연으로 출연했던 배용준, 이병헌, 박용하, 류시원 등의 배우들은 일본어로 음반을 내고, 도쿄돔, 무도관 등에서 대규모 공연을 하는 등 꽤 활발하게 활동을 전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도쿄 시내 번화가에 나가보면 한류라 부를 만한 뭔가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았고, 일본의 젊은층에게 한류라는 말을 아냐고 물으면 자신들의 어머니 또는 할머니가 즐겨보는 콘텐츠 정도로만 인식하고 관심 갖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한류라는 말보다는 매니아층에서만 나름 인기가 있는 그런 콘텐츠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흐름이 20년 남짓 계속 되면서 K-무비, 드라마, 팝 등의 인기가 젊은 층을 중심으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크게 퍼지게 되면서 이제는 한류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은 시기가 왔다.

최근 방문한 도쿄에는 한국의 뷰티, 의류 브랜드들이 전문 편집샵 등을 통해 많이 진출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고, 그중에서는 한국 브랜드 입점이라는 내용을 매장 홍보 문구로 사용하는 곳도 볼 수 있었다. 한국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몇 년 정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우호적으로 변했다는 것이 체감됐는데, 이는 비단 일본뿐 아니라 미국, 영국 등 영미권 국가를 방문할 때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K-콘텐츠를 필두로 한 K-컬처의 힘을 엿볼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하지만 2024년 12월 초 대한민국을 휩쓴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면서 걱정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필자가 생각하는 콘텐츠 산업의 가장 큰 약점은 경기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는 것이다. 경기가 어려워질 때 사람들이 가장 먼저 지갑을 닫는 분야는 의식주와 거리가 먼 여가와 관련된 지출이고, 그 핵심에 위치한 것이 콘텐츠 산업이기 때문이다. 여름과 겨울 방학 시즌은 콘텐츠 산업에 있어서 일 년 중 가장 큰 성수기다. 올 12월을 전후해 개봉한 영화는 곽경택 감독의 ‘소방관’, 송강호·박정민 주연의 ‘1승’, ‘변호인’을 연출한 양우석 감독의 ‘대가족’, 송승헌 주연의 ‘히든페이스’, 노윤서 주연의 ‘청설’ 등 흥행 감독이나 배우들이 참여한 기대작 영화들로 가득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들 중 극장 손익분기점을 넘긴 영화는 아직 없다. 우리의 삶과 직결된 문제가 생기면 콘텐츠에 대한 소비를 닫아 버렸기 때문이다.

처음 언급한 것처럼 K-콘텐츠는 역대 최대 수출액 기록을 달성하긴 했지만, 전체 산업에서 차지하는 수출 비중은 10% 남짓에 불과하다(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2022 콘텐츠산업 중장기 시장전망 연구). 내수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보니 정치나 경제적으로 부정적 이슈가 발생하면 바로 산업에 타격이 올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문화 선진국은 정치, 경제적으로 선진화를 이룬 국가들 중에서 탄생할 수밖에 없다. 삶이 안정적이고, 여유가 있어야 여가를 즐길 수 있고, 다양한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한 수요를 바탕으로 다양한 종류의 양질의 콘텐츠가 제작되고, 소비되는 것이 산업의 본질적인 특성이다. 대한민국의 차세대 먹거리라 불리는 K-콘텐츠 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지원이나, 민간에서의 투자 활성화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사회의 안정화가 최우선이 돼야 한다.

이제 시작하는 2025년을 바라보며, 모쪼록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사회가 그리고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정이 안정을 되찾고 그 힘을 바탕으로 진정한 K-콘텐츠 발전의 원년이 되길 희망한다.

<한국대학신문>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