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성문 연세대 법무팀장
지난 6월 행정안전부는 「민원인의 위법행위 및 반복 민원 대응 방안」을 마련해 전국 공공기관에 배포했다. 위법한 공무방해행위로부터 민원 담당자를 보호하고, 공정한 민원 처리 문화를 확립하겠다는 취지다. 수많은 대학 교직원들이 악성 민원으로 어려움을 겪는 현실에서 이번 조치는 가뭄의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 민원 서비스에 대한 불만이 남아 있지만, 동시에 담당자들의 정신적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점에서 제도적 대응은 시급한 과제다.
최근 대학 내 구성원들의 권리 의식이 높아지고, 행정의 투명성과 책임성이 강조되면서 대학 민원 행정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과거 민원 업무가 단순히 ‘불만 접수’나 ‘고충 처리’에 머물렀다면, 오늘날의 대학 민원은 구성원의 의견을 제도 개선으로 연결하고, 행정 신뢰를 높이는 핵심 기능으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학내 다양성과 이해관계가 복잡해지면서 민원 행정은 단순 응대 차원을 넘어 대학 운영의 질을 결정짓는 중요한 행정 영역으로 발전하고 있다.
대표적인 민원 행정 중 하나인 정보공개법은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제도지만, 시행 25년이 지난 지금 그 부작용도 함께 드러나고 있다. 대학 역시 공공기관으로서 이 법을 성실히 이행하며 투명경영을 실천하고 있다. 다만 정보공개 청구의 진입 장벽이 낮다 보니 무분별한 청구나 반복적인 자료 요구가 빈번하다. 동일한 내용의 청구가 여러 번 반복되거나, 방대한 자료를 단기간에 요구하는 사례도 있다. 이는 담당자의 업무 과중뿐 아니라 다른 행정 서비스의 지연으로 이어진다. 정보공개제도의 본래 취지인 공익적 기능이 왜곡되는 셈이다.
국민신문고 역시 마찬가지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운영하는 이 시스템은 국민제안과 청원 등 긍정적인 역할을 해왔지만, 대학 현장에서는 일부 이용자의 과도한 민원 제기로 행정 부담이 누적되고 있다. 단순 시설 보수나 생활 편의 관련 민원까지도 중앙 포털로 접수되면서 처리 절차가 복잡해지고, 현장의 자율적 문제 해결 기능은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 특히 특정 부서나 교직원을 대상으로 한 인신공격성·보복성 민원은 담당자들의 심리적 피로를 가중시키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과 민원처리법은 폭언·폭행 등으로부터 근로자를 보호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실제로 대학 행정 현장에서 이 제도가 체계적으로 작동하는 경우는 드물다. 악성 민원은 사전 차단이 어렵고, 민원에 대한 소극적 대응이 곧 직무 유기로 오인될 수 있는 위험도 존재한다. 대부분의 대학에서 민원은 사건이 발생한 뒤에야 대응하는 구조로, 문제의 예방보다는 진화(鎭火)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제 대학은 민원을 ‘위기’가 아닌 ‘소통의 기회’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구성원의 불편과 요구를 사전에 파악하고, 이를 제도 개선으로 연결하는 선제적 행정으로 전환해야 한다.
대학 민원 행정의 전문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전담 조직의 역량 강화가 필수적이다. 단순한 접수·처리 기능에서 벗어나 윤리·인권·법무와 연계된 통합적 행정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예를 들어 민원 사안 중에는 인권침해나 법적 분쟁으로 확대될 소지가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조기에 식별하고 관련 부서와 협력할 수 있는 체계적 시스템이 요구된다. 나아가 구성원 교육을 통해 민원 절차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소통 문화를 확산시키는 것도 대학의 책무라 할 수 있다. 대학 민원은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라, 구성원의 신뢰를 구축하는 ‘거버넌스의 척도’다. 대학이 구성원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이를 정책과 제도에 반영하는 순환 구조를 확립할 때, 진정한 의미의 ‘열린 행정’이 가능하다. 대학이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민원 행정을 행정의 말단이 아닌 ‘대학 혁신의 출발점’으로 인식하는 전환이 필요하다.
이제 대학 민원 행정은 ‘공정한 서비스 제공’과 ‘담당자 보호’라는 두 축을 균형 있게 운영해야 한다. 공익 목적이 아닌 정보공개 청구에는 행정비용을 실비로 부과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고, 단순 민원은 국민신문고보다 대학 자체 플랫폼에서 처리되도록 시스템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악성 민원으로 인한 정신적 피해에 대한 상담 지원, 법률적 대응 체계 마련 등 실질적인 보호 장치도 요구된다. 최근 일부 대학에서 민원 응대 전화의 녹음 기능을 확대 도입하고, 교직원 대상 법률 지원 제도를 검토하기 시작한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대학 구성원을 보호하는 체계가 마련될 때, 행정 서비스의 품질도 함께 향상될 것이기에 대학의 민원 행정이 단순한 대응 차원을 넘어, 구성원을 지키는 조직문화로 발전하기를 기대한다.
<한국대학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