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용 전국대학교 기획관리자협의회 부회장(아주대 기획팀장)

윤정용 전국대학교 기획관리자협의회 부회장(아주대 기획팀장)
윤정용 전국대학교 기획관리자협의회 부회장(아주대 기획팀장)

대학 관계자라면 매년 발표되는 대학평가 순위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협의회에서 만난 어느 대학의 담당자는 순위가 오르면 한 해 농사를 잘 지은 듯 뿌듯하지만, 내려가면 씁쓸하다고 했다. 대학들은 평가 결과에 따라 긴장하거나 때로는 중요한 정책 방향을 조정하기도 한다. 이러한 현실을 고려하면, 대학평가가 단순한 서열화 도구가 아니라 대학의 혁신과 발전을 유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을 다시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실 평가는 역사 속에 늘 존재해 왔다. 네안데르탈인이 성능 좋은 창을 만들기 위해 나무를 고를 때도, 페르시아 족장이 딸의 신랑감을 찾을 때도 평가가 있었다고 한다. 평가의 방식은 다양하지만, 본질적 목적은 같다. 이해관계자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여 판단을 돕는 것이다. 대학평가도 이러한 본질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 학생들에게 유의미한 정보를 제공하여 대학을 선택하는 데 도움을 주고, 대학이 스스로의 강점과 약점을 객관적으로 점검하여 개선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대학평가에는 다양한 지표가 활용된다. 중앙일보에서 실시하는 대학평가는 교수연구, 교육여건, 학생성과, 평판도 네 개 영역에서 38개 지표를 활용한다. 이 중 평판도는 설문조사를 통해 측정되며, 나머지 영역의 지표는 공시된 정량 자료와 학술 데이터베이스가 활용된다. 한편, 대표적인 글로벌 평가기관인 QS는 14개 지표를, THE는 17개 지표를 활용해 세계대학평가를 진행한다.

그런데 각 기관의 평가 결과를 비교해 보면 흥미로운 차이점이 있다. 평판도 상위권 대학의 분포가 사뭇 다르다. 과학기술 특성화 대학을 제외한 종합대학 기준으로 2024년 발표된 평판도 상위 20개 대학을 보면, QS 세계대학평가에서는 서울 소재 대학이 13개, 지역 대학이 7개다. 그러나, 중앙일보 대학평가에서는 지역 대학이 단 2개에 불과하다. 연구나 교육, 학생성과에서 경쟁력을 보인 지역 대학들도 유독 국내 평판도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한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 사회의 ‘인서울’ 대학 선호와도 무관하지 않다. QS나 THE의 세계대학평가에서는 학계 전문가의 의견을 반영한 연구 평판도의 비중이 높다. 반면, 국내 대학평가의 평판도 조사는 고교생, 학부모, 교사, 기업 관계자를 대상으로 한다. 주변 학부모들에게 좋은 대학을 묻는다면, 대부분 익숙한 서울 소재 대학들을 떠올릴 것이다.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질문 방식을 고도화하더라도 응답자들이 기존의 서열화된 인식을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물론, 교육 수요자의 선호 자체가 경쟁력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특정 지역을 기준으로 대학을 선호하는 현상이나 응답자의 인식 속에 이미 굳어진 서열이 성과나 역량 측정에 반영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주어진 값이나 기본 특성에 영향을 받는 지표를 통해서는 대학의 실질적 노력과 성과를 살펴보기 어렵고, 따라서 대학의 경쟁력 향상 유도라는 대학평가가 표방하는 목적도 훼손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학평가를 바라보는 대학들의 태도도 변화가 필요하다. 순위에 일희일비하기보다 각 대학이 설정한 고유한 목표와 방향에 맞춰 성과를 관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모든 대학이 동일한 기준에서 경쟁할 필요는 없다. 연구 중심 대학이 있는가 하면, 지역사회와의 연계를 강화하는 대학도 있으며, 실무 중심 교육을 특화한 대학도 존재한다. 대학들은 자체적인 발전 전략을 수립하고, 평가 결과는 이를 보완하는 자료로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평가 순위에 따라 매번 정책을 조정하기보다, 장기적인 목표에 맞춰 지속적인 개선을 도모하는 것이 멀리 보면 대학의 경쟁력을 높이는 길이다.

대학평가는 대학이 현재의 위치를 점검하고 취약점을 보완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해야 한다. 동시에, 교육 수요자가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의미 있는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대학들이 순위에 집착하기보다 평가를 발전의 도구로 삼는다면, 대학평가는 대학의 지속적인 개선과 변화를 이끄는 힘이 될 것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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