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올해부터 ‘런케이션’ 본격 추진… ‘글로벌 K-교육·연구 런케이션’ 도시 도약
학생·연구자, 성인학습자 대상 다양한 프로그램 마련
시범운영 성과, 만족도도 우수… 국내·외 대학 협력 및 지원 확대

경희대 학생이 ‘런케이션’의 일환으로 대정읍에서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임지연 기자)
경희대 학생이 ‘런케이션’의 일환으로 대정읍에서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임지연 기자)

[한국대학신문 임지연 기자] 최근 원하는 곳에서 휴식을 취하며 근무도 하는 새로운 근무형태인 ‘워케이션’(Workation·Worcation, 일(Work)+휴가(Vacation)의 합성어)이 유행하며 일(Work)과 삶(Live), 쉼(Play)을 일상에서 누릴 수 있는 다양한 국가, 도시, 지역이 호응을 얻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자연 속에서 재충전과 업무 집중을 동시에 가능하게 하는 곳으로 제주특별자치도(이하 제주도)가 대표적으로 꼽힌다. 2021년부터 ‘워케이션’ 시범사업을 추진해 온 제주도는 대한상공회의소가 전국 직장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워케이션 선호도 설문조사에서 선호지역 1위로 선정된 것은 물론, ‘2024 국가 서비스 대상’에서 워케이션 부문 수상기관으로 제주특별자치도가 선정되는 성과를 도출한 바 있다.

이러한 성과에 힘입어 제주도는 ‘워케이션’에 ‘교육’을 더해 학생·연구자들이 배움과 휴식을 동시에 누릴 수 있는 ‘런케이션’ 사업을 올해부터 본격 추진한다. ‘런케이션’은 배움의 ‘러닝’(Learning)과 휴가·여행의 ‘베케이션’(Vacation)을 합친 말로, ‘교육 관광’ 또는 ‘교육 여행’을 의미한다.

‘런케이션’은 제주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 이하 라이즈)의 역점 사업 중 하나로 추진되고 있다. 제주 라이즈는 지역대학·혁신기관-지역산업계 등과 협력해 지역과 대학의 경쟁력을 제공하고 동반성장할 수 있는 계획을 마련, 제주 미래신산업 및 근간산업 인재를 양성하고 세계를 선도하는 ‘글로벌 K-교육·연구 런케이션’ 도시로 도약하는 것이 목표다.

이를 위해 제주도는 △핵심인재 육성 위한 교육혁신 △지속가능 지산학연 성장기반 구축 △제주기반 혁신 창업생태계 활성화 △도민대학 연계 평생교육 체계 구축 △지역현안 해결형 대학-지역 상생모델 구축 등을 추진 전략으로 삼고 인재육성, 교육·연구, 창업, 평생교육, 지역사회 등으로 구분된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 중이다.

오영훈 제주도지사는 “배움과 휴식을 동시에 누리고 싶은 학생과 연구자들에게 제주는 최적의 장소”라며 “제주는 도내 대학, 연구기관들과 협력해 ‘글로벌 K-교육·연구 런케이션’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앞으로 교육은 교실이라는 공간적 제약을 벗어나 누구나 어디에서나 글로벌 인재로 성장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놀멍쉬멍’에 학점까지… “안 할 이유가 없어요” = ‘런케이션’은 교육·연구 프로젝트 가운데 대표과제로, 원활한 사업 추진을 위해 지난해 7월부터 국내외 대학 등과 업무협약을 체결하는 등 다양한 준비를 해왔다. 도-대학 협업 런케이션 유형도 국내와 해외를 구분해 마련했다.

국내 대학을 대상으로는 동·하계 계절학기 중 제주에 내려와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학점을 받는 방식으로 운영 중이다. 실제로 지금 제주 대정읍에서는 경희대 학생 15명이 머무르며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사회혁신 프로젝트를 수행 중인 경희대 사회혁신스쿨은 2020년부터 모슬포 리빙랩 프로젝트로 시작해 2024년까지 총 6회, 회당 20여 명 총 92명의 학생이 대정읍 주민들과 협력해 프로젝트를 수행해 왔다. 현재까지 프로젝트를 통해 마을 특산품 활용 상품 개발, 지역 홍보 영상 제작, 조형물 디자인, 마을 로고송 제작 등 다양한 분야의 성과물을 도출했다. 참여 학생의 전공은 총 23개에 이른다.

