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용근 충남삼성고 교사

권용근 충남삼성고 교사.
권용근 충남삼성고 교사.

일반적으로 ‘대학교’라는 단어를 들으면 ‘낭만, 학업, 진로’와 같은 단어가 떠오른다. 세 가지 모두 맞는 말이다. 인생의 황금기인 청년 시절에만 누릴 수 있는 낭만적인 시간과 감정들, 모두가 그렇지는 않지만 그래도 자신이 결정해서 진지하게 시작하는 학업, 또 그 학업으로 자신의 첫 번째 진로를 준비하는 과정. 모두 대학교에서 경험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대학교와는 다소 다른 느낌의 대학교도 있다. 바로 미국의 ‘워크 칼리지(Work College)’라는 형태의 대학이다.

이 대학은 대학 캠퍼스에서 학생들이 일을 하며 수업료를 벌면서 다닐 수 있는 학교로, 학생이 노동하는 것을 중요한 교육과정으로 간주한다. 당연히 의무 노동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실제적으로는 매우 저렴하게 학교를 다니게 된다. 물론 이러한 학교를 다니면서도 ‘낭만, 학업, 진로’ 등을 경험할 수 있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대학교의 분위기와는 분명 다르게 느껴진다. 현재 미국 워크 칼리지 연합회(Work Colleges Consortium)에는 8개의 학교가 가입돼 있다.

‘딥스프링스 칼리지’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빅파인 93513, 딥 스프링스 랜치 로드 250에 위치해 있다. 미국 워크 칼리지 연합회에는 가입돼 있지 않지만, 워크 칼리지보다 더 진보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1917년에 설립된 이 학교는 매년 약 12~15명의 학생을 선발한다. 입학 허가를 받은 모든 학생은 2년 동안 전액 장학금을 받는다. 즉, 학교는 모든 학생의 등록금, 숙식비를 부담하는 것이다. 그 대가로 졸업생들은 정치, 과학, 저널리즘, 학계, 농업, 의학, 법률, 비즈니스,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들이 배운 학교의 철학을 실현하며 인류를 위해 봉사할 것을 다짐하게 된다. 학교가 학생들을 거의 무상으로 교육하고, 학생들은 그 대가로 사회적 책무 준수를 약속하는 방식이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점은 캘리포니아주 비숍에서 40마일 떨어진 딥 스프링스 계곡의 외딴 소 목장에 학교가 위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부러 외부 세계와의 적절한 단절을 의도한 것으로도 보인다.

이 학교의 기본 원칙은 학문(Academics), 학생 자치(Self-Governance), 노동(Labor)이다. 이 세 원칙은 학생들이 2년 동안 학교에서 지게 되는 공식 책무이며, 각 학생이 공동체에 대한 진정한 책임과 주인의식을 갖도록 유도한다. 수업은 일반적으로 세미나식 토론을 중심으로 구성되며, 보통 8명 미만의 소규모로 진행된다. 학생회는 학생 선발, 교수진 채용, 학생 및 교수진 평가 등 학교 운영의 여러 측면을 책임진다. 모든 학생은 매주 약 20시간씩 육체노동을 하는데, 농장 및 목장 작업, 요리, 청소, 시설 및 차량 유지보수와 같은 일상적 업무가 대부분이다.

졸업 후에는 준학사(Associate of Arts) 학위를 취득하게 되는데, 배우는 과목들이 제법 균형이 잘 잡혀 있다. 설득력 있는 논증을 구성하는 것과 글의 독자를 고려하는 법을 배우는 ‘글쓰기(Writing)’와 ‘공적 연설(Public Speaking)’, 고립과 공동체의 의미를 탐구하고 플라톤, 루소, 니체가 남긴 고전을 배우는 ‘고립과 공동체’, 고대 시인 사포의 시와 그 후대의 수용 방식을 배우는 ‘사포 이후의 사포’, ‘딥 스프링스 계곡 자연사, ‘자유주의의 기초’, ‘상대성 이론과 블랙홀’, ‘베이즈 통계학’, ‘교육과 문화 전쟁’, ‘공간 은유와 미술’, ‘의자 제작’ 등과 같은 다양한 과목이 개설돼 있다.

우리나라에 이러한 워크 칼리지를 그대로 도입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이 워크 칼리지의 정신과 취지만큼은 한번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물론 워크 칼리지가 미국 대학의 주류는 아니지만, 이러한 실험적인 시도가 주는 교육적 의미에 대해 깊이 있게 탐구해서 적용 가능한 부분은 진지하게 검토해 보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딥 스프링스 칼리지는 ‘Learning by doing’이라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리는 학교이다. 직접 체험하고 행동하며 배우는 방식은 교육적으로 분명한 장점이 있을 것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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