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공대, 태양광·전기장 활용한 나노전기수력학 정수 시스템 개발
전력·펌프 없이 작동, 미세플라스틱 99% 제거… 개도국 적용 기대
전문가 “과학이 사람을 살린다… 물부족·기후위기 해법 제시할 것”
[한국대학신문 김의진 기자] 기후위기와 산업화로 인한 수자원 오염이 전 세계적으로 심화하는 가운데 복잡한 정수시설 없이도 안전한 식수를 확보할 수 있는 기술이 국내 연구진에 의해 개발됐다. 태양광과 전기, 간단한 재료만으로 물속 미세플라스틱과 세균을 99% 이상 제거하는 방식이다. 정수 인프라가 부족한 개발도상국이나 재난지역에서 적용 가능한 휴대용 정수 플랫폼으로 주목받고 있다.
11일 교육계에 따르면 임근배 포항공대 기계공학과 교수 연구팀은 태양광을 이용해 정수기 없이도 깨끗한 물을 만들어내는 ‘나노전기수력학 정수 시스템’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전기와 태양광의 힘으로 물속 오염물질을 걸러내는 기존 정수 방식과 완전히 다른 개념의 기술이다. 정수기처럼 복잡한 필터나 고압 펌프도 필요하지 않다.
임근배 포항공대 기계공학과 교수는 이날 본지와 통화에서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물속에 아주 미세한 전류를 흘려보내 전기장을 형성하고 음전하(-)를 띠고 있는 미세플라스틱, 세균, 바이러스 등 오염 입자를 밀어내 깨끗한 물만 통과시키는 방식”이라며 “고압으로 밀어 넣거나 복잡한 여과막이 막히는 일이 없기 때문에 전기가 약하더라도 작동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미세플라스틱과 세균 등 10나노미터(머리카락 굵기의 1만 분의 1) 이하의 초미세 입자까지 99% 이상 제거하는 데 성공한 상태다. 특히 태양광 충전 배터리만 있으면 작동하기 때문에 별도 전력 설비가 필요 없다는 점은 가장 큰 강점이다. 전기와 햇빛만으로 작동하는 정수 시스템이라는 점에서 전기가 부족한 지역이나 재난 현장에서 바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다.
현재 대부분 정수기술은 물이 필터를 통과할 때 오염물질을 걸러내는 방식이다. 시간이 지나면 필터에 이물질이 쌓여 효율이 급격히 떨어지는 한계가 있다. 정수기를 오래 쓰면 물이 잘 나오지 않거나 필터를 자주 교체해야 하는 것도 이 이유에서다. 또 깨끗한 물을 얻으려면 고압 펌프가 필요하고 전력 소모도 크다. 전력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에서는 사실상 가동이 어렵다.
하지만 포항공대 연구팀이 중력만으로도 작동하는 정수 시스템을 구현하면서 펌프나 전선이 없어도 정화가 가능해진 것이다. 식물성 섬유로 만든 친환경 소재인 셀룰로오스 스펀지에 특수 코팅을 입혀 물이 지나갈 때 내부에서 전기장이 형성되도록 설계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낮은 압력에서도 시간당 1㎡당 400리터 이상의 물을 정화할 수 있다. 이는 하루 약 10톤 정도로, 소규모 마을의 식수를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다.
임 교수는 “세척만으로 최대 20회 이상 재사용이 가능해 기존 정수기처럼 소모품을 계속 사거나 교체할 필요가 없어 장기적인 비용 절감 효과도 클 것”이라며 “전력 사정 등 인프라가 열악한 지역에서도 과학의 힘으로 안전한 식수를 확보할 수 있는 해법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 전기 없어도 작동 ‘휴대용 정수기술’… 구호현장 활용 기대 = 현재 전 세계에는 여전히 안전한 식수를 얻지 못하는 인구가 약 22억 명에 이른다. 세계 인구 4명 중 1명이 여전히 꺠끗한 물 한 잔을 얻지 못하는 셈이다. 유엔(UN)이 발표한 ‘세계 물 개발 보고서’를 보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역 인구의 절반 이상이 오염된 지하수나 강물을 그대로 마시는 실정이다. 매년 180만 명이 물 관련 질병으로 목숨을 잃는다. 특히 면역력이 약한 5세 미만 어린이의 사망률이 높다.
유엔과 국제 NGO들은 라이프스트로(LifeStraw) 등 정수 빨대 기술을 현장에 보급하고 있다. 입으로 물을 빨면 내부 필터가 세균을 걸러낸다. 실제로 아프리카·남아시아 등 지역에서 사용 중이다. 하지만 유지비가 높고 정화 효율이 낮다는 한계가 있다. 특히 교체용 부품을 구하기 어렵거나 가격이 비싸 한 번 고장이 나면 사실상 그대로 버려지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들은 포항공대 연구팀의 태양광 기반 정수 시스템이 오염된 물을 마실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겐 희망이 될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발전소나 송전선이 닿지 않는 시골 마을이나 전쟁·재난으로 정수시설이 파괴된 난민촌 등에서도 바로 물을 정화할 수 있는 휴대용 정수기술이라는 이유에서다.
장봉순 한국대학사회봉사협의회 사무국장(전 한국국제협력단 ODA교육원장)은 통화에서 “탄자니아와 방글라데시 등 개발도상국에서는 태양광 기반 정수 플랫폼이 새로운 물 안보 해법으로 떠오르는 상황”이라며 “현지 전력망이 전혀 없어도 작동할 수 있기 때문에 실제 개발협력 사업에 적용할 수 있을 만큼 실용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장 국장은 이어 “인류가 겪고 있는 물 부족은 기후위기로 인한 생존 위기”라며 “정부와 대학, 국제기구가 손잡고 개도국이나 재난지역에 기술을 적용할 수 있도록 협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적은 전력만을 요구해 탄소 배출이 많지 않다는 점에서 향후 첨단산업의 생산 효율을 높이는 확장성이 크다는 전망도 나온다.
임 교수는 “반도체 공정용 초순수(Ultra-pure water) 생산이나 바이오의약품 생산 과정의 초미세 입자 제거 등 산업 현장에서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며 “전력 소비가 기존 시스템의 50분의 1 수준이라 에너지 절약형 여과 기술로 산업 전반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향후 한국국제협력단(KOICA)나 해외 공적개발원조(ODA)와 연계된다면 과학기술로 인류를 돕는 한국형 개발협력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란 전망도 내놓는다.
장 국장은 “과학의 목적은 인간의 삶을 더 낫게 만드는 데 있다”며 “전력 한 줄도 들어오지 않는 외딴 마을의 오염된 우물가에서 햇빛으로 작동하는 작은 정수기가 맑은 물을 만들어낸다. 지구 반대편의 누군가에겐 생명을 건네줄 수도 있다는 것이 과학이 주는 아름다운 희망”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