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대학들이 인공지능(AI)이라는 거대한 물결 앞에서 근본적인 체질 전환을 요구받고 있다. AI는 더 이상 학습 효율을 높이는 보조 기술이 아니라, 교육의 내용과 방식, 대학의 운영 원리, 그리고 존재 이유까지 재정의하는 ‘패러다임 전환의 동력’으로 자리 잡았다.
이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는 대학은 단순히 경쟁력을 잃는 수준을 넘어, 존립의 근거를 잃게 될 것이다. 그러나 국내 대학의 AI 기반 혁신은 구호에 그치고 있다. 몇 해 전부터 ‘AX(Academic Transformation)’라는 용어가 유행처럼 쓰이고 있지만, 실제로는 교육과정 일부 개편이나 디지털 교과서 도입 수준에 머물러 있다. AI 학습데이터 분석, 교수학습 혁신, 데이터 기반 평가체계 등 핵심 인프라는 아직 작동하지 않는다. 혁신의 방향은 옳지만, 실행의 깊이와 구조의 일관성이 부족한 것이다.
그 이유는 명확하다. 첫째, 재정의 제약이다. AI 기반 혁신은 단일 프로그램이 아니라, 전사적 시스템 구축이다. 그러나 많은 대학은 단기성과 중심의 정부사업에 의존하면서 장기적인 구조 개편에는 소극적이다. 둘째, 전문 인력의 부재다. AI나 데이터 사이언스 분야의 전문가가 대학 내에 거의 없고, 결국 기존 행정 인력이 ‘AI 혁신’을 겸직하는 기형적 구조가 반복된다. 셋째, 조직문화의 저항이다. AI 혁신은 수업 방식, 평가 기준, 데이터 공개 등 교수의 자율성과 직결된다. “우리도 이미 하고 있다”는 자기 확신이 오히려 변화를 가로막는다.
이처럼 대학들은 필요성은 인식하면서도, 내부 동력과 지속가능성이 부족한 구조적 한계에 갇혀 있다.
이때 주목해야 할 모델이 바로 미국 애리조나주립대(ASU)다. ASU는 2014년 “대학은 누구를 배제했는가가 아니라, 누구를 포함해 얼마나 성공하게 했는가로 평가받는다”는 혁신적 헌장을 제정하며 대학의 정체성을 새로 정의했다. 이후 10년 동안 AI와 데이터 분석을 중심축으로 학습, 연구, 행정, 지역협력 전반을 재설계했다.
ASU의 혁신은 단순한 기술 도입이 아니라 대학의 운영 시스템 자체를 바꾼 변화였다. ‘ASU Prep Digital’이라는 온라인·AI 학습 플랫폼, 산업·지역사회 연계형 문제기반학습(PBL), 데이터 기반 교수평가체계, 그리고 산학협력 생태계는 기존 대학의 경계를 완전히 허물었다. 그 결과 ASU는 미국 내 10년 연속 ‘가장 혁신적인 대학’으로 선정되었고, 세계 각국 대학들이 이 모델을 벤치마킹하고 있다.
ASU형 AX의 핵심은 ‘기술이 아니라 시스템’이다. AI를 교육 도구로 활용하는 수준을 넘어, 대학 전체를 하나의 데이터 기반 운영체제(Operating System)로 전환한 것이다. 학사행정, 교수학습, 연구평가, 학생지원이 분절되지 않고 유기적으로 연결되면서, 혁신이 조직문화와 평가 시스템 속에 내재화되었다. 대학이 스스로 학습하고, 스스로 개선하는 구조를 만든 것이다. 우리 대학이 이 모델에서 배워야 할 것은 단순한 모방이 아니다.
ASU가 보여준 것은 ‘시스템적 사고’와 ‘실행 구조의 설계’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교수법·평가·데이터 거버넌스를 하나의 체계로 엮는 일이다. 각 대학은 각자의 규모와 여건에 맞게 ASU의 경험을 선택적·단계적으로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대학이 대형 컨소시엄을 구성할 필요는 없지만, 선도대학의 사례를 참고하고, 공통 플랫폼을 점진적으로 공유하는 유연한 협력 구조는 필요하다.
결국 AI 시대 대학의 경쟁력은 기술의 보유 여부가 아니라, 변화를 제도화할 시스템의 유무에 달려 있다. ASU가 보여준 길은 단순한 미국의 성공담이 아니라, 우리 대학이 나아가야 할 하나의 운영 패러다임이다.
이제 대학은 “무엇을 할 것인가”보다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그 출발점은 ASU가 증명해낸 AX 모델의 철학, 즉 포용(Access)·탁월성(Excellence)·사회적 영향(Impact)을 중심에 둔 시스템 혁신이다. AI 시대의 생존은 기술이 아니라, 시스템을 혁신할 용기에 달려 있다. 그 용기를 가진 대학만이, 미래의 문 앞에서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게 될 것이다.
<한국대학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