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대·명지대·고려대 등 전국 주요 대학, AI 챗봇 도입 확산
서울여대, AI·인간 협업형 챗봇으로 신뢰·보안 문제 정면 돌파
전문가 “AI, 학생 성장까지 제안하는 조력자로 패러다임 변화”

사진=아이클릭아트
사진=아이클릭아트

[한국대학신문 김의진 기자] 국내 대학의 인공지능(AI) 혁신 경쟁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AI가 학생의 학습·진로를 돕는 조력자(Assistant)로 진화하는 단계까지 다다른 것이다. 전문가들은 대학의 디지털 전환 경쟁이 경험(Experience)의 영역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는 것이란 평가를 내놓는다.

14일 교육계에 따르면 최근 전국 주요 대학들이 생성형 AI를 활용한 학사상담 챗봇과 맞춤형 행정서비스를 잇달아 선보이며 AX(Assistant eXperience) 구현에 속도를 내고 있다. AI 챗봇을 도입하는 대학이 이미 20곳을 넘어섰고 이 가운데 상당수는 학사·입학·행정·연구 등 전 분야로 AI 기능을 확장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양대는 일찌감치 챗봇 시스템 ‘궁금하냥’을 도입해 학사일정·입학정보·공지사항 관련 상담을 자동화했다. 명지대도 ‘마루봇’을 통해 강의시간표·이수학점·도서관·셔틀버스 등 다양한 서비스를 학생 개인 맞춤형으로 제공하고 있다. 고려대는 서울 안암캠퍼스 학생들을 대상으로 식단·장학금·등록금·증명서 등 민원 상담에 특화된 챗봇 ‘쿠챗’을 운영 중이다.

박두홍 명지대 대학혁신지원사업운영팀장은 “학생이나 교직원 모두 24시간 열려 있는 캠퍼스 비서를 원하는 시대”라며 “이 같은 수요를 AI가 실질적으로 채워주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대학의 일상이 조용히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최근 서울여대의 행보가 교육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서울여대는 지난 13일 학생용 ‘슈리챗’과 교직원용 ‘유시챗’을 동시 공개하며 AX 캠퍼스 구현을 선언했다.

본지 취재에 따르면, 서울여대의 두 챗봇은 사람이 AI의 답변을 계속 다듬는, 일종의 공동작업 방식으로 운영된다. 학생·교직원이 질문하면 AI가 먼저 답변하고 내용이 틀리거나 부족하면 담당자가 다시 확인해 정확한 정보를 덧붙이는 식이다. 또 학과별 예외 규정이나 개인별 졸업 요건처럼 세부 조건이 복잡해 AI가 도저히 판단하기 어려운 질문은 관련 부서로 자동 전달된다. 담당자가 덧붙인 내용은 데이터베이스에 자동으로 저장되고 AI가 데이터를 학습해 같은 질문이 들어왔을 때 훨씬 더 정확하게 답할 수 있게 되는 구조다.

이지연 서울여대 대외협력팀장은 이날 본지와 통화에서 “AI가 혼자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함께 성장하는 시스템”이라며 “대학 현장에서 늘 지적되던 AI를 얼마나 믿을 수 있느냐는 문제를 정면으로 푼 것으로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팀장은 이어 “기존 챗봇의 가장 큰 약점은 환각(hallucination)이라 불리는 현상이었다. AI가 자신 있게 틀린 답을 내놓는 것”이라며 “이런 오류를 줄이기 위해 AI가 내놓는 답을 사람이 다시 검토하는 절차를 기본값으로 설정했다. 챗봇이 학칙·규정 등 문서를 근거로만 답을 만들도록 설계하고 불명확한 질문은 바로 담당 부서로 넘기도록 해 이른바 ‘아는 척’하는 AI를 막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안도 강화했다. 학생·교직원이 같은 챗봇 플랫폼을 쓰지만 정보 접근 범위를 완전히 분리하는 멀티-테넌시(Multi-tenancy) 구조를 적용했다. 서로의 데이터가 섞이지 않도록 일종의 벽을 세워둔 셈이다. 이 팀장은 “학생 개인정보가 교직원 영역으로 넘어가는 일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서울여대는 향후 챗봇을 개인 맞춤형 조력자로 점차 발전시켜 나간다는 계획이다. 현재는 학칙과 공지사항을 정확히 찾아주는 기능만 구현했지만 궁극적으론 학생의 전주기 데이터를 통합해 과목 추천, 진로 탐색, 상담 안내까지 도와주는 능동형 AI 조력자로 진화시키는 구상이다. 학생이 필요할 때 먼저 말을 걸어주는 AI 멘토로 발전시키겠다는 의미다.

■ AI, 학생의 공부 습관까지 분석… 교수는 ‘멘토’로 전환 = 전문가들은 이 같은 움직임을 AI 대학 행정의 2막이 열린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대학의 AI 경쟁이 누가 더 빠르고 편리한 챗봇을 만들었느냐보다 누가 더 인간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경험을 설계하느냐가 관건이 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박두홍 팀장은 “예전엔 학생이 궁금한 점을 문의하려면 부서를 옮겨 다니거나 전화로 연결돼야 하는 경우가 많았고 교직원도 반복적인 행정업무에 시간을 빼앗기는 일이 잦았다”며 “이제는 AI가 수업 일정과 과제 마감일을 자동으로 정리해주거나 진로 상담 일정을 추천하고 필요한 행정서류를 먼저 알려주는 수준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활동했던 김경진 전 의원도 본지 통화에서 “앞으로 대학에서의 AI는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의 공부 습관과 관심사를 분석해 나에게 맞는 학습 코스를 함께 설계해주는 단계로 발전할 것”이라며 “AI가 ‘이 학생이 어떤 방식으로 배우면 더 성장할 수 있는가’를 제안하는 시대가 오는 셈”이라고 강조했다.

김 의원은 이어 “교수들이 지금은 행정이나 반복적인 수업 관리에 많은 시간을 쓰지만 AI가 일정 관리와 기본 안내를 대신하면 교수는 학생의 생각을 깊이 있게 이끌어주는 멘토 역할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며 “기술이 사람을 대체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사람을 더 사람답게 만드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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