올해부터는 계절학기에 진행하던 프로젝트를 학기 중에 진행하고, 학점 인정까지 할 수 있도록 현장 합숙형 PBL 교육 프로그램인 ‘사회혁신학기’를 신설했다. 이를 통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학생에게 교양 9학점, 전공 6학점 총 15학점을 제공한다. 학생들은 한 학기 동안 해당 지역에 머물면서 직접 설계한 실천형 프로젝트를 진행해 현장 체험과 학점을 동시에 취득하고, 지역사회는 사회 문제를 집중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우대식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런케이션은 단순한 체험이 아닌, 진짜 실무 교육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이 프로젝트는 결과물이 아닌 ‘과정’에도 가치가 있다. 지역 주민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대화를 나누는 그 경험 자체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경희대 학생들이 대정읍의 역사를 이해하고 만든 로고 ‘모슬로우’. (사진=임지연 기자)
경희대 학생들이 대정읍의 역사를 이해하고 만든 로고 ‘모슬로우’. (사진=임지연 기자)

교육적 성과도 눈에 띈다. 학생 만족도는 평균 4.9점으로, 단순히 전공에 머무르지 않고 다른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됐다는 평이 많다.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한 학생은 “학교 밖에서 실무적인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굉장히 큰 매력이었다”라고 프로젝트에 참여한 계기에 대해 말하며 “제주에서 실무 경험도 쌓고, 놀 수도 있고, 학점까지 인정되는데 안 할 이유가 없다”고 답했다.

또 다른 학생은 “이론 위주의 수업에서 벗어나 실무적인, 특히 지역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면서 거기에서 의미를 많이 찾은 것 같다”며 “지역사회를 돕는다는 소명으로 하는 일이 교육적인 목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고 전했다.

주민들의 만족도도 높다. 양치우 최남단대정읍 마을관리사회적협동조합 이사(역사문화팀장)은 “제주 대정읍은 대한민국 국가등록문화재가 13군데나 있는 곳으로, 근현대사 관련 문화유산이 제주도에서 가장 집약된 지역이다. 지금도 그 시설들이 대부분 원형 그대로 남아 있는데, 처음 오는 학생들은 이런 역사적 특수성을 잘 모르고 오기 때문에 프로젝트 자체가 대정읍에 대한 역사를 설명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며 “이처럼 이 프로그램은 단순한 탐방이 아닌 해설과 학습에서 출발한다. 학생들이 이 지역의 특성을 이해하고,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때문에 결과물도 마을의 이야기가 잘 반영되고,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오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주민 시선으로 보는 것과 외부의 시선이 다르더라. 덕분에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창조적인 결과물이 많이 도출됐다”며 “학생들이 진지하게 고민해주면, 우리도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어설프게 시간만 때우러 오는 것이 아닌 우수한 결과물이 나오다 보니 서로 신뢰하고, 고마운 사이로 발전할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경희대 사회혁신스쿨이 지금까지 모슬포 등에서 진행한 사업을 정리해 전시하고 있다. (사진=임지연 기자) 
경희대 사회혁신스쿨이 지금까지 모슬포 등에서 진행한 사업을 정리해 전시하고 있다. (사진=임지연 기자) 

■ ‘여행’으로만 접하던 제주, 배움의 공간으로 = 제주평생교육장학진흥원이 지난해 10월부터 12월까지 시범운영한 ‘2024 제주가치 공감, 런케이션’도 대표적인 우수 사례로 꼽을 수 있다.

‘제주가치 공감, 런케이션’은 10월 4일부터 5일, 11월 30일부터 12월 1일, 12월 14일부터 15일 각각 1박2일간 3회에 걸쳐 진행된 프로그램으로, 단순한 여행이 아닌 ‘제주’라는 공간이 품은 역사와 문화, 자연을 배경 삼아 현장에서 배우고 느끼는 일종의 ‘배움의 여정’으로 진행돼 큰 호응을 얻었다.

