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희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사무총장

이경희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사무총장
이경희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사무총장

한국의 고등교육은 지금 거대한 변곡점에 서 있다.

급격한 학령 인구 감소는 대학의 존립 기반을 흔들고 있으며, 17년간 이어진 등록금 동결은 교육과 연구의 질적 투자를 제약해 왔다. 또한 수도권 집중으로 인한 지역 대학의 위축은 단순한 교육 문제가 아니라 국가 균형발전의 근간을 흔드는 사회적 과제가 되고 있다. 여기에 인공지능(AI)과 디지털 전환의 가속화, 글로벌 인재 유치 경쟁의 심화 등 대내외 환경 변화는 고등교육의 체질 개선과 혁신을 절실히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이재명 정부가 고등교육 정책 기조를 ‘국가 책임 강화’로 전환한 것은 매우 시의적절하다. 대학의 자율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들에 대해, 정부가 제도적·재정적 책임을 강화하겠다는 방향은 고등교육계가 오랫동안 기다려 온 변화다. 특히 고등교육 재정 확충, 지역 인재 육성을 통한 국가 균형발전, AI 3대 강국 도약과 디지털 인프라 고도화 등은 향후 국가 경쟁력의 핵심 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고등교육 재정 확충 : 지속가능한 경쟁력의 출발점

우리 대학이 직면한 가장 큰 위기는 불안정한 재정 구조다. 2022년 OECD 기준 한국의 고등교육 학생 1인당 공교육비는 1만 4695달러로, OECD 평균(2만 1444달러)의 68.5% 수준에 불과하다. 또한 대부분의 대학의 등록금 의존율은 여전히 높아 대학 재정의 취약성이 국가 경쟁력 저하로 직결되고 있다.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고등평생교육지원특별회계의 일몰 연장(5년)과 정부의 획기적인 재정 확충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 국가 차원의 중장기 고등교육 재정 로드맵을 마련해 안정적인 고등교육 재정 지원을 제도화해야 한다. 또한 등록금 정책 역시 사회적 비용, 대학 책무, 학생 부담을 함께 고려한 사회적 합의를 거쳐 재설계되어야 한다. 고등교육에 대한 투자는 단순한 지출이 아니라 미래 세대를 위한 국가적 투자이며, 이는 결국 국가의 성장 잠재력을 확충하는 길이다.

국가 균형발전을 위한 지방 거점대학 육성

수도권 집중 현상은 지방 대학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지역 일자리 감소·청년 유출·지역 소멸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낳고 있다. 대학은 지역 사회의 지식·문화·산업 생태계를 떠받치는 핵심 인프라다. 이재명 정부가 추진 중인 ‘지방 거점대학 육성 정책(서울대 10개 만들기)’은 이러한 구조적 불균형을 바로잡을 수 있는 중대한 계기다. 지방 대학은 단순히 ‘지방에 있는 대학’이 아니라 국가 균형발전을 이끄는 전략 자산이다.

정부는 지역의 산업 특성과 인구 구조를 고려한 맞춤형 지원 정책을 통해 대학과 지역이 함께 성장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지역 산업과 연계한 인재 양성, 지자체 협력 기반의 혁신 생태계 조성, 지역 문화와 역사적 자산을 활용한 교육·연구 강화 등 ‘지역 특화형 대학 모델’의 구축이 그 핵심이다. 지방 거점대학의 경쟁력 강화는 지역의 자립과 청년의 정착으로 이어지고, 이는 결국 국가 전체의 균형발전으로 귀결된다.

AI 3대 강국 도약과 디지털 인프라 고도화

ChatGPT 등 생성형 AI의 확산은 산업과 사회 전반에 혁명적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이에 따라 대학에서의 AI 역량 강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이재명 정부가 제시한 ‘AI 3대 강국’ 및 ‘소버린 AI’ 목표는 대학 혁신의 촉매가 되어야 한다. 대학은 교육·연구·산학 협력 전반을 디지털 중심으로 재편하고, 전공과 교양 교육 전반에 AI·데이터 기초 과목을 확대해야 한다. 아울러 교수법의 디지털 전환, AI 기반 학습 지원 시스템 구축, 산업계와의 실전형 연계 교육 등으로 실질적 AI 역량을 키워야 한다. 특히 AI 교육의 표준과 평가 체계를 확립하여 ‘AI 핵심 기술을 연구·개발할 수 있는 인재’와 ‘AI를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실무형 인재’를 함께 양성해야 한다. 이러한 기반이 갖춰질 때, ‘AI 3대 강국 도약과 디지털 인프라 고도화’는 구호를 넘어 현실적 국가 전략으로 완성될 것이다.

고등교육을 국가 전략의 중심으로 다시 세우는 일은 선택이 아니라 필연이다.

대학이 바뀌면 국가가 바뀐다. 이제는 대학을 단순한 교육 기관이 아니라, 국가 혁신을 이끄는 전략 거점으로 인식해야 한다. 고등교육에 대한 투자는 곧 사람에 대한 투자이자,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한 투자다. 지금이 바로 고등교육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혁신해 국가 경쟁력의 패러다임을 새롭게 구축할 시간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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