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2029년 고등교육 재정지원 기본계획’
한국 대학은 지난 16년간 사실상 등록금이 동결된 채 운영돼 왔다. 2009년 반값 등록금 논의 이후, 등록금 인하 또는 동결은 정부 재정지원을 위한 조건이 됐고, 대학은 이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대학 재정은 급격히 악화됐고, 이는 교육과 연구의 질 저하로 이어졌다. 특히 등록금 외 수익구조가 취약한 지방대학일수록 그 충격은 치명적이었다. 교수 충원과 연구비 지원이 줄며, 기본적인 교육 여건조차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그렇다고 정부의 고등교육 지원이 충분한 것도 아니다. OECD 교육지표 2024에 따르면, 한국의 고등교육 단계 공교육비 중 정부 재원 비율은 GDP 대비 0.7%로, OECD 평균(1.0%)에 미치지 못한다. 학생 1인당 공적 지원액도 OECD 평균의 약 67% 수준에 그친다. 고등교육에 대한 국가 책임이 미약한 현실은 교육비 부담이 민간에 과도하게 전가된 구조를 고착화시켰다. 지방자치단체 보조금이 늘었음에도 등록금·수강료 수입이 여전히 대학 전체 수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런 배경에서 교육부가 발표한 ‘2025~2029년 고등교육 재정지원 기본계획’은 주목할 만하다. 정부는 향후 5년간 총 17조8천억 원을 투입해 대학의 혁신을 유도하고, 지역 중심의 고등교육 거버넌스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RISE(지역혁신 중심 대학지원체계)를 통해 지자체와 대학 간의 협력을 제도화하고, 단기 공모 중심의 재정지원 방식에서 탈피하겠다는 구상은 의미 있다.
그러나 단순한 재정 확대로 상황이 근본적으로 달라지지는 않는다. 문제의 본질은 대학의 구조와 체질에 있다. 학령인구 감소는 대학 입학자원을 줄이고 있고, 지방소멸은 지역대학의 존립 기반을 위협하고 있다. 그럼에도 다수 대학은 여전히 학사 구조 개편, 정원 감축, 교육과정 혁신 등에 소극적이다. 대학 간 서열 구조와 입시 경쟁에 갇혀 실질적 구조 개혁이 지연되고 있으며, 일부는 재정지원 확보를 위한 형식적인 '혁신'만을 반복하고 있다.
RISE 모델 역시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간극이 존재한다. 지자체와 대학의 협력은 바람직하지만, 지방정부의 정책 역량과 대학의 자율성 간 충돌 가능성은 상존한다. 지역 내 정치적 이해관계나 파벌 문제가 협치의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특히 산업 기반이 취약한 지역에서는 지역 수요에 부합하는 교육과 연구의 재편이 쉽지 않다. RISE가 성공하려면 대학이 단순한 행정 수요기관이 아닌, 지역의 지식 플랫폼이자 정책 파트너로 기능할 수 있도록 자율성과 권한이 충분히 보장돼야 한다.
성과 중심의 재정배분 방식 또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성과 환류는 필요하지만, 단기 정량 지표 위주의 평가는 대학의 본질을 왜곡하고 중장기 발전 가능성을 저해할 수 있다. 성과주의가 구조조정의 도구로 전락할 경우, 그 피해는 취약대학과 지역사회에 집중될 것이다. 잘하는 대학을 더 지원하는 방식보다, 잠재력을 가진 대학이 지속 가능하도록 돕는 생태계 조성이 필요하다. 단순히 지원 대상을 선별하는 것이 아니라, ‘살릴 수 있는 대학’을 구조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일관된 정책 의지와 지속 가능성이다. 정권 교체 때마다 흔들리는 정책은 대학의 장기적 개혁을 방해해 왔다. 고등교육은 단기 성과로 평가할 수 없는 장기 공공 투자이며, 이에 상응하는 재정적 책임과 정책 일관성이 필수다. 이번 기본계획이 선언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제도로 정착하려면, 정치적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국가적 합의와 철학이 뒷받침돼야 한다.
<한국대학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