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시도는 대한민국 헌정사에 씻을 수 없는 치욕으로 기록될 것이다. 대통령이란 이름으로 내란을 기도한 상황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근본적으로 위협한 중대한 사안이었다. 국회는 위기에 직면해 헌법이 부여한 권한을 행사했고, 탄핵소추안은 헌법재판소의 만장일치 인용으로 귀결됐다. 이는 단지 한 정치인의 몰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헌정질서와 민주주의가 마지막 보루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모두가 직시해야 한다.

이번 사태는 우리가 얼마나 위태로운 상식 위에 서 있었는지를 날것 그대로 드러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경험하며 이룩한 대한민국의 오늘은 견고해 보였지만 지난 넉 달의 시간은 이 신화가 얼마나 허술한 기반 위에 쌓여 있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오랜 시간 당연하다고 여겨졌던 가치와 질서가 한순간에 뒤집혔다. 옳고 그름의 기준이 사라지고, 권력자들의 자의적 해석이 ‘법’의 이름으로 포장됐다. 무엇이 정의이고 무엇이 범죄인지조차 혼란스러웠던 시간이었다.

무엇보다도 심각한 것은 이와 같은 퇴행적 시도에 대해 일부 정치인과 언론인, 법조계 인사들 그리고 자칭 보수 논객들이 나서 이를 두둔하거나 국민을 호도했다는 점이다. 유튜브와 SNS를 통해 가짜뉴스를 유포하고, 거리로 나와 “탄핵 반대”를 외친 이들 중 다수는 사실을 왜곡하거나 허위 정보를 반복 전파하며 사회를 갈라놓았다. 

윤 대통령의 시도는 단독범이 아니라 조직된 정치·법조·언론 네트워크의 방조와 묵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일명 ‘법꾸라지’로 불리는 일부 법조인들은 정당한 법의 절차를 교묘히 왜곡하며, 헌정 파괴의 조력자로 전락했다. 이들에 대한 철저한 진상 규명과 책임 추궁 없이는 다시 언제든 헌정 파괴의 유혹은 되살아날 것이다.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그런 의미에서 단순한 판결이 아니다. 이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상징이며, 사법부가 마지막으로 지켜낸 헌정의 방어선이었다. 만장일치 결정은 사법권이 더 이상 정치권력의 시녀가 아니라는 선언이며, 또한 미래의 어떤 대통령도 헌정을 유린하려 할 경우 결코 무사하지 못하리라는 경고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마음에 남은 상처와 절망은 쉽게 회복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종종 ‘냄비근성’이라는 자조적 표현 속에 위기를 망각해왔다. 문제의 본질에 도달하기도 전에 여론은 피로에 휩싸이고 분노는 빠르게 식어갔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달라야 한다. 대통령의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는 단지 한 사람의 정치적 실패가 아닌 국가 전체의 시스템 위기를 고스란히 드러낸 사건이다. 이것이 일회성으로 끝난다면, 그다음 위기는 더 클 것이며, 그때는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이어질 수 있다. 

탄핵을 기점으로 우리에게는 명확한 과제가 주어졌다. 첫째, 대통령의 권한 남용을 제도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헌법 개정 논의가 본격화돼야 하고, 가짜뉴스와 선동으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미디어 환경을 바로잡는 사회적 합의가 절실하다. 그리고 시민교육 강화가 절실하다. 민주주의는 제도 이전에 시민의식 위에 서는 것이다. 이번 일을 겪으며, 헌법 정신과 민주주의 원리에 대한 교육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다.

외신은 이번 탄핵을 두고 “아시아 민주주의의 시험대”라 평했다. 우리는 시험을 통과했지만 그 점수는 가까스로 ‘통과’ 수준이었다. 한국의 위상은 K-문화의 성공으로 일시적으로 올랐지만 정치적 불안정과 비상식의 확산은 이 국격을 한순간에 무너뜨릴 수 있음을 우리는 이번에 뼈저리게 경험했다. 자부심은 국가가 아니라 시민이 만드는 것이며, 국가의 품격은 대통령이 아니라 시민의 행동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지금 탄핵의 강을 건너고 있다. 그 강은 분열과 분노, 혐오와 절망으로 출렁이는 혼탁한 물길이었다. 그러나 그 강을 건넌 뒤 우리가 도달할 곳이 다시 민주공화국이어야 한다면, 지금 이 순간을 결코 흘려보내서는 안 된다. 탄핵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우리 사회가 이번 사태를 끝까지 응시하고, 뿌리부터 바꾸려는 노력을 지속할 때 비로소 우리는 그 강을 온전히 건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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