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규 중앙대 부총장(인공지능인문학연구소 소장·국어국문학과 교수)

이찬규 중앙대 부총장(인공지능인문학연구소 소장·국어국문학과 교수)
이찬규 중앙대 부총장(인공지능인문학연구소 소장·국어국문학과 교수)

우리말에서 표준어라는 개념이 공식적으로 등장한 것은 훈민정음이 반포(1446)된 지 488년만인 1933년 조선어학회의 한글맞춤법통일안에서였다. 1900년대 초부터 주시경 선생 등 여러  학자들이 ‘정음(正音)’이나 국어 통일이라는 의식이 있었지만 ‘현재 중류사회에서 쓰는 서울말’이라는 명시적 기준이 제시된 것이 이때였다. 당시 다소 혼란스러웠을 국어 사용 현실을 생각해 보면 당연한 처사였을 것이다. 

이미 갑오경장이 일어난 해인 고종 31년(1894년) 11월 21일에 고종 칙령(勅令) 제1호로 ‘법률과 법령을 한글로 씀을 원칙으로 삼고, 한역문(漢譯文)을 붙이거나 국한문을 혼용하라’는 결정이 있었기 때문에 공문서 등에서 사용할 한국어에 대한 기준을 정하는 일은 시급한 일이었다. 더군다나 국어 교육에서 기준 없이 한국어를 가르치거나 사전 편찬 시 모든 방언을 다 수록할 수는 없었을 것이므로 일제의 방해와 억압 속에서도 한글맞춤법통일안을 만들어 낸 것은 우리나라가 근대국가에서 현대국가로 나아가는 데 매우 중요한 역사적 업적으로 칭송받아 마땅하다. 

이후 한글맞춤법통일안은 55년 동안 한국어 사용자들의 표준으로 자리잡았고, 1988년에 이르러 그 개정의 필요성이 제기돼 국가적 차원에서 ‘한글맞춤법과 표준어규정’을 제정했다. 이는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국가법령정보센터에 등재된 행정규칙이라는 점에서 국가 법령적 차원의 지위를 갖게 됐다.

다만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본다면 OECD 국가로 한정해 볼 때, 우리나라와 같이 시대성, 지역성, 계층성을 반영해 국가적 행정규칙으로서 표준어를 정하고 있는 국가는 중국을 제외하고는 어디에도 없다. 

중국, 프랑스가 강한 표준어 정책을 쓰고 있지만 중국은 다민족, 다언어 국가이고, 프랑스는 해외에서 프랑스어를 사용하고 있는 나라들이 있어 우리나라와는 사정이 좀 다르며, 노르웨이에서는 표준문어로 두 개를 인정하고 있다. 우리의 ‘표준어’ 개념 설정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되는 일본에서도 1902년 문부성 훈령을 통해 도쿄어를 기반으로 하는 언어를 표준어로 삼는다고 발표하자 전국적으로 지방의 방언이 근대화를 저해하는 부정적 요소로 간주되는 풍조가 널리 퍼졌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뒤로 도쿄 방언이 우위에 있어 다른 방언을 억압한다는 이유로 표준어를 폐지하자는 많은 의견이 제기돼 결국 1950년대에 이르러서는 표준어라는 용어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고, 공통어라는 용어가 일반화됐다. 우리나라에서도 2006년 5월 ‘표준어 규정 제1장 제1항 등 위헌 확인 헌법 소원 사건’이 접수되었지만, 2008년 11월 13일의 헌법재판소 결정에서 ‘표준어 규정은 국가 체제의 유지와 의사소통의 원활을 위하여 제정할 필요성이 있다. (중략) 수도의 말을 기준으로 하는 것은 다른 지역의 언어를 표준어로 하는 것에 비해 달리 대안을 찾을 수 없는 결정’이라고 판결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물론 국가적으로 표준어를 제정하면 여러 가지 면에서 이점이 있다. 공문서 작성, 국어 교육, 사전 편찬, 매체 언어 통일과 같은 공적 측면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의 소통에서도 효율성이 높아진다. 그러나 이러한 이점과 상반되게 표준어규정은 지금에 이르러서는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가장 중요한 점은 이러한 표준어규정의 기준이 되는 ‘시간성, 계층성, 지역성’이 추상적이라고는 하나, 우리 언어의 중요한 자산인 지역 방언들을 사라지게 하는 큰 요인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역에서조차 지역 방언을 잘 사용하지 않아 청소년들은 어떤 단어가 그 지역의 고유방언인지조차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전체 우리말의 자산 중 많은 부분이 박제된 채로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 조상들이 수천 년을 살아온 삶의 흔적과 우리 민족이 갈고 닦아 온 정신과 문화가 이 방언 속에 녹아 있는데 이들이 강력한 표준어 정책으로 소멸돼 간다면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건설현장에서 문화재가 발견되면 공사가 중지되는데, 어찌하여 그 문화재에 비견되는 방언들은 소멸이 방치되고 있는가? 방언은 단순한 언어 변형이 아니다. 그것은 지역 문화와 정체성의 보고(寶庫)이며, 고유한 정서와 사고방식을 담은 정신적 자산이다. 예를 들어,

“단디 챙기라” (경상도 방언)
“포도시 약속시간에 맞춰 왔당게” (전라도 방언)
“마카 알콰드래요” (강원도 방언)

이런 표현들이 가진 미묘한 뉘앙스와 정감은 결코 표준어로 대체될 수 없다.

