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준원 동아방송예술대 교수

권준원 동아방송예술대 교수.
권준원 동아방송예술대 교수.

서울 광화문 사거리를 지나간 사람은 이 건물에 붙어있는 커다란 글자판을 보았을 것이다. 이 글자판에는 명성 있는 시인들의 시 한 구절이 적히기도 하고, 어느 때는 BTS의 노래 가사가 올려지기도 한다. 그런데, 이 명성 있는 글자판에 지난 5월 8일부터 최근 인기리에 종영된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 주인공 금명의 내레이션인 “아빠의 겨울에 나는 녹음이 되었다. 그들의 푸름을 다 먹고 내가 나무가 되었다”가 게시돼 관심을 끌고 있다. 광화문 글자판에 새겨진 한 글자 한 글자가 마음 깊은 곳까지 들어와서 감성을 자극하는 것은 아마도 드라마의 장면이 오버랩돼 그 진동의 폭이 더 커지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의 주변에는 이 드라마를 보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드라마를 보고 울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

‘폭싹 속았수다’는 1960년대 제주도를 배경으로 해녀의 딸 애순과 그녀를 맹목적으로 사랑하는 관식 그리고 그들의 딸인 금명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그려낸 16부작 드라마다. 이 드라마는 넷플릭스에서 공개돼 곧바로 국내 1위에 등극하고, 글로벌 TOP 10(비영어) 부문에서는 4위로 시작하여, 3막이 공개되면서 곧바로 정상에 오르게 된다.

넷플릭스가 공식 서비스되지 않는 중국에서도 큰 인기를 얻고 있는데, 언론 보도에 따르면 중국 공산당 기관지 ‘환구시보’는 지난 3월 27일 ‘폭싹 속았수다’가 중국의 대표적인 소셜미디어 플랫폼 도우반(Douban)에서 평점 9.4점을 기록하며, 최근 몇 년간 가장 높은 평가를 받은 한국 드라마로 떠올랐다고 한다.

이 드라마의 인기는 다양한 분야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만들어 내고 있는데, 드라마의 IP를 보유하고 있는 넷플릭스가 그 첫 번째 수혜자다. 지난 3월 넷플릭스는 MAU(월간 활성 이용자 수) 1400만 명을 기록했는데, 이는 2월 대비 64만 명 이상 증가한 수치다. 제작사인 팬엔터테인먼트 주가는 드라마가 공개된 직후 22.12% 상승했고, 2막 공개를 앞두고는 52주 최고가를 경신했다.

제주도도 드라마의 수혜를 톡톡히 보고 있다. 최근 제주도를 찾는 내국인 관광객의 수가 증가하고 있고, 대만 인기에 따라 제주에서 대만 가오슝 직항 노선까지 재개시키는 등 해외 관광객 확보에도 효과를 보고 있다. 드라마가 촬영된 전북 고창의 청보리밭, 경북 안동의 세트장 도 새로운 관광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드라마에 노출된 참기름과 들기름을 판매하고 있는 향유NH는 드라마가 공개된 2025년 3월부터 4월까지 매출이 전년도 같은 기간 대비 30% 증가했으며 유한킴벌리, 오이뮤 등과의 협업 제품이 시장에 출시됐다. 패션업계에 따르면 이 드라마의 영향으로 체크무늬, 도트 패턴 제품을 비롯한 복고풍 패션의 유행이 가속화됐으며 필자가 어린 시절에 주로 사용하던 양은 소재 밥상과 주전자, 접시 그리고 고무신과 같은 과거의 정서를 담은 제품들이 소비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잘 만들어진 한편의 콘텐츠는 그것을 제작하고 유통하는 기업에 커다란 수익을 안겨주는 것뿐만 아니라 콘텐츠와 관련된 여러 지역과 다양한 산업에 새로운 기회를 가져다주는데, 이와 같은 현상을 스필오버 효과(Spillover Effect)라고 부른다. 스필오버는 ‘넘쳐 흐른다’라는 뜻이며, 어떤 영역에서 발생한 효과나 결과가 인접한 다른 영역으로 넘쳐흘러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말한다.

학령인구가 급감하는 초유의 환경을 앞에 두고 대학들은 저마다 다양한 대책을 강구하고,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힘겨운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10년 후 대부분 대학이 현재와 같은 규모를 유지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으며, 자의든 타의든 대학은 정원을 감축하고 학과(전공) 수를 줄여야 한다. 이 시점에서 대학은 여러 가지 전략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 있겠지만, 필자는 대표 분야의 성공을 통해 대학의 브랜드를 구축하고, 해당 분야의 성공이 대학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하는 집중화 전략(Focus Strategy)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대학은 더 늦지 않게 지역의 수요를 중심으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분야를 정하고, 대학의 가용자원을 적극 투입해 메마른 땅에 생명을 불어넣어 줄 원천 샘물을 개발해야 한다. 그리고 그 샘물이 대학 전체로 넘쳐흐르도록 전략을 수립하고 실천해야 할 것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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