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교양과목서 오픈채팅방 정답 공유 정황… 중간고사 전면 무효화
코로나19 이후 확산된 비대면 시험… 제도 허점·학생 윤리 모두 손봐야

연세대 전경. (사진=연세대)
연세대 전경. (사진=연세대)

[한국대학신문 윤채빈 기자] 지난 10일 보도된 연세대 ‘커닝 사태’에 이어 고려대에서도 비대면 시험 과정에서 집단 부정행위가 발생했다. 국내 상위권 대학에서 불거진 사건 모두 ‘비대면 시험’ 과정에서 발생 대학가 전반의 운영 시스템을 점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고려대 집단 부정행위, 오픈채팅방서 정답 공유 = 11일 고려대에 따르면 지난달 25일 치러진 온라인 교양과목 ‘고령사회에 대한 다학제적 이해’ 중간고사에서 부정행위가 발생했다. 학생들은 시험 도중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통해 문제와 정답을 주고받았고, 이 사실이 드러나자 학교는 중간고사 결과를 전면 무효화하기로 했다.

문제가 된 과목은 수강생 1400여 명이 참여하는 대형 강의로, 비대면으로 중간고사가 치러졌다. 당시 원격 보안프로그램이나 실시간 감시 장치 등 별도의 부정행위 방지 장치는 없었다. 일부 학생들은 시험 전부터 만들어둔 오픈채팅방에서 정보를 공유했고, 채팅방에 있던 학생들이 이를 학교에 제보하면서 사건이 드러났다.

고려대는 “여러 개의 오픈채팅방에서 부정행위가 이뤄졌으며, 한 채팅방에는 500여 명이 참여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담당 교수는 ‘중간고사 초유의 사태 발생과 관련하여’라는 공지를 통해 “명문사학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에 교수들이 큰 충격을 받았다”며 “부정행위를 묵과할 수 없어 중간고사 전면 무효화라는 특단의 조치를 내린다”고 했다.

연세대와 고려대 등 상위권 대학에서 비대면 시험 부정행위가 연이어 드러나면서, 대학가에서는 “비대면 시험 운영 전반을 재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확산된 비대면 시험, 공정성 논란 = 비대면 시험은 코로나19 이후 대학가 전반에 빠르게 확산된 제도다.

대학정보공시 ‘대학알리미’에 따르면, 연세대의 대형 강의(수강생 201명 이상)는 2020년 75개에서 지난해 104개로 늘었다. 원격(비대면) 강좌 역시 2023년 2학기 34개에서 올해 2학기에는 321개로 급증했다.

해외 대학의 상황도 유사하다. 영국 스완지 대학교(Swansea University)의 학문 윤리 전문가인 필립 뉴턴과 마이클 드레이퍼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 봉쇄 조치가 해제된 지 4년이 지났음에도 영국 대학의 4분의 3 이상은 여전히 온라인 원격 시험을 실시하고 있었다.

비대면 시험은 시간과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시험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꾸준히 지적돼 왔다. 실제로 2020년 이후 국내 대학가에서는 온라인 시험 부정행위가 잇따라 적발됐다.

2020년 3월 인하대 의과대학에서는 1·2학년 109명 중 91명이 온라인 시험 중 답안을 공유하다 적발됐다. 일부 학생은 자택이나 기숙사에 모여 문제를 함께 풀었고, 메신저나 유선전화를 이용해 답안을 논의했다. 학교는 부정행위자 전원을 0점 처리했다.

같은 해 한국외대에서도 2000여 명이 수강한 교양 강의의 온라인 기말고사에서 700여 명이 오픈채팅방을 통해 정답을 주고받은 사실이 드러나 대학은 재시험 방침을 내렸다. 서강대 역시 수학과 수업의 비대면 시험에서 수강생 일부가 개방된 강의실에 자기들끼리 모여 함께 시험을 치르는 모습을 다른 학생들이 발견해 커뮤니티에 제보하면서 집단 부정행위가 드러났다.

익명을 요청한 A교학부총장(교육학 박사)은 “비대면 시험은 코로나19를 계기로 본격화된 제도지만, 평가의 공정성 확보와 신뢰성을 지키기 위해 대학들이 시험 운영 방식을 근본적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대학에서 교과수업은 비대면으로 진행하더라도 시험은 코로나19 이전처럼 오프라인으로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불가피하게 비대면 시험을 진행할 경우, 객관식보다는 평가 루브릭을 반영한 서술형·논술형 문항의 비중을 높이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했다.

학생 윤리 의식 강화도 과제로 꼽았다. A교학부총장은 “강의실이 아닌 공간에서 시험을 치르다 보니 부정행위의 개연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며 “일부 대학에서 운영해 온 것처럼 시험 전 ‘정직하게 시험을 보겠다’는 서약 절차 등을 통해 학생들에게 평가의 의미를 환기시키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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