도외에 거주하는 성인학스자를 대상으로 진행된 이 프로그램에는 총 69명이 참가했다. 이들에게는 강사료·여행자 보험·이동 차량 등 학습에 필요한 비용이 지원됐다.

각 회차마다 다양한 주제로 프로그램을 진행해 참가자들이 다양한 배움을 얻어갈 수 있도록 했다. 1회차 프로그램은 화산 폭발로 탄생한 제주도의 지질생태와 목축 문화를 탐방하는 프로그램으로 진행됐으며, 2회차는 ‘한강 작가의 시선으로 떠나는 제주 4·3’를 주제로 한강 작가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의 배경 장소 탐방 및 제주 4·3을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운영됐다. 마지막 3회차는 ‘외국인 가족과 함께하는 제주와의 만남’이라는 주제로 제주를 찾은 외국인 가족들에게 제주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모든 참가자가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전 온라인으로 사전 학습을 이수하다는 점도 특징이다. 사전 학습을 하고, 현장에서 강의와 해설이 이어지면서 단순한 체험을 넘어 ‘이해 기반의 체험’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이러한 하이브리드형 학습은 해외에선 일반화된 방식인데, 제주에서 이제 막 그 첫발을 뗀 셈이다.

13일 교육부 기자단을 대상으로 진행한 ‘런케이션’ 팸투어에서 ‘녹차’를 중심으로 한 자연체험형 콘텐츠 일환으로  있다. (사진=임지연 기자)
13일 교육부 기자단을 대상으로 진행한 ‘런케이션’ 팸투어에서 ‘녹차’를 중심으로 한 자연체험형 콘텐츠 일환으로  김명찬 농부가 제주 차에 대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임지연 기자)

■ 런케이션 참가자 큰 호응, 만족도 매우 높아 = 참가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참가자들은 “제주는 여러 번 왔지만, 이렇게 깊이 들여다본 건 처음이었다” “제주에 대해 몰랐던 것들을 많이 알게 됐다” “제주의 새로운 이미지를 알게 됐다” 등 다양한 반응을 내놨다.

만족도도 높았다. 런케이션 프로그램에 참여자들을 대상으로 만족도를 실시한 결과, 98.1%가 만족한 것으로 조사됐으며, 재방문 의사도 96.2%에 달했다. 다른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다는 비율도 98.1%로 나타났다.

이외에도 평생교육장학진흥원은 광역자치단체 간 지역학 공동 협력 프로그램을 온라인으로 운영해 제주도민 85명에게 전북·인천·충북 지역학을, 타 지역민 40명에게는 제주학을 제공했다. 또한 제주도민대학 우수학습자를 대상으로 인천·강화, 공주·부여·익산 등 국내 문화·역사 런케이션도 운영해 큰 호응을 얻었다.

재원 역시 의미가 있다. 런케이션 시범 사업은 ‘고향사랑 기부금’을 활용해 진행됐다. 도외인이 제주에 기부한 금액이 다시 교육 프로그램 예산으로 환원됐고, 프로그램 후에는 참가자들이 다시 기부에 참여하는 구조를 통해 선순환이 이뤄졌다.

고미영 제주평생교육장학진흥원 경영기획부장은 “올해는 기존 프로그램 이외에도 ‘녹차’를 중심으로 한 자연체험형 콘텐츠,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인기에 힘입어 제주어와 관련된 콘텐츠 등 문화·역사·환경을 총망라한 프로그램을 기획해 진행하고자 한다”며 “외국인을 위한 별도 회차도 기획 중이다. 단순한 청년 위주의 워케이션과 달리, 성인학습자를 중심으로 한 ‘평생학습’에 초점을 맞췄다”고 소개했다.

또 고 부장은 “올해 목표 인원은 2000명으로, 몰입도 높은 학습과 체험을 위해 회당 20명 이내로 소규모 정예로 운영한다”며 “차별화된 콘텐츠 개발로 제주가 런케이션 중심지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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