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상훈 성균관대 교무처장(교육학과 교수)

배상훈 성균관대 교무처장(교육학과 교수)
배상훈 성균관대 교무처장(교육학과 교수)

잔치는 끝났다. 서남수 전(前) 교육부장관이 어느 강연에서 했던 말이다. 고등교육 수요가 공급보다 많았기 때문에 대학이 혁신 없이도 버틸 수 있었던 호시절은 갔다는 의미다. 사실 하고 싶었던 말은 과거 타성에 젖어 변화를 꾀하지 않으면 발전은커녕 살아남기 어렵다는 것이었으리라. 

대학만 변화가 필요한 건 아니다. 정부도 고등교육 혁신을 향한 시동을 걸 때다. 학령인구 감소, 지역 격차 심화, 생성형 인공지능과 에듀테크 발전, 평생학습 확대 등 고등교육 환경이 질적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이점(singularity)’에서는 기존 방식이 통하지 않는다. 담대한 혁신과 이를 위한 새 규칙이 필요하다. 

우선 고등교육에 대한 관점 재정립이다. 우리 고등교육은 미국식 시장주의 색채가 강했다. 대학 진학은 개인의 투자이고 ‘투자 수익(return on investment)’ 즉, 대학 졸업장이 주는 혜택도 개인에게 돌아가므로 정부가 세금을 쓸 공적 영역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는 정부의 대학 지원이 책무보다 일종의 시혜로 여겨진다. 게다가 과거 고등교육 팽창을 민간 영역이 주로 흡수했던 탓에 사립대학이 많은데, 사립 기관에 대한 공적 투자가 적절한지 의문을 표하는 사람도 많다. 그렇다고 해서 대학이 온전히 자율을 보장받는 것도 아니다. 학사 제도, 교육과정 운영, 등록금 책정 등에서 자율보다 규제가 많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후, 세계 질서는 협력에서 경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어느 나라든 독자적 경쟁력이 있어야 살아남는다. 역사적으로 우리는 교육의 힘으로 발전했다. 앞으로도 그걸 것이다. 다만, 인재 정책의 초점이 초중등교육에서 고등교육과 평생학습 단계로 확대돼야 한다. 대학을 통한 과학기술과 인재 경쟁력이 국가 경쟁력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고등교육을 개인의 선택과 책임으로만 여기는 시장주의는 적절하지 않다. 고등교육을 국가 차원의 전략적 투자와 지원이 필요한 공적 영역으로 여기는 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둘째, 교육재정 재구조화가 요청된다. 유초중등교육 예산은 어느덧 70조 원에 이르렀다. 반면 고등교육 투자는 최소한에 그치고 있다. 이처럼 심각한 저투자로는 첨단 과학기술 인재, 산업 일꾼, 사회를 끌어갈 창의 인재를 길러내기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시도교육청 예산을 고등교육으로 넘기는 이분법적 접근은 적절하지 않다. 대학과 학교가 상생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예컨대, 고교교육 정상화를 위해 학생부종합전형을 충실히 이행하려면 숙련된 입학사정관의 안정적인 확보가 필요한데, 지방교육재정의 일부를 활용해서 ‘고교교육 기여대학 사업’에 투자하면 고교와 대학이 윈-윈하는 모델이 된다. 앞으로 고교학점제, 전공자율선택제도가 본격화된다. 대학과 고교의 협력이 필요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교육재정 체제를 모색할 때다.

셋째, 구조개혁에 나서야 한다. 모든 대학을 살리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그렇다고 지역대학의 생존을 수도권 집중이 작동하는 시장(市場)에만 맡길 수 없는 노릇이다. ‘잘 가르치는 대학’은 최대한 살리고, 그렇지 못한 대학은 퇴로를 열어주는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 범정부 차원의 고등교육 체제 정비도 늦출 수 없는 과제다. 지금처럼 교육부-전문대학과 고용노동부-폴리텍대학이 ‘따로’ 노는 시스템은 비효율적이다. 부처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청년의 직업능력개발, 재직자 향상 교육(up-skilling), 은퇴자 재교육(re-skilling)을 위한 통합형 고등직업교육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넷째, 디지털 대전환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첨단 에듀테크는 ‘언제 어디서나’ 학습 시대를 열고 있다. 태평양을 건너온 MOOCs는 배움의 무대를 무한대로 넓혔다. 챗GPT, 딥시크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도 사회 각 분야에서 새로운 길을 보여준다. 이런 테크놀로지를 얼마나 슬기롭게 활용하느냐에 교육 혁신과 과학기술 경쟁력이 달렸다. 

마지막으로 고등교육법령을 전면 개정하자. 성인·재직자 등 학생 다양화, 온라인 수업 확대 등 고등교육 생태계가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학습성과의 디지털 인증, 학문 세계에서 인공지능 활용에 대한 윤리와 규범, 고등교육에 대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책임, 기업 같은 수요자의 역할과 협력 의무 등 새로운 룰도 정립해야 한다. 모두 법령에 담을 내용이다. 

누구나 원하면 대학에 가는 ‘완전 취학’ 시대를 맞았다. 아날로그 시대는 가고, 디지털 시대가 왔다. 고등교육 체제를 어떻게 재설계하느냐에 나라와 청년 세대의 미래가 달렸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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