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준원 동아방송예술대 교수

권준원 동아방송예술대 교수.
권준원 동아방송예술대 교수.

1990년대 후반에 드라마로부터 시작된 한류는 2000년대에 들어서 K-pop, 영화, 음식, 패션, 화장품 등으로 확장됐으며, 지금까지 한류를 이끈 콘텐츠는 한국인이 한국의 자본으로 한국에서 만든 것들이었다. 그런데 최근 한국산이 아닌 한 편의 콘텐츠가 한류 열풍을 재점화하고 있는데,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 이하 케데헌)가 그 주인공이다.

케데헌은 미국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이 제작하고, 넷플릭스가 배급했다. 이 작품의 감독은 한국계 캐나다인 메기 강과 미국인 크리스 아펠한스가 공동으로 맡았으며, 메기 강이 구상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메기 강을 비롯한 총 4명이 각본 작업에 참여했다. 더빙은 캐나다와 미국에 사는 한국계 배우들과 이병헌이 참여했고, 노래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8명의 보컬리스트가 맡았다. 그리고 편집은 네이션 쇼프(미국), 음악은 마르셀루 자르부스(브라질)가 참여했다. 이와같이 다양한 국적과 배경의 기업과 인물들이 모여서 만든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케데헌은 지금 ‘한류 폭발 현상’의 중심에 서 있다.

케데헌 공개 이후 구글에서 ‘Korea’ 검색량은 2년 8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고, ‘Korean Food’ 검색량은 사상 최고 수준으로 75% 증가했다. 올해 7월 한 달간 서울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136만 명으로 역대 최대 규모이며, 6월 20일 케데헌 공개 이후 한국을 찾는 관광객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국립 중앙박물관 굿즈샵에는 애니메이션 속 호랑이 캐릭터와 저승사자의 갓 등의 굿즈를 구매하기 위해 외국인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으며, 최근에는 케데헌 주인공인 루미, 미라, 조이를 따라 한국식 목욕 체험을 하려는 관광객들이 목욕탕으로 몰려드는 재미있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지금도 케데헌이 보여주는 한국의 매력에 빠져든 전 세계 관람자들의 발걸음이 북촌 한옥마을과 낙산공원, 남산타워 등으로 향하고 있다. 이와같이 한국산 콘텐츠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케데헌의 성공에 따른 이익을 한국이 오롯이 받는 이유는 한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메기 강 감독의 ‘한국 알리기’ 의도에 따라 한국의 신화와 전설, 굿, 의상, 음식, 생활풍습 등의 전통문화, 그리고 한국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이 작품을 가득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케데헌은 한국의 전통과 철학 그리고 한국적인 서사를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다양한 국적의 참여자들이 자국의 문화적 색채를 작품에 녹여 넣었고, 마블을 비롯한 슈퍼히어로 콘텐츠의 서사, 미국의 팝 음악 문화, 일본 애니메이션의 정서 등 기존의 성공한 콘텐츠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왔다.

또한 케데헌은 K팝, 액션, 코미디, 호러를 결합한 장르 융합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사자보이스로 변신한 저승사자와 K-pop 걸그룹의 시공을 넘어선 대결 구도를 통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고 혼합해 전통과 현대를 연결하고 있다. 케데헌은 이렇게 다양한 요소를 작품에 녹여 넣으면서 ‘혼종 콘텐츠’의 성공 공식을 만들어 가고 있다.

과거 한국 국적의 20대 학령기 학생이 대부분이었던 대학 캠퍼스에는 중국, 베트남을 비롯한 다양한 국적의 유학생이 늘어나고 있으며, 지역 소재 대학들에서는 학령기를 지난 성인학습자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이렇게 인적 구성이 다양해지면서 새롭고 다양한 요구가 분출되고 있으며, 대학에는 학문적 성과 창출이라는 본연의 역할 외에도 산학 연계 강화, 지역 연계와 글로벌 협력 확대 등의 사회적 요구가 한층 강조되고 있다.

필자는 이렇게 다층적인 기대를 충족시켜 가면서 동시에 지속가능성을 확보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서 대학이 자신만의 ‘생존 공식’을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케데헌의 성공 비법인 ‘혼종 전략’을 차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모여 다양한 문화와 장르를 융합해 전례가 없는 성과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처럼, 대학에 급격하게 들이닥친 다양한 인적, 문화적, 사회적 여건의 변화를 부정적이고 패배적 관점에서 바라보지 않고, 오히려 긍정적인 관점에서 활용 가능한 요소를 도출하고 융합해 새로운 성장에너지로 전환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와 같은 접근 방식은 대학에 메기 강과 같은 ‘혼종의 마법’을 부릴 수 있는 기회를 가져다줄 것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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