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희 서강대 로욜라국제대학 학장(지식융합미디어학부 교수)

조재희 서강대 로욜라국제대학 학장(지식융합미디어학부 교수).
조재희 서강대 로욜라국제대학 학장(지식융합미디어학부 교수).

‘어수선하다’의 사전적 정의는 “사물이 얽히고 뒤섞여 가지런하지 아니하고 마구 헝클어져 있다” 혹은 “마음이나 분위기가 안정되지 못하여 불안하고 산란하다”이며, 이 형용사는 지금 한국의 상황에 정확히 들어맞는다. 사회 곳곳 어딜 봐도 어수선함이 목격된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며, 이는 공동체가 위기에 당면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대학원 시절 조직커뮤니케이션 과목을 수강할 때, 조직 변화나 조직 위기에 대해 학습할 때면 항상 리더십에 대한 내용이 강조됐다. 조직이 커다란 변화를 겪거나 위기에 처했을 때, 리더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며, 영웅이 난세에 등장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현재 한국이 겪고 있는 어수선함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리더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리더의 필요성에 대해 고민하던 차에 우연히 접한 두 개의 미디어 콘텐츠가 필자에게 울림을 줬다. 웹툰을 진정으로 좋아하는 필자는 여느 때와 같이 여러 웹툰을 보고 있었고, ‘사람의 탈’이라는 네이버웹툰을 보던 중 “앞서서 걷는 것이…우두머리의 역할이다”라는 호랑이 우두머리의 한마디는 리더의 정의에 매우 부합했기 때문에 크게 와닿았다. 영어 단어 ‘lead’는 중세 영여 ‘lædan’에서 왔으며 사전적으로 “선두에서 걷다” 혹은 “함께 가며 길을 안내하다”를 주로 의미한다. 리더는 팔로워들에 앞서 길을 걸으며 나아가야 할 길을 안내하는 역할에 충실할 때야 말로 자신의 본분에 충실하다고 볼 수 있다. 앞이 아닌 뒤에서 팔로워들을 밀 때, 우리는 이를 지도자가 아닌 ‘보스’라고 불러야 한다. 조직이나 공동체가 위기에 처했을 때, 리더는 구성원의 앞에 서서 길을 안내함으로써 어수선함을 없애야 할 의무가 있다. 한국 사회 그리고 그 속의 크고 작은 집단이 현재의 혼란과 위기를 현명하게 극복하기 위해서는 진정한 ‘리더’가 등장할 필요가 있다.

‘사람의 탈’의 작가가 리더의 역할을 콕 찍어서(Poking) 표현했다면, 최근 들어 재시청하고 있는 드라마 ‘도깨비’에서 나온 명대사는 훌륭한 리더를 은유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했다. 도깨비 김신(공유 분)은 도깨비 신부인 지은탁(김고은 분)에 대해 사랑의 감정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김인육 시인의 ‘사랑의 물리학’이라는 시를 읊는다. 김인육 시인은 “질량의 크기는 부피와 비례하지 않는다. 제비꽃 같이 조그마한 그 계집애가…지구보다 더 큰 질량으로 나를 끌어당긴다. 순간, 나는 뉴턴의 사과처럼 사정없이 그녀에게로 굴러 떨어졌다” (<사랑의 물리학>, 김인육, 일부 발췌)라고 표현하면서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끌림에 대해 전하고 있다. 훌륭한 리더에 대한 끌림도 이와 같을 것이다. 수많은 팔로워들에 둘러싸여 홀로 서 있는 작고 외로운 존재지만, 팔로워들은 뉴턴의 사과처럼 자기도 모르게 리더에게 끌려 한 걸음씩 다가간다. 지구보다 더 큰 질량으로 끌어당겨 지구처럼 우리를 딛고 서 있게 해주는 리더를 만났을 때, 우리는 사랑의 강렬하고도 불가항력적인 끌림을 경험할 것이다.

앞에 서서 걷는 리더의 끌림은 정말 수많은 요인들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리더십과 관련된 도서, 강의, 연구를 살펴보면 그와 같은 끌림을 결정하는 다양한 요인에 대해 언급한다. 커뮤니케이션 학자로서 필자는 당연하게도 리더의 중요한 덕목인 ‘소통’의 중요성에 무게를 좀 더 싣게 되며, 특히 ‘경청(傾聽)’을 강조하고 싶다. 주의를 기울여 들어준다는 것은 ‘나’가 아닌 ‘남’에 가치를 더 두는 것이며, ‘남’을 존중하기 위해서는 ‘나’를 낮춰야 한다. 결국 경청은 ‘나’를 낮춤으로써 ‘남’이 스스로 더 중(重)함을 느끼게 함을 내포한다. 스스로를 낮춰 나를 중하다고 생각하며 귀를 기울여 주는 이에게 이끌리는 것은 당위적이다.

국가나 조직의 새로운 수장은 당연하다는 듯이 소통을 강조한다. 새롭게 시작하니 구성원들과 외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겠다는 것이다. 매우 바람직한 시작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만 흐르면 리더는 보스가 되어 앞이 아닌 뒤에 서서, 이끌지 않고 밀어낸다. 자신을 낮추기보다는 높이며, 감추기보다는 드러내고, 겸손함보다는 거만함을 보인다. 어수선한 이때, 지구의 질량으로 이끌어 단단히 받쳐줌으로써 우리를 설 수 있게 해주는 리더의 등장을 고대해 본다.

<한국대학신문>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