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권 대학 중심으로 논의 시작돼…대학들 ‘고심
고려대‧한양대 부활, 연세대‧이대‧외대 등 검토
“단기적으로는 유리하지만 장기적으로는 피해 커져”

비대면 수업으로 대학에서 절대평가를 시행하면서 B학점 이상 취득하는 비율이 전년도보다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한국대학신문 DB)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수업이 늘어나면서 학점 인플레이션이 확대되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학점 포기제 확대는 학점 인플레이션이 더 빨리 확대되는 도화선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한국대학신문 DB)

[한국대학신문 백두산 기자] 2010년대 초 학점 인플레이션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자취를 감췄던 ‘학점 포기제’가 서울권 대학을 중심으로 부활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고려대와 한양대가 최근 이 제도를 재도입한 데 이어 연세대와 이화여대, 한국외대 등도 검토에 나섰다.

4일 대학가에 따르면 서울권 대학을 중심으로 ‘학점 포기제’ 부활에 대한 논의가 집중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학점 포기제는 교과목에 대한 학점을 취득한 후 해당 성적을 학생이 스스로 포기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학점 포기제는 평균을 낮추게 만드는 교과목 성적을 포기하는 대신 계절학기 등을 통해 더 높은 학점으로 대체할 수 있어 학생들은 선호하는 제도다. 그러나 너도나도 높은 학점을 만들 수 있도록 해 학점 인플레이션을 조장한다는 비판으로 10여 년 전 사라진 바 있다.

서울 주요대학 중에서는 고려대가 신호탄을 쐈다. 고려대는 지난해 3월부터 모든 과목을 6학점까지 포기할 수 있는 학점 포기제를 확대‧개편했다. 이전까지는 폐강된 과목에 한해서만 학점을 포기할 수 있었다. 2014년 학점 포기제를 폐지했던 한양대는 올해부터 부활시켰다.

연세대는 타 대학들의 이같은 움직임을 근거로 학교에 학점 포기제를 요구하고 있다. 연세대 총학생회는 장기 미개설 등으로 인해 재수강이 어려운 과목에 한해서라도 학점 포기제를 부활시킬 것을 주장하며 학교를 압박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윤동섭 총장과 직접 면담에 나서 학점 포기제 재검토라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연세대는 오는 4월 중 학사제도운영위원회를 열고 학점 포기제 안건을 상정할 예정이다.

이화여대 총학생회는 학교 측과 학점 포기제 도입에 대해 협상 중이며, 한국외대는 학점 포기제를 공약으로 내건 총학생회가 당선돼 조만간 이와 관련해 협상에 나설 것으로 예측된다.

학생들 입장에서는 학점 포기제가 도입되면 취업 경쟁력, 전문대학원 진학 등에서 유리해지기 때문에 이 같은 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대학 입장에서는 고민이 큰 상황이다. 단기적으로는 취업, 진학 등에 유리해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학점의 공신력을 저해하는 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0년대 초반까지 널리 운영되던 학점 포기제는 2013년 국정감사에서 ‘학점 세탁’의 원흉으로 지목되면서 교육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대학에 개선을 요구하면서 자취를 감췄다.

수도권 대학의 한 관계자는 “우리 대학도 학점 포기제에 대한 요구가 강해지고 있다”며 “도입한 초기에 졸업한 학생들은 긍정적 효과를 얻을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사회에서 우리 대학 학점에 대한 신뢰를 잃을 수 있기 때문에 여러 경우의 수를 두고 고민 중”이라고 토로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미 서울 주요 대학을 중심으로 학점 인플레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이전에 학점 포기제가 왜 사라졌는지 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학점 포기제까지 도입되면 학생을 선발하는 기준에서 학점 비중이 현저히 낮아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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