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영 동국대 미래융합교육원 대우교수

정재영 동국대 미래융합교육원 대우교수
정재영 동국대 미래융합교육원 대우교수

최근 학교도서관진흥법 일부 개정안이 발의됐다. 여기에는 시·도 교육청에 순회사서를 배치해 관할 지역 내 학교 도서관을 순회하며 자료 관리와 업무 협력 등을 수행하도록 지원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번 개정안은 예산 부족으로 인한 사서교사 인력난이라는 문제와 디지털 시대에 필요한 학생들의 역량 강화라는 과제를 동시에 해결하기 위해 제안됐다. 각 교육지원청에서 디지털 역량을 갖춘 사서를 채용해 학교도서관을 순회하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순회사서의 배치는 학교도서관 개선을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학교도서관 개선에 진정한 의지가 있다면 사서교사를 정규 인력으로 배치할 수 있도록 예산을 확보하는 것이 우선이다. 또한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학생 역량 강화를 원한다면 기존 사서의 역량을 높일 수 있도록 교육을 제공하거나, 디지털 역량을 갖춘 사서를 추가로 배치해 협업하는 방식이 더 효과적이다. 무엇보다 순회사서는 도서관에 상주하지 않기 때문에 지속적인 교육과 학생 지원이 어렵다. 따라서 디지털 역량 강화라는 목적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현장 사서들의 항의가 이어지자 해당 법안을 대표 발의한 김병기 의원실은 “학생 수 감소로 어려움을 겪는 학교 현실 속에서 학교도서관을 어떻게 유지·운영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의 결과”라고 설명했다. 이어 “열악한 지방 도시에도 디지털 역량을 갖춘 사서를 추가 배치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려는 시도”라고 덧붙였다.

법안의 제안 이유에는 디지털 역량을 갖춘 순회사서를 통해 디지털 시대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취지가 담겼지만, 실제로는 학교도서관에 사서를 배치해야 하는 현행법상의 학교 측 부담을 완화하려는 목적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순회사서 제도는 학교 당국이 사서교사 배치 의무를 면피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크다.

이와 유사한 문제는 대학도서관진흥법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대학도서관 사서 배치 기준이 ‘최소기준’으로 제시되다 보니, 이를 ‘적정기준’으로 오해하거나 악용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전국 사립대학교 도서관의 약 85%가 사서 3명만으로도 기준을 충족하게 된다. 즉, 사서 인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자는 취지로 마련된 법이 오히려 인력 축소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변질되고 있다. 실제로 법 제정 이후 전국 대학도서관의 사서 수가 감소하는 등 부정적인 영향이 나타나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존재한다.

교육부는 대학도서관진흥법 제정이 열악한 대학을 지원하기 위한 취지였으며, 최소기준이 적정기준으로 오해되는 현상은 시행령을 잘못 해석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시행령에 대한 해석의 문제가 아니라, 법조문 자체가 문제의 근원임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처음부터 사서 수 산출 기준과 배치 기준을 현실에 맞게 설정하는 동시에 지방의 중·소규모 대학, 사이버 대학, 대학원 대학 등 특수 목적 대학의 여건을 고려해 이들을 위한 별도 기준을 마련했어야 한다.

지금과 같은 초디지털 시대에는 사서 수와 같은 양적 기준도 필요하지만, 데이터 분석과 인공지능(AI)을 비롯한 첨단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사서에 대한 질적 기준 역시 중요하다. 대학의 연구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전문사서를 어떻게 양성하고 역량을 펼치도록 할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런데도 양적 기준에 대한 불필요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는 현실은 매우 안타깝다.

본래 대학도서관진흥법은 열악한 대학도서관의 상황을 개선하겠다는 취지로 제정됐지만, 대학 당국이 주장하는 자율성 침해와 규제 완화라는 명분 아래 그 목적이 변질돼 가고 있다. 법은 시대의 변화와 적용 이후 나타난 문제점 개선을 위해 개정돼야 한다. 처음 법을 만들 때의 명분과 목표까지 바뀌거나 변해서는 안된다. 따라서 대학도서관진흥법의 개정 방향은 대학 당국의 요구를 수용하는 데 초점을 맞추기보다, 열악한 대학도서관의 현실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방향으로 설정돼야 한다. 이 법은 ‘대학진흥법’이 아니라 ‘대학도서관진흥법’이라는 점을 다시금 상기할 필요가 있다.

최근 대학도서관진흥법 시행령 개정 방향을 마련하기 위한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라는 소식이 들린다. 이번 과정을 통해 학교도서관진흥법은 물론 국내 모든 진흥법의 모범 사례가 될 수 있도록 대학도서관의 혁신과 발전을 위한 진정한 진흥 방안이 제시되기를 기대한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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