AI 시대에 방언을 살려야 하는 이유는 더 분명하다. 현재 AI 학습 데이터의 대부분은 표준어와 표준 문법을 중심으로 구축된다. 데이터 정제 과정에서 방언이나 지역적 표현은 ‘노이즈’로 간주되어 삭제되거나 축소될 가능성이 크다. AI가 데이터를 학습하면서 더 많은 데이터가 있는 언어(표준어)와 표현을 중심으로 성능을 최적화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AI가 만들어내는 언어 세계는 점점 더 표준화된 언어만을 반영하게 되고, 장기적으로는 AI가 방언을 다루는 능력이 더 떨어지고, 사람들 또한 디지털 환경에서 방언을 쓸 기회가 줄어들 것이며, 결과적으로 사회적 언어 사용에서도 방언이 소외될 위험이 커진다. 

결국 이는 언어 다양성의 약화와 문화적 단조화로 이어질 것이 명확하다. 아이러니하게도 과거에는 표준어 규정과 맞춤법이 ‘우리말을 지켜내는 근간’이었다면, AI 시대에는 오히려 방언의 적극적 사용과 기록, 교육이 우리말을 지켜내는 핵심 과제가 됐다. AI 시대에는 인간과 문화의 고유성을 지켜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데, 공통적이고 보편적인 것들은 대부분 앞으로 AI가 인간보다 잘 할 것이므로 아주 작고 미묘한 차이가 있으며, 행간이나 관계 속에 숨어 있는 것들이 인간의 고유성을 유지해나가는 자원이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방언의 적극적 발굴과 사용은 필수적이다.

또한 방언을 사전에 모두 다는 것도 이미 디지털 사전 시스템 속에서는 문제가 안 된다. 종이 사전은 단어 수록에 한계가 있지만 디지털 사전에는 수록해야 할 단어 수에 거의 제한이 없다. 표준어라는 개념만 강제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의 모든 지역 방언들이 동등하게 사전에 실릴 수 있다. 표준어의 폐지는 남북한의 언어 차이를 극복하는 데도 기여할 수 있다. 평화적으로 남북 교류가 이뤄진다면 표준어가 장애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표준어규정을 내려 놓고 한국어를 한민족 공용어라는 범주에 담아야 한다. 한민족이 사용하는 모든 언어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간다면 ‘표준어’로 인한 갈등을 줄일 수 있다. 

이미 우리는 40여 년간 표준어를 강조해 온 결과로 ‘현재 교양있는 서울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라는 개념이 ‘지향해야 할 한국어’라는 인식으로 전환되어 확산됐고, 사투리는 수정해야 할 언어가 돼 버렸다. 특정 시대나 계층,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언어 정책은 포스트휴머니즘을 지향하는 AI 시대에는 적합지 않다. 언어정책의 전반적 방향을 제한적이고 폐쇄적인 표준어 중심에서 포용적이고 개방적인 공용어 정책으로 나아가야만 우리 한국어에 에너지가 넘쳐나고 그것이 지속적인 문화적 확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 지금 전세계가 K-컬쳐에 스며들고 있을 때, 얼마 전 최고의 시청율을 기록한 〈폭싹 속았수다〉처럼 우리 언어의 진수인 방언을 활성화한다면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정감 있는 문화에 더 깊은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교육에 대해서는 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맞춤법까지 바꾸자는 주장은 아니기 때문에  현재의 틀을 잘 유지하며 표준어만 ‘공통어’라는 이름으로 바꾸고, 그 공통어와 해당 지역어를 함께 사용하여 교육하면 된다. 공통어를 한민족 공용어의 공약수 정도로 생각해 교육에 활용하면 된다. 방언이 우리말에 넘실거리게 되면 자기가 나고 자란 지역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어 자기 지역에 대한 자부심도 커질 수 있다. 진정으로 지방화 시대를 열어가려면 경제적 지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결국 자기 지역에 대한 애착이 있어야 공부를 마치고 정주로 이어질 수 있다. 방언에 대한 자부심은 그 역할의 일부를 담당할 것이다. 

정리하자면 표준어 규정을 국가 행정 규칙에서 빼고, 국어 사용의 기본 범주를 한민족 공용어로 전환하며, 교육용으로는 기존의 표준어를 공통어로 바꾸어 활용하자고 제안한다. 그 많은 비용을 들여 표준어를 공통어로 바꾸는 것이 무엇이 중요하냐고 말할지 모르나 불과 20년 전에까지 사용하던 ‘애완동물’이라는 표현을 ‘반려동물’로 개념 전환을 하고 나니 개나 고양이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달라졌으며, 심지어 그 산업이 얼마나 번창하게 됐는지를 생각해 보라. 이는 미래지향적으로 ‘표준어’라는 용어를 폐지하는 것이 다소의 번거로움이 있더라도 향후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정체성과 한민족의 미래, 심지어 산업에까지 크나큰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 분명하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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