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 서울여대 총장

이윤선 서율여대 총장
이윤선 서율여대 총장

효율성과 성과가 절대적 기준이 된 시대,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잃어가고 있다. 경쟁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생존의 조건이 됐고, 관계보다는 결과가 우선되는 분위기 속에서 타인과의 연결은 점점 느슨해지고 있다. 성취를 향한 압박은 감정에 집중할 여유를 점점 좁혀 놓았고, 사회적 유대는 자연스레 우선순위에서 멀어지고 있다.

이런 현실은 특히 시대의 가장 예민한 감각을 지닌 청년들에게 먼저 나타난다. 생존 중심의 경쟁이 일상화되면서 청년들은 자신의 삶을 감당하기에도 벅찬 현실 속에서 점점 더 고립되고 있으며, 사회에 대한 기대와 책임의식마저 희미해지고 있다. 관계 맺기의 기반이 무너지는 상황에서 사회를 지탱하던 신뢰의 구조와 연결망에도 서서히 균열이 생기고 있다.

그렇기에 대학 역시 자신의 고유한 역할에 대해 깊이 있는 고민이 필요하다. 대학은 사회의 거울이자 동시에 미래를 비추는 창이다. 교육은 단순한 정보와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삶을 이해하고 방향을 모색하는 과정이어야 하며, 특히 변화의 최전선에 선 청년들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총장으로서 매일같이 학생들을 만나며 늘 같은 질문에 마주한다. “오늘의 청년들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하고, 또 어떤 방식으로 지지할 수 있는가?”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4년 청년 체감실업률은 16.4%로, 1년 전보다 0.8%포인트 상승했고,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조사에서는 우리의 20대들은 “앞으로 삶이 더 나아지지 않을 것 같다”고 응답했다. 단지 일자리를 찾기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방향과 목표를 잃고, 무력감 속에 살아가는 청년들이 겪는 현실은 복합적이며 우리 사회의 구조적 위기의 징후를 드러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청년들의 시선 속에서 여전히 우리 사회의 역동성과 희망의 가능성을 본다. 사회적기업을 통해 공익적 가치를 구현하려는 도전, 소외된 이웃을 위한 봉사를 자발적으로 기획하는 책임감, 환경과 지속가능성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일상 속에서 실천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들이 단지 교육 소비자가 아닌, 새로운 사회를 구상하는 실험자이자 실천자임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 청년들은 공동체의 미래를 함께 설계하는 창조적 시민이며, 불확실한 시대 속에서도 변화의 주체로서 스스로를 길러내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가능성과 실천을 사회와 대학이 어떻게 연결하고 지속적으로 지지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대학은 지식을 전달하는 기능을 담당하는 기관이 아니라, 청년의 가능성이 꺾이지 않도록 사회와 연결해주는 징검다리이자, 실패를 포용하고 질문을 장려하는 실험의 공간이어야 한다. 청년이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더 나은 사회를 함께 구상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야말로 오늘날 대학의 진정한 존재 이유다. 이를 위해 대학은 실패를 학습의 일부로 수용하고, 다양한 질문을 자유롭게 제기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며, 서로 다른 관점을 존중하는 문화적 토대를 갖춰야 한다. 이러한 배움의 공동체 안에서 학생은 지식의 소비자를 넘어, 공동체의 책임 있는 구성원으로 자라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답을 강요하는 교육이 아니라, 함께 살아갈 삶을 설계하는 교육이다. 대학이 그 중심에서 청년의 성장을 지지하고, 사회와의 연결을 이끄는 역할을 다할 때, 우리는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

청년의 희망이 뿌리내릴 또 하나의 공간은 바로 ‘지역’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공간은 누군가에게는 삶의 터전이자, 또 다른 가능성의 출발점이 된다. 그러나 현실은 결코 쉽지 않다. 인구 불균형과 일자리, 교육, 문화 인프라의 편차는 청년들에게 머물고 싶은 지역을 찾기 어렵게 만들고 있으며, 이는 자연스럽게 대학과 지역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청년이 자리를 잡지 못하고, 대학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할 때, 지역사회 역시 미래를 설계하기 어려워진다. 이처럼 유기적으로 연결된 현실 속에서, 대학은 더 이상 지역과 분리된 존재일 수 없다. 대학은 지식을 전달하는 교육 기관의 역할을 넘어서 지역의 문제를 함께 정의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공공 플랫폼으로 거듭나야 한다. 정책, 산업, 생활, 문화 등 지역 공동체의 다양한 과제를 통합적으로 다루며, 우리가 있는 이곳에서 함께 숨 쉬고 변화하는 실천의 주체가 돼야 한다.

