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은영 유한대 총장

장은영 유한대 총장.
장은영 유한대 총장.

“인류는 지금, 지능의 주권을 재정의하는 문턱에 서 있다.”

인공지능(AI)의 등장은 산업 구조를 바꾸는 기술 혁신을 넘어, 인간의 학습과 사고방식 자체를 다시 쓰고 있다. 대학은 여전히 ‘배움의 최후 보루’로 남을 수 있을까. 아니면 알고리즘이 지식을 공급하고 평가하는 시대에 존재 이유를 잃게 될까.

AI는 이미 교육의 구조를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 지식의 전유물이던 교수가 더 이상 유일한 지식의 전달자가 아니며, 학생들은 챗지피티(ChatGPT)와 같은 생성형 AI를 통해 언제 어디서나 즉각적인 피드백을 받는다. 학습의 중심은 이제 ‘무엇을 아는가(knowledge)’에서 ‘무엇을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는가(understanding)’로 이동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인간답게 사고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어디까지 지켜낼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 도전이다.

AI가 대학을 흔드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교수법의 근본적 재구성이다. AI가 강의 자료를 자동으로 생성하고, 학습자에게 맞춤형 학습 경로를 제시하는 시대에 일방적 강의는 설 자리를 잃었다. 미래의 교수는 단순한 지식 전달자가 아니라, 학습자와 AI가 함께 탐구의 여정을 설계하는 조력자가 돼야 한다. 교수의 경쟁력은 콘텐츠가 아니라 그 맥락(context)과 해석력(interpretation)에 달려 있다. 즉, 교수의 역할은 ‘지식을 가르치는 사람’에서 ‘지식의 의미를 해석하고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사람’으로 진화해야 한다.

둘째, 학위의 가치가 흔들리고 있다. 산업계는 이미 AI 활용 능력을 새로운 디지털 문해력(digital literacy)으로 간주하고 있으며, 전공보다 문제 해결력과 협업 능력을 중시한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선도 기관들이 학위보다 역량 기반 평가(competency-based evaluation)를 채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학이 여전히 학점과 이수 시간을 중심으로 한 평가 체계를 고수한다면, 머지않아 사회적 신뢰를 잃게 될 것이다. 대학의 본질적 경쟁력은 ‘얼마나 많은 지식을 가르쳤는가’가 아니라, ‘학생이 실제로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에 있다.

셋째, 인간적 가치의 재발견이다. AI가 지식을 대체할수록 인간 고유의 감성과 윤리, 상상력은 더욱 중요해진다. 역설적이게도 AI 시대의 대학이 가장 강조해야 할 가치는 기술이 아니라 ‘휴머니티(humanity)’이다. 교육의 목표는 기술적 효율이 아니라 사람의 성장에 있어야 한다. 대학은 인간의 존엄과 책임, 타인에 대한 공감과 같은 근본적 가치를 다시 회복해야 한다.

그렇다면 AI 시대에 살아남는 대학의 조건은 무엇인가. 단순히 디지털화나 기술 도입을 잘하는 대학이 아니라, 인간의 의미를 재해석하는 지적 실험실로 진화한 대학이 미래를 열 수 있다. 대학의 역할은 기술을 흡수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술의 방향을 성찰하고 인간 중심의 교육을 설계하는 데 있다.

첫째, AI 기반 맞춤형 학습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학문 간 경계를 허무는 모듈형 교육과 학생 데이터 기반의 개인화 학습 설계는 필수적이다. AI 튜터, AI 코치, AI 어드바이저가 학습자의 패턴을 분석하고 최적의 학습 경로를 제안하는 시대는 이미 도래했다. 대학은 이를 활용해 학생의 학습 데이터를 분석하고, 개인의 역량에 맞춘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 단순한 지식 주입이 아니라, 학습자의 사고력·창의력·윤리적 판단을 함께 성장시키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둘째, 산학의 경계를 넘어선 ‘지식 공동체’를 구축해야 한다. 대학은 더 이상 고립된 지식의 섬이 아니라, 산업과 지역사회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협력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AI를 활용한 지역문제 해결, 기업 데이터 인턴십, 글로벌 원격 공동연구 등은 대학이 사회와 상호작용하며 지속 가능한 플랫폼으로 남는 방법이다. 교육과 연구가 지역과 산업으로 확장될 때, 대학은 사회 변화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셋째, 휴머니티와 기술의 융합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AI 시대의 진정한 경쟁력은 기술보다 ‘의미를 묻는 능력’이다. 대학은 인문학적 성찰을 기반으로 기술의 윤리와 방향을 탐구해야 한다. 문학, 철학, 예술, 역사 등의 인문소양교육이 다시 교양교육의 중심이 돼야 한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의 감성과 공감력, 창의적 사고가 더욱 절실해지기 때문이다.

AI 대전환은 대학에 위기이자 기회다. 대학이 기술을 두려워하지 않고, 기술과 인간 교육을 동시에 설계하며, 구성원과 사회가 공감할 수 있는 혁신적 전략을 실행할 때만 미래에도 살아남을 수 있다. AI가 세상을 바꿀 때, 대학은 사람을 바꾸는 힘으로 그 변화에 응답해야 한다.

결국, 미래 대학의 존재 이유는 ‘사람을 성장시키는 힘’에 있다. 기술이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기술을 통해 더 깊이 사고하고, 더 넓게 세상을 이해하도록 돕는 것, 그것이 AI 시대 대학이 가야 할 길이다. 대학이 이 방향을 잃지 않는다면, AI는 위협이 아니라 새로운 ‘사람다움의 촉매’로 활용될 것이다.

교육은 결국 사람을 위한 것이며, 그 본질은 세대와 기술을 넘어 변하지 않는다. AI가 만든 미래 사회 속에서도, 대학은 여전히 인간의 존엄과 가능성을 확장하는 가장 인간적인 공간이어야 한다. 학생이 스스로의 한계를 발견하고, 도전하며, 더 나은 인간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일—그것이야말로 AI가 결코 대신할 수 없는 대학의 사명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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