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호상 국립금오공과대학교 총장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 중국 춘추전국시대 고전 『관자』에서 유래된 격언이다. 세월이 무수히 흘렸음데도 국가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단기 성과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사람을 기르고 미래를 준비하는 교육부터 바로 세워야 한다는 메시지가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대한민국이 반세기 만에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한 데에는 교육의 힘이 있었다. 1960년대 초등 의무교육 확대, 1970년대 직업 및 기술교육 강화, 1980년대 이후 고등교육과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 그리고 세계 최고 수준의 국민 교육열은 우리나라 산업화, 정보화, 민주화의 근간이 된 인적 자본을 성장시켰다. 특히 사회변화 속도가 빠른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혁신적 연구, 첨단기술 개발, 창의 융합형 인재 양성을 담당하는 고등교육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 고등교육의 위상은 어떠한가? 2022년 기준 우리나라 고등교육 1인당 공교육비는 1만 3574달러로 OECD 평균의 66.7% 수준에 불과하다. 반면 초등교육과 중등교육은 OECD 평균을 각각 125%, 145% 초과할 정도로 적극적인 재정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 OECD 국가 중 고등교육 1인당 공교육비가 초중등교육보다 낮은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GDP 대비 고등교육 재정투자 비중도 0.7%로 OECD 평균 1.0%에 미치지 못한다.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열과 고등교육 진학률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에서 고등교육에 대한 국가 재정투자가 미흡하다는 것이 역설적이며 오늘날 대학이 직면한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제는 고등교육과 평생교육까지 국가적 관심과 지원을 확대해 전 생애에 걸친 균형 잡힌 교육체계를 구축하는 것이야말로 21세기를 관통할 백년대계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총론에서 고등교육 발전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겠지만, 각론에 들어가면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도처에 난제가 산재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해결방안 찾아 구현하는 것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중차대한 과제다. 고등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몇 가지 의견을 말하려 한다.
개인적으로 고등교육 백년대계를 세우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은 고등교육에 대한 국민 정서라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 대학에 대한 국민의 관심은 주로 입시에 국한되며, 고등교육은 개인의 성공을 위한 수단으로 인식되곤 한다. 대학교육의 질과 효용성에 대한 불신도 여전히 존재한다. 이는 대학이 짧은 시간 안에 양적으로 급성장하는 과정에서 생긴 문제로, 대학사회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시대가 바뀌고 학생도 바뀌며, 교육 여건과 사회적 요구가 변화하는 전환기에 대학은 기본 가치를 지키되 교육 내용과 방법, 시스템 전반에 대한 질적 혁신을 모색해야 한다. 실제로 많은 대학은 고등교육의 위기 상황 속에서 자구 노력을 펼치고 있으며, 정부 정책도 이를 지원하고 있다.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의 전환을 통해 국민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상아탑이라 불리던 대학과 국민 사이의 심리적 거리감이 여전히 존재하는 가운데, 고등교육 이슈에 대해 대학이 충분히 소통하고 변화 노력을 알렸는지에 대해서는 반성이 필요하다. 필자 역시 대학에 우호적인 이들조차 대학의 현실이나 고등교육 재정 상황을 잘 모르는 경우를 자주 접한다. 이제는 대학사회가 지적 우월의식을 내려놓고, 국민 눈높이에 맞춰 고등교육 이슈를 발굴하고 진정성 있게 소통하며 공론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고등교육 체계 고도화를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 중 하나가 국공립대와 사립대 간의 역할 정립이다. 설립 목적과 운영방식에 있어 본질적인 차이가 있는 두 대학 유형이 지금까지는 뚜렷한 임무 구분 없이 운영되어 왔다. 이는 해방 후 철학과 경험, 재정이 부족한 상황에서 각기 다른 경로로 설립되고 성장한 역사적 배경 때문이다. 이제는 국공립대는 국가와 지역사회와 공공성 기여를, 사립대는 창학이념에 따른 특성화와 자율 혁신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역할을 정립하고 운영 체계도 재정비해야 한다. 이를 뒷받침할 국립대법과 사립대법 제정도 고등교육 백년대계에 포함되어야 할 핵심 과제다.
학령인구 급감 역시 대학의 지속가능성과 관련한 중대한 도전이다. 통계에 따르면 2032년부터 대학 입학자원이 본격적으로 감소해 2040년에는 현재의 절반 수준이 될 전망이다. 그러나 이처럼 예고된 위기는 역발상을 통해 기회로 바꿀 수 있다. 현 수준의 대학 재정을 유지하면서 모든 대학이 정원을 절반으로 줄인다면? 1인당 교육비는 두 배로 증가하며 OECD 평균을 상회할 수 있게 된다. 학생 수도 절반으로 줄어 교육의 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여건도 마련된다. 이에 필요한 추가적인 예산규모는 감소된 입학인원에 해당하는 등록금 수입인데 국가장학금 지출 감소분으로 일부 보전 가능하고 정원 감축을 2035년까지 점진적으로 적용하면 재정적 부담도 완화할 수 있다. 필요하다면 국공립대와 수도권 연구중심대학부터 선제적으로 적용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고등교육 경쟁력 강화를 위한 방안은 단순한 재정 투자 확대에 그치지 않는다. 대학의 자율성과 책임성을 기반으로 예산 운영의 효율과 혁신을 도모하는 것이 중요하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국립금오공대의 경우, 전체 예산 중 56%가 국가지원금으로 구성되는데 항목별 용도가 지정되어 자율성이 낮다. 예산의 24%를 차지하는 등록금 수입 등 일반재원은 운영 자율성이 있지만 인건비 등 경직성 경비 비중이 90%에 달하기 때문에 유연성이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학이 지역산업과 학생을 위한 혁신계획을 수립하더라도 인력과 재원을 확보하기 어렵다. 대학들이 각종 국책사업 선정에 몰두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따라서 국가지원금을 총액으로 교부하고 예산 편성 및 운영 권한, 인사권까지 대학에 이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학별 특성과 임무에 맞는 자율적 혁신을 유도하고, 교육·연구·사회 기여에 대한 종합 평가를 기반으로 성과에 따라 차등 지원하는 체계를 마련한다면, 고등교육 전반의 생태계도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대선 국면이 본격화되면서 각종 공약이 발표되고 있다. 지난 여러번의 대선에서 교육분야 공약은 대부분 유초중등교육이나 입시제도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이번에는 과학기술 연구개발 확대와 이공계 인재양성 등 고등교육 관련 의제도 다뤄지고 있어, 공학특성화 국립대학 총장으로서 반갑고 고무적이다. 오늘 이야기한 다른 고등교육 이슈들도 주요 정책 아젠다로 함께 다루어지기를 기대해본다.
<한국대학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