이미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지역사회와 함께 호흡하려는 다양한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다. 일부 대학들은 교육과 연구의 경계를 넘어서 지역 주민과 함께 지역사회 문제를 분석하고, 실제 해결에 참여하는 공동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다. 때로는 지역의 청년 창업을 돕고, 때로는 농촌의 돌봄 인프라를 공동 운영하면서, 대학은 점차 지역과의 공존을 모색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실천이 일회성 사업이나 행사로 머무르지 않고, 대학의 교육과정과 지역이 하나의 구조로 통합돼야 한다는 점이다. 지역은 더 이상 연구 대상이 아니라, 함께 숨 쉬고 책임져야 할 삶의 현장이다. 단순한 실습을 넘어 지역 주민과 공동으로 수업을 기획하고, 지역 문제를 함께 정의하며 해법을 만들어가는 개방적이고 참여적인 교육 생태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학생은 단순 실습생이 아니라, 지역이라는 공동체 현장에 참여하는 시민 학습자로 성장하게 된다. 

무엇보다 앞으로의 지역 협력 모델은 정부가 제시하는 방향성과 더불어, 각 대학 고유의 정체성과 지역적 특성을 반영한 자율적인 설계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 대학은 저마다 다른 역사와 문화, 지역사회의 맥락 속에 존재하기에, 지역과의 협력 방식 또한 획일적 기준보다는 각 대학의 강점과 역할을 살린 유연하고 창의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이러한 자율성이 충분히 보장될 때, 대학은 단순한 사업 수행 기관을 넘어, 지역과 함께 지속가능한 사회 모델을 구상하고 실천해 나가는 실질적 파트너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따라서 성과를 수치로 환산하는 평가 중심의 틀에만 머물기보다는, 지역사회와 함께 호흡하며 변화를 만들어가는 대학의 과정과 실천 자체를 존중하고 지원하는 방향으로 정책의 관점 또한 재정립될 필요가 있다.

미국의 펜실베이니아대학교와 드렉셀대학교는 필라델피아 서부의 장기적으로 방치된 지역을 대상으로, 교육·보건·주거·치안 등 복합적 문제에 체계적으로 개입함으로써 지역 재생에 성공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이들 대학은 지역사회와의 관계를 단순한 봉사활동에 한정하지 않고, 교육의 본질적 기능과 연결지으며 실질적 변화를 이끌어냈다. 펜실베이니아대는 공립초등학교를 직접 설립해 지역 공교육에 참여하고, 교직원에게는 주택 보조금을 제공해 지역사회 내 정착을 유도했다. 드렉셀대는 지역 주민과 학생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커뮤니티 허브를 통해 법률, 보건, 교육 등 다양한 사회 서비스를 제공하는 한편, 대학의 교육과정 전반을 지역의 현실과 긴밀히 연결해 구성했다. 이처럼 교육이 지역의 삶과 맞닿을 때, 대학은 단순한 지식 전달자에 그치지 않고, 지역과 함께 미래를 설계하고 성장하는 살아 있는 공동체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교육은 언제나 사회를 다시 움직이게 하는 출발점이었다. 오늘날 청년의 고립, 대학의 정체성 위기, 지역 소멸의 문제는 개별 사안이 아니라 하나의 구조로 서로 얽혀 있다. 청년은 이제 사회 변화를 이끄는 능동적 주체이며, 대학은 그 가능성이 현실이 되도록 돕는 동반자여야 하며, 지역은 청년이 자신의 삶을 구체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무대가 돼야 한다. 이 모든 연결의 중심에는 신뢰할 수 있는 공동체적 기반이 있어야 한다.

대학은 청년과 지역, 사회가 다시 손잡을 수 있도록 실질적 협력의 매개자가 돼야 한다. 이를 위해 대학은 교육과정 혁신을 위한 재정 투자, 교수 학습 방식의 전환을 위한 제도적 유연성 확보, 그리고 모든 구성원이 이러한 변화의 필요성을 공감하고 동참하는 문화 조성에 선제적으로 나서야 한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청년의 열정과 대학의 책임, 그리고 지역의 연대로부터 시작된 변화가 정책적 뒷받침과 어우러질 때 더욱 깊고 지속적인 힘을 얻게 될 것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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