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성언 버추얼브라더스 주식회사 대표이사(한국영상대 촬영조명과 겸임교수)
3월, 새 학기다. 아직 바람은 차갑지만, 캠퍼스에는 봄기운이 서서히 스며들고 있다. 곧 벚꽃이 피어나겠지. 나는 강의실 문 앞에 서서 학생들이 하나둘 들어오는 모습을 바라본다. 커다란 애플 헤드폰을 쓰고 음악에 몸을 맡긴 학생, 갓 산 갤럭시 폰으로 친구와 웃으며 셀카를 찍는 학생, 잔스포츠 가방을 툭 걸치고 들어오는 학생, 손에 블루보틀 커피를 든 학생도 보인다. 다양한 브랜드와 리듬이 어우러져, 새 학기의 공기를 채우고 있다.
그 순간 문득 생각이 스쳤다. ‘이 학생들의 대학생활에도 브랜드가 있을까?’ 요즘 우리는 물건을 사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산다. 애플 매장에서 처음 아이폰을 집어 들었을 때, 그 차가운 금속의 감촉과 흰 테이블 위의 단정한 디스플레이는 ‘당신도 창의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속삭인다. 무인양품 매장에 들어가면, 무채색의 수첩과 각진 펜들이 나를 둘러싸고 묻는다. ‘단순하게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
나의 일상 속에도 이러한 브랜드들이 스며들어 있다. 킨토 텀블러에 따뜻한 차를 담아 책상에 올려두고 편집 작업을 시작하는 아침. ‘오늘의집’ 앱을 열어 스탠드 조명을 고르며 머릿속으로 그려본다. 이 공간에서 나는 어떤 장면들을 만들어낼까? 작업을 마친 후, 친구와 커피를 마시며 갓 구운 스콘을 나눠 먹으며 웃는 시간. 공간을 꾸미고, 장면을 만들고, 편집하는 일. 이 모든 것이 결국 나를 디자인하는 과정이다.
그렇다면, 대학생들은 어떨까? 나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작년 봄, 새내기들과 첫 수업을 맞았던 날이 떠오른다. 나는 늘 첫날 이렇게 묻는다. “왜 이 학교에 왔나요?” 그날 한 학생이 손을 들었다. 약간 쑥스러운 듯 웃으며 말했다. “낭만을 찾으러 왔습니다.” 순간 교실이 웅성거렸다. 여기저기서 피식 웃음이 터졌고, 나도 따라 웃었다. 하지만 나는 말했다. “좋습니다. 낭만을 찾는 일이 쉽진 않겠지만, 우리 함께 찾아봅시다.” 그날 이후, 우리는 그 학생을 ‘낭만 정규’라고 불렀다. 그렇게 한 학기가 시작됐다.
솔직히 말하면 처음엔 걱정도 있었다. ‘코로나 세대’라는 말 때문이었다. 학교에 오지 못하고, 모니터 속에서 온라인 수업만 듣던 학생들. ‘사회성이 부족하다’ ‘관계 맺기가 어렵다’ 뉴스에서 들은 그 말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하지만 첫 수업을 마친 날, 그 걱정이 기우였음을 알았다. 그들은 활기찼다. 수업이 끝나도 교실에 남아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식사를 하고, 복도에서 마주치면 먼저 인사했다. 닫혀 있던 시간이 끝나고, 이제야 비로소 서로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는 설렘이 그들의 눈빛에서 느껴졌다.
이들은 온라인에서도 자연스러웠다. 과제 공지보다 먼저 카톡방이 열리고, 의견이 오가고, 팀 과제는 디스코드에서 이어졌다. 현실과 온라인, 두 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각자의 방식으로 대학 생활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보며 깨달았다. 코로나 세대가 아니라, 미래 세대구나. 이 학생들은 이미 현실과 가상이 섞인 시대를 먼저 살고 있었다. 디지털 공간에서 관계를 맺고, 현실에서 또 다른 경험을 쌓아간다. 그 자유로운 움직임이 오히려 부러울 정도였다.
그리고 요즘 나 역시 그 미래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하고 있다. 내가 하는 일도 미래를 향해 있다. AI 기술, 버추얼 콘텐츠, 가상 공간. 이런 말들이 조금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생각해보면 우리 모두 이미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현실과 디지털이 맞닿아 있는 미래형 라이프 스타일. 그 흐름 속에서 나는 앞으로의 대학생활, 그리고 삶이 어떻게 바뀌어 갈지 상상한다.
하지만 미래가 아무리 달라진다 해도 결국 중요한 것은 같다. 결국, 자기다움을 찾는 일이다. 대학이라는 시간 속에서 자기만의 생활을 디자인하는 일. 그것이, 대학 생활의 브랜드다. 요즘 나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촬영감독이 되고 싶다는 학생도 있고, 뮤직비디오를 만들고 싶다는 학생도 있다. 누군가는 유튜브에 자신의 작업을 올려보고 싶다고 말한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모두 각자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것이 좋다. 저마다의 길, 저마다의 브랜드가 보이기 시작한다.
“이 봄, 당신은 어떤 대학 생활을 디자인하고 있나요?”
<한국대학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