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창고마다 버려지는 의자 수백 개 “등록금이 함께 사라지는 셈”
강남도서관서 76% 예산 절감… 동국대 한의대서 리페어 철학 실현
[한국대학신문 김의진 기자] “대학 창고를 가보면 아직 멀쩡한 의자들이 쌓여 있어요. 프레임은 멀정하고 바퀴나 천만 조금 낡은 경우가 많죠. 저는 그게 늘 안타까웠어요. 수리만 하면 충분히 쓸 수 있는데 그냥 버려요. 결국 학생들의 등록금이 함께 버려지는 것이잖아요.”
‘의자의 여왕’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최윤영 퍼메이드앤아이디 대표는 3일 본지와 인터뷰에서 그의 눈에는 오래된 의자도 다시 살아날 수 있는 자원으로 보인다며 이같이 말했다.
퍼메이드앤아이디는 오래된 의자를 다시 살리는 기술로 공공기관과 대학의 주목을 받고 있다. ‘리페어(Repair) 솔루션’은 새로 사지 않고 고쳐서 새것처럼 쓰는 서비스다. 수리 과정에서 나오는 폐기물도 최소화하기 때문에 환경에도 부담이 적다. 실제로 서울 강남도서관에서 퍼메이드앤아이디의 리페어 방식을 적용한 결과 예산의 76%를 절감하면서도 새 제품과 다를 바 없는 품질에 이용객들의 높은 만족도도 입증했다.
최 대표는 “한마디로 새로 사는 대신 고쳐 쓰는 게 이득이라는 걸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를 계기로 대학에서도 리페어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확신하게 됐다”며 “버려지는 의자를 줄이면 예산을 아끼고 환경도 지킬 수 있다. 대학이 ESG 경영을 실천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지난 2월 동국대 한의과대학의 교육환경 개선 프로젝트를 통해 리페어 철학을 실천에 옮기기도 했다. 17년 된 국가고시 준비실의 낡은 의자 102개를 리페어해 새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그는 낡은 부품만 선별해 교체하고 나머지는 재활용했다. 프로젝트에는 102명의 동문이 참여해 1364만 원을 기부했고 각 의자에는 동문 이름과 후배들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담긴 명패가 붙었다.
“‘힘내라 후배야’ ‘너의 자리가 곧 너의 무대다’. 후배가 앉을 때마다 선배의 마음이 전해지길 바랐죠. 이게 제가 생각하는 진짜 리페어예요. 사람과 세대를 잇는 일이죠.”
새로 설치된 의자들은 모두 장시간 학습에 최적화된 인체공학적 구조로 만들어졌다. 통기성이 좋은 메쉬 소재, 허리를 받쳐주는 요추 지지대, 앞뒤 바퀴의 균형 잡힌 설계로 학생들이 좀 더 편안하게 앉을 수 있게 했다.
“대학은 사실 공공기관보다 훨씬 더 많은 가구와 기자재를 가지고 있어요. 강의실과 연구실, 도서관, 기숙사까지 생각해보세요. 수천 개의 의자와 책상, 장비들이 캠퍼스 곳곳에 있죠. 문제는 멀쩡한 물건들이 한 번 고장이 나거나 낡으면 대부분 그냥 버려진다는 거예요.”
최 대표는 “학생들이 낸 등록금으로 산 물건들이라면 마지막까지 가치를 다 쓰는 게 맞지 않냐. 그래서 저는 이걸 등록금 낭비라고 생각했다”며 “대학이 리페어를 실천하면 자연스럽게 ESG 가치가 녹아들 것이다. 리페어는 대학이 자원을 절약하고 탄소 배출을 줄이는 교육의 실천”이라고 강조했다.
최 대표는 옆에 놓인 의자 하나를 가리켰다. 검은색 사무용 의자였다. 자세히 보니 왼쪽 팔걸이가 살짝 닳아 있었고 시트와 등받이는 새로 교체된 듯 반들반들했다.
“이 의자도 사실 버려질 뻔했어요. 도서관에서 쓰던 건데 가스봉이랑 바퀴만 교체했죠. 새로 사면 40만 원이지만 고치는 데 10만 원이면 충분했어요. 버리지 않으니 폐기물도 안 생기고요. 이게 순환경제예요.”
그는 손으로 의자의 등받이를 살짝 눌러 보였다. 의자는 새것처럼 부드럽게 뒤로 기울이며 탄력을 유지했다.
“의자는 하루종일 사람의 몸을 받쳐주는 존재잖아요. 조금 낡았다고 바로 버려지는 건 너무 아깝죠. 고쳐 쓰면 여전히 쓸모가 있어요. 사람도 그렇잖아요. 조금 상처나 흠이 있어도 고치고 다시 살아갈 수 있는 거예요.”
최 대표의 이력은 독특하다. 중앙대에서 무용을 전공한 현대무용가 출신이다. 그는 20년 넘게 현대무용 강사로 활동하며 무대 위에서 수많은 학생을 가르쳤다. 매일같이 균형과 중심을 이야기하던 그에게 어느 날 예상치 못한 일이 찾아왔다. 허리 디스크였다.
“몸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통증이 오니까 내 몸이 얼마나 불균형했는지 깨닫게 되더라고요.”
그는 재활을 위해 요가와 필라테스를 배우기 시작했다. 몸의 구조와 자세, 균형의 과학을 새롭게 공부하는 과정이었다. 자연스럽게 일상의 또 다른 균형인 앉는 자세와 의자로 관심이 옮겨갔다.
“무용은 몸의 중심을 찾는 예술이에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사람들 대부분은 하루의 절반을 의자 위에서 보내잖아요. 앉는 자세가 무너지면 몸 전체의 균형이 깨져요. 그래서 저는 사람을 위한 의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의자를 고치는 일은 사람의 몸을 회복시키는 일과 비슷해요.”
그는 리페어 산업에 뛰어든 이유를 철학의 실천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리페어는 철학”이라며 “이미 존재하는 걸 더 잘 쓰는 것, 이게 진짜 혁신이다. 완벽한 새것보다 오래된 것의 가치를 다시 발견하는 게 훨씬 의미 있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기회가 된다면 대학에서 학생들과 함께하는 일도 해보고 싶다고 했다. 디자인학과·산업공학과 학생들이 의자를 분해하고 낡은 부품을 교체하며 순환경제의 원리를 배우는 수업이다.
“책으로만 탄소 저감이나 ESG를 배우면 잘 와닿지 않아요. 직접 손으로 배우는 ESG가 훨씬 강력해요. 부품을 교체하고 고쳐보면 ‘이게 자원을 아끼는 일이구나’ 하고 몸으로 느끼죠.”
그는 “버려질 의자를 다시 살리는 경험을 해본 학생은 이후 어떤 물건도 함부로 버리지 못한다”며 “이런 마음이 대학이 줄 수 있는 가장 큰 배움”이라고 말했다.
“저는 새로 만드는 일을 하지 않아요. 이미 만들어진 걸 다시 살리는 일을 하죠. 사람들은 뭔가가 낡으면 버리려고 해요. 대학도, 사회도 마찬가지예요. 그런데 진짜 혁신은 새로 만드는 게 아니에요. 고쳐서 다시 쓰는 게 더 중요할 때가 있거든요. 이미 있는 걸 다르게 바라보고 다시 빛나게 하는 것, 저는 이게 진짜 혁신이라고 생각해요.”
그의 말투는 조용했지만 단단했다. ‘버리지 않고 다시 살리는 것’이란 그의 철학은 현재 우리 대학이 실천해야 할 혁신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