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기정통부, 18년 만에 인증제 폐지… 선정제로 전환
대학 현장선 “감독 빠진 자율은 방임… 책임 불분명”
전문가들 “교육부·과기정통부 통합 점검 체계 시급해”
[한국대학신문 김의진 기자]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가 기존의 ‘안전관리 우수연구실 인증제’를 폐지하는 대신 기관을 선정해 혜택을 부여하는 방식의 ‘선정제’를 도입한다. 이로써 실험실 안전관리 제도는 18년 만에 큰 변화를 맞게 됐다. 현장에선 규제 완화와 행정 부담 경감을 기대한다는 목소리와 안전관리 책임이 흐려질 것이란 우려가 동시에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인증제·선정제 등 유무보다는 제도를 뒷받침할 감독과 책임이 명확히 세워질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16일 교육계에 따르면 과기정통부가 입법 예고한 ‘연구실 안전환경 조성에 관한 법률’ 개정으로 지난 2007년부터 운영해 온 우수연구실 인증제가 약 18년 만에 전면 폐지된다. 이를 대신해 일정 기준을 충족한 연구실을 선정해 지원하는 방식으로 바뀐다. 인증 절차를 없애 행정 부담을 줄이고 우수사례 중심의 자율적 안전문화를 확산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대학 연구 현장에선 이번 개편을 두고 감독 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여전히 높은 상황이다. 인증제가 사라져 외부 점검의 근거도 함께 사라지게 됐다는 이유에서다.
국립대 사무국에서 실험실 안전관리를 담당하는 A씨는 이날 본지와 통화에서 “실험실 안전인증을 받으려면 서류만 수십 장이고 외부 심사를 위해 컨설팅비나 심사비용으로 수천만 원이 나간다”면서도 “그래도 그동안은 외부 전문가가 정기적으로 점검해준다는 게 마음의 위안이 됐다. 적어도 누군가 연구실을 한 번쯤은 들여다본다는 안도감이 있었는데 이제는 이조차 사라질까 두려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인증제가 없어졌기 때문에 사고가 나더라도 누가 점검을 안 했는지,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 따지는 일조차 어려워질 것”이라며 “결국 모든 책임이 대학 본부로 돌아오지 않겠느냐”고 우려했다.
본지가 문정복 더불어민주당 의원실로부터 제공받은 한국교육시설안전원 자료를 보면 최근 3년간 대학 내 연구실 사고는 총 608건, 부상자 607명, 사망자 1명으로 집계됐다. 한 해에만 평균 200명 이상이 실험 중 부상을 입은 셈이다. 특히 사고는 4월에 집중되는 경향이 뚜렷했다. 올해 4월 44명이 다친 것을 비롯해 2023년 33명, 2024년 32명 등도 모두 같은 달에 부상을 당했다.
A씨는 “신입생들이 처음 실험을 배우는 시기이다 보니 안전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3~4월은 대학 실험실이 가장 분주한 때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 실험기기 사용법이나 화학물질 취급 교육, 사고 대응 절차도 충분히 배우지 못한 상태에서 실험이 진행되다 보니 작은 부주의도 사고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연세대에서 실험 조교로 경험이 있는 B씨도 통화에서 “장갑을 끼지 않고 시약을 옮기거나 불이 붙은 알코올램프를 그대로 두고 자리를 비우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기본적인 안전교육이 끝나기도 전에 실험부터 하는 일정 탓에 늘 불안하다”고 말했다.
대학 현장 일각에선 감독 대신 자율에 맡기면 사고가 오히려 더 늘 것이란 목소리도 나온다.
