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영 상명대 대외협력처장(경제금융학부 교수·《트렌드코리아 2025》 공저자)

이준영 상명대 대외협력처장(경제금융학부 교수·《트렌드코리아 2025》 공저자)
이준영 상명대 대외협력처장(경제금융학부 교수·《트렌드코리아 2025》 공저자)

K팝, K드라마, K푸드 등 수많은 K브랜드가 전 세계를 정복하는 가운데,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인은 250만 명을 돌파해 인구의 5%에 육박한다. 이는 OECD 기준으로 보면 우리나라는 이미 다문화국가에 해당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진정으로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을 내리기 쉽지 않다. 작금의 K는 단일한 기준에 의한 이분법으로 규정하기 어렵게 됐다. 이제 다채로운 색깔이 서서히 중첩되어 변화하는 ‘그라데이션’의 개념을 통해 한국적 정체성을 파악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그라데이션K’ 트렌드가 주목받는다. ‘그라데이션K(Gradation K)’는 한국이 다인종, 다민족 국가로 변모하고 세계와 폭넓게 교류하며 경제적, 문화적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K로 대변되는 한국적 정체성이 지속적으로 확장되는 경향을 지칭한다. 

우리나라에서 그라데이션K 트렌드를 체감할 수 있는 곳은 무엇보다 학교다. 경기도 안산의 한 초등학교는 다문화학생 비율이 97.4%에 이른다. 전국적으로도 이주배경학생이 30% 이상인 학교도 350군데가 넘는다. 저출산 현상과 더불어 다문화학생 수가 증가하는 추세 속에서 이 비율은 더욱 높아질 전망이어서, 학교들도 이에 적극적인 방법으로 대응하고 있다. 언어적 제약으로 인해 누구나 평등하게 교육받을 기회를 박탈당하지 않도록 익숙한 언어로 번역된 시험지를 제공하거나, 다국어 가정통신문을 제공해 한국어가 어려운 학부모를 배려하는 학교도 많아지고 있다.

일터에서 외국인 근로자들을 만나는 것은 이제 흔한 일이 됐다. 이미 식당, 편의점, 공장, 논밭 등 근로 현장에서는 외국인 노동 인력은 필수적이다. 채용시장에서도 이제 국적보다는 업무 능력과 적합성이 더 중요해졌다. 이제 기업들도 내수를 넘어 수출로 눈을 돌리고 해외시장을 확대하면서 외국인 직원들의 언어와 문화 차이가 기업의 경쟁력을 창출하는 중요한 토대가 되고 있다. 현대자동차도 국내 대기업 중에서는 최초로 외국인 호세 무뇨스가 CEO로 부임했다. 국내에서도 외국인 동료에 대한 거부감은 사라지고 있으며, 외국인 인재 채용 전망도 높아지고 있다. 기업에서도 외국인 직원이 불편 없이 지낼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가 늘어나고 있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 구내식당에서 한식, 중식, 일식 등과 함께 인도식 코너가 마련됐으며, 식자재 구매 단계에서부터 이슬람 할랄 인증된 고기를 사용한다. HD현대중공업도 이슬람 직원을 위해 알콜과 돼지고기를 뺀 식단을 내놓고 있다. 외국인 근로자가 많아지면서 기업문화도 더욱 다채롭게 그라데이션되고 있다. 

K브랜드의 인기가 매우 높아지면서 전세계적으로 그라데이션K 트렌드가 강해지고 있다. 특히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는 한국식 아파트 단지, 한국 편의점 브랜드 CU와 GS25, 떡볶이와 어묵을 파는 노점, 한국어 간판까지 마치 경기도의 동탄 신도시를 옮겨놓은 듯한 모습이라고 하여 ‘몽탄 신도시’라는 별칭도 갖게 됐다. 베트남 정부도 자국 도시에 우리나라의 신도시 시스템 도입을 하기 위해 우리 정부와 ‘도시-주택개발 협력 MOU’를 체결했다. 

K콘텐츠도 글로벌 인기가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오징어 게임〉 시리즈가 큰 인기를 끌었고, 올해는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이 토니상을 받아 크게 주목받았다. 이 외에도 한국의 〈복면가왕〉 〈꽃보다 할배〉 〈굿닥터〉 등의 콘텐츠도 미국 등에서 꾸준히 리메이크되고 있다. 이러한 콘텐츠 분야의 K브랜드 글로벌 확산은 인스타그램, 틱톡,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글로벌 그라데이션K 현상은 외국인들의 국내 관심과 유입을 더욱 촉진하고 있다.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된 지금, 대학교육 영역에서도 그라데이션K 트렌드가 핵심 키워드로 자리잡고 있다. 정부에서도 ‘Study Korea 300K’ 프로젝트를 내세우며, 외국인 유학생 30만 명 시대를 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출생률 저하로 인한 학령인구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대학들의 입장에서는 전 세계적인 그라데이션K 트렌드를 통해 우리 고등교육의 새로운 기회의 장을 열 수 있다. 

이를 위해 대학들은 국제 유학생들이 자신의 미래를 잘 준비할 수 있도록 다양한 특화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또한 낯선 환경에서 공부하는 외국인 유학생들을 위해 문화적으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국내 대학생들과 함께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즐겁게 학업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대학 측에서 다양한 문화 적응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 

교육과 정착, 향후 취업까지 효과적으로 연결하기 위해서는 대학의 노력뿐만 아니라 정부와 지자체의 노력이 함께 협력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상호 간의 긴밀한 협력 속에 외국인 유학생 관리부터 학업, 취업, 더 나아가 국내 정주까지도 잘 이뤄질 수 있도록 체계적인 기반 조성을 해야 한다. 본격적인 그라데이션K 시대를 대비해 앞으로 우리 대학들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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