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훈 지음 《이기는 보수》

(사진=교보문고)
(사진=교보문고)

[한국대학신문 정수정 기자] 패배를 겪어본 정치서는 드물다. 그러나 조정훈의 신간 《이기는 보수》는 그 결핍에서 출발한다. 프롤로그는 계파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던 22대 총선 백서 작업 당시, 개표 화면에 찍힌 ‘‑8.27%’라는 붉은 숫자로 시작된다. 새벽 1시, 여의도 지하 주차장을 감싼 정적, 전광판의 잔광, 자신을 향한 분노까지, 저자는 패배의 모든 감각을 기록한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절망을 미화하거나 남 탓으로 돌리지 않는다. 대신 ‘직시 → 교훈 → 재건’이라는 세 단계로 패배를 공학적으로 해체한다. 그리고 거기서 추출한 공식은 놀라울 만큼 단순하다. “명확한 메시지 × 국민 공감 × 조직 결속 = 승리”.

《이기는 보수》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2025년 조기대선까지, 일곱 번의 선거를 숫자·서사·조직이라는 세 개의 메스로 절개한다. 득표율 곡선이 꺾인 순간, 국민이 갈망한 이야기를 놓친 공백, 계파 갈등이 남긴 균열을 면밀히 복기한다. 분석 도표와 그래프, 전략 실행 체크리스트는 이 책을 단순한 회고록이 아닌 ‘실전형 매뉴얼’로 만든다.

프롤로그는 과거의 상처를 직면하는 문이라면, 에필로그는 미래를 여는 창이다. 저자는 보수 정치의 낡은 언어인 ‘질서·책임·연대’를 ‘미래영향평가·재도전 인프라·세대 간 계약’으로 번역하며, 다가오는 선거를 준비할 3단 로드맵을 제시한다. 구호가 아니라 실행 가능한 기술로서의 정치를 설계하겠다는 선언이다.

이 책은 전통적인 정치 서적의 문법을 거부한다. 승리를 영웅담으로 노래하지 않고, 타인 비난의 늪에도 빠지지 않는다. 대신 패배가 남긴 파편을 주워 손전등을 만드는 과정을 보여준다. “정치는 다시 사람을 믿는 기술이 될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구체적 로드맵이 함께 배치된 이 책은 정치 전략서이자 한국 정치의 재설계도다.

조정훈은 말한다. “누가 강을 먼저 건너느냐가 아니라, 누가 건넌 뒤 다리를 놓을 설계도를 갖고 있느냐.” 《이기는 보수》는 그 질문을 독자 앞에 던진다. 이 책이 제안하는 변화는 정치권을 넘어, 실패를 경험한 모든 조직과 개인에게 적용 가능한 생존의 기술이다. (더레드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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