경기도의 한 사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본지에 “현행법으로는 모든 실험실에 안전관리자를 두게 돼 있지만 실제로는 이름만 올려놓은 경우가 많다. 대부분 교수나 조교 한 명이 겸직 형태로 지정돼 있는데 결국 누가 실제로 현장을 살피는지 빠져 있는 것”이라며 “실험 단계마다 안전을 점검하고 문제가 생기면 즉시 중단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람이 정해져 있어야 사고를 막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현재는 시스템이 없기 때문에 위험한 상황을 보아도 이걸 멈춰야 할 사람이 불분명한 경우가 많은 것”이라며 “인증제가 폐지되고 선정제가 도입되면서 실험실 안전이 실제 개선보다는 좋은 사례를 홍보하는 수준에 머물 위험도 있다. 겉으로는 깔끔해 보여도 정작 현장 안전은 더 취약해질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익명을 요구한 교육부 관계자 C씨도 “인증제는 대학 밖의 사람이 연구실을 직접 살펴본다는 측면의 취지도 있었던 제도였다”며 “외부 전문가가 와서 실험실을 점검하고 위험 요소를 객관적으로 지적해주는 외부의 눈이 작동했기 때문에 현장에서도 긴장감을 가지고 대비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인증제가 폐지됐기 때문에 대학 스스로 알아서 관리해야 하는 내부 자율만 남은 것”이라며 “하지만 현실은 대학들이 대부분 인력도 부족하고 안전관리 전담 인력조차 한두 명이 모든 실험실을 맡는 경우가 많다. 사실상 셀프 안전관리가 된 셈인데 결국 사고가 나야만 문제를 인식하는 구조로 돌아갈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본지 취재에 따르면, 실제로 전국 4년제 대학 중 안전관리 전담 인력을 5명 이상 확보한 곳은 서울대(7명)와 경북대(5명) 등 단 2개교에 불과했다. 대부분 대학에선 사실상 1~2명 수준의 전담 인력으로 수십 개에서 많게는 수백 개의 실험실을 관리한다는 의미다.
A씨는 “인력이 이렇게 얇으면 한 사람이 여러 건물을 오가며 순회 점검을 할 수밖에 없고 여기에서 빈틈이 생기기 쉽다”며 “특히 새 학기처럼 실험실 이용자가 급격히 늘어나는 시기에는 모든 실험실을 제시간에 다 본다는 것 자체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외부 점검이라도 있어야 기본이 지켜진다는 말이 현장에서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라며 “(인증제 폐지, 선정제 도입은) 부족한 인력 시스템으로 안전을 끝까지 책임지라는 건데 너무 무리한 요구”라고 지적했다.
반면 정부는 이번 개편이 최근 몇 년간 추진해온 규제 완화 기조의 연장선에 있다는 입장이다. 불필요한 인증 절차와 서류 부담을 줄여 현장 연구자들이 본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인증제는 매년 반복되는 서류 심사와 현장평가로 연구자들의 부담이 컸었다”며 “선정제는 실적이 우수한 연구실에 혜택을 부여하고 다른 기관이 이를 참고할 수 있도록 하는 자율적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실제 현장에서 점검이 작동하도록 제도를 보완해 다시 설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특히 모든 연구실이 일정 주기의 외부 점검을 의무화하고 교육부·과기정통부가 각자 운영하던 시스템을 통합해 공동 점검 체계를 만드는 게 필요하단 주장이다.
C씨는 “두 부처가 역할을 나눠 가진 채로 운영돼 오면서 사고가 터질 때마다 누가 관리했느냐를 놓고 책임 공방이 반복됐다. 교육부는 과기부 소관 법령에 따른 사고라고 하고 과기정통부는 대학 관리 체계는 교육부 소관이라고 답하는 식”이라며 “어느 쪽도 현장을 직접 점검하거나 제재할 권한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 사고 이후에도 재발 방지 대책이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교육부 고위공무원 출신 대학 관계자 D씨도 “두 부처가 각자 보고서를 내고 각자 통계를 관리하니 사고 원인조차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며 “실험실 안전은 두 부처의 안전관리 체계를 통합해 공동 점검 체계를 만들고 하나의 시스템으로 움직여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