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교육위원회가 2기를 맞았다. 1기 성과를 돌아보면, 기대보다는 실망이 훨씬 크다. 정권 주기와 무관하게 교육의 백년지대계를 논의하자는 취지로 출범했지만, 1기 국교위는 정치적 갈등과 무력화 속에서 표류했다. 교육부와의 역할 충돌, 정치권의 과도한 개입, 전문위원회 운영 파행이 이어졌고, 중장기 계획 수립은 좌초됐다. 설립 당시 내세웠던 “교육정책의 국가 컨트롤타워”라는 위상은 빛이 바랬고, 국교위 무용론이 등장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구조적 한계에 있다. 국가교육위 법상 정당 추천 몫이 배정되어 있진 않지만 실질적으로 위원 선정에서 정당의 역할이 크다. 현행 체제는 정치적 균형을 의도했으나, 실제로는 정쟁의 ‘에코실(Echo Chamber)’이 되었다. 합의를 모색하기보다 진영 간 대립을 반복했고, 논의 테이블은 교육적 전문성보다 정치적 유불리에 좌우됐다. 특히 대입·학제 개편 등 주요 현안이 정치적 공방으로만 소비되면서, 국교위에 대한 현장의 신뢰는 급격히 떨어졌다.

따라서 2기의 성패는 결국 리더십에 달려 있다. 위원장은 단순한 조정자가 아니라, 위원회 절차의 신뢰성을 세우는 제도적 설계자가 되어야 한다. 회의 파행과 불투명성을 줄이고, 정책 권고가 정부의 입법·재정 조치와 유기적으로 연결되도록 만드는 것이 첫걸음이다. 다행히 차정인 위원장은 취임사에서 이러한 방향을 분명히 했다. 그는 “국교위 정상화”를 최우선 과제로 천명하며, 국민 신뢰 회복과 조직 확대, 인력 증원, 운영 방식 개편을 약속했다. 특히 그는 회의와 전문위원회를 원칙적으로 공개하고, 중요 결정은 생중계하며, 회의록도 충실히 공개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시점에서 일본의 중앙교육심의회는 귀중한 교훈을 제공한다. 1952년 출범한 이 기구는 70년 넘게 국가 교육정책의 중장기 방향을 제시해 왔다. 문부과학성이 발의한 정책은 반드시 심의회를 거쳐야 하며, 답신은 대학 구조조정, 학제 개편, 교원 양성, AI 인재 전략 등 핵심 정책에 직접 반영된다. 그 신뢰 비결은 세 가지다. 첫째, 정치로부터의 독립성이다. 정당 소속 정치인이 위원으로 참여할 수 없으며, 위원 임기는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보장된다. 둘째, 데이터 기반 전문성이다. 모든 답신은 전국 단위 조사와 국제 비교연구를 전제로 한다. 교원 정책 논의 과정에서 수천 명 교원 실태조사, 공청회, 퍼블릭 코멘트가 병행되었고, 약 3,000건의 시민 의견이 반영됐다. 셋째, 연속성이다. 5년 단위 교육진흥기본계획과 10년 주기 학습지도요령 개정은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이어지며, 교육정책의 수명을 세대 단위로 확장시켰다.

국교위 2기는 이 교훈을 반드시 적용해야 한다. 우선 위원 추천 구조를 바꿔야 한다. 여야 동수 추천은 정치적 대립만 재생산할 뿐이다. 정당의 역할을 대폭 줄이고, 교육 전문가와 현장 대표, 시민사회 인사를 균형 있게 포함시켜야 한다. 정치권 개입 차단 장치를 법제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둘째, 사무국에 정책 전문가·데이터 분석가·법률가 등 다학제 인력을 충원해야 하고, 주요 정책 심의 전에는 반드시 공청회와 퍼블릭 코멘트를 거쳐 현장의 목소리를 제도적으로 반영해야 한다. 더불어 ‘국가교육발전계획’(가칭)을 5~10년 단위 법정 계획으로 수립해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이행되도록 하고, 3~5년 단위 환류 체계를 마련해 연속성을 보장해야 한다.

2기 국가교육위원회는 지금 갈림길에 섰다. 여야 대립이라는 에코실 안에서 같은 정치 논리만 되풀이할 것인가, 아니면 벽을 허물고 교육 현장과 전문가, 시민의 다양한 목소리를 경청할 것인가. 70년 신뢰를 쌓은 일본 중앙교육심의회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정치로부터의 독립성, 데이터 기반 전문성, 세대를 잇는 연속성을 제도화하고, 수십 년간 실천하며 사회적 신뢰를 축적했다.

한국 국가교육위원회는 이제 출범 4년차다. 아직 늦지 않았다. 지금 구조를 개혁하면, 30년 후 다음 세대는 우리가 만든 제도적 유산을 물려받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의 에코실에 안주한다면, 국가교육위원회는 정권의 들러리이자 정치 공방의 무대로 전락할 것이다.

이제는 국가교육위원회가 정치의 메아리가 아닌 교육의 미래를 말해야 할 때다. 에코실의 벽을 허물고, 넓은 세상의 목소리를 들어라. 그것이 2기 국가교육위원회가 해야 할 첫 번째 일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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