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외국인 유학생 25만 명 시대… 연구자 장벽은 여전히 언어
케리스(KERIS), 학술연구정보서비스(RISS)에 18개 언어 AI 번역
전문가들 “AI 기반 학술정보 개방…글로벌 대학 경쟁력에 기여”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의 학술연구정보서비스(RISS) 메인 페이지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의 학술연구정보서비스(RISS) 메인 페이지

[한국대학신문 김의진 기자] 국내 외국인 유학생 수가 25만 명을 넘어서면서 대학 경쟁력의 새로운 기준이 언어 접근성으로 옮겨가고 있다. 특히 학술정보 접근의 불균형이 내·외국인 간 연구 격차로까지 이어지면서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 이하 케리스)이 운영하는 학술연구정보서비스(RISS, 이하 리스)의 다국어 초록 번역서비스가 국내 대학의 글로벌 인프라로 주목받고 있다.

12일 교육계에 따르면 교육부와 케리스(KERIS)는 최근 리스(RISS)에 등록된 국내·외 학술논문 1183만 건의 초록을 18개 언어로 실시간 번역하는 서비스를 개통했다. 영어와 중국어, 일본어뿐 아니라 베트남어, 아랍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등 유학생의 주요 모국어 대부분이 포함됐다. 별도 로그인이 없이도 검색 화면에서 즉시 번역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리스는 전국 대학과 공공·연구기관이 생산한 학위논문, 학술논문, 연구보고서를 통합 제공하는 대표 학술정보 플랫폼이다. 하루 평균 10만 건 이상의 검색이 이뤄진다.

리스에 인공지능(AI) 기반 실시간 번역 기능이 탑재되면서 외국인 연구자들도 국내 연구자와 마찬가지로 국내 연구 자료를 활용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케리스에 따르면 민간 AI 번역 기업과 협업해 서비스를 구축했고 번역 품질을 주기적으로 검증해 정확도를 높일 계획이다. 특히 한국어에 익숙하지 않은 유학생이 전공 주제별로 논문 초록을 자국어로 즉시 확인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국내 학술정보 활용도를 크게 높이는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정제영 케리스 원장은 이날 본지와 통화에서 “국내에서 공부하거나 연구하는 외국인 학생들이 언어 때문에 불편함을 겪지 않도록 돕기 위해 번역서비스를 마련했다”며 “한국 논문이 있어도 한국어를 잘 몰라 읽기 어려웠던 유학생이 많았지만 번역된 초록을 통해 논문 내용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원장은 이어 “AI가 논문 내용을 자동으로 요약하거나 관련 주제를 추천해주는 기능도 추가할 계획”이라며 “국내 연구성과가 세계 연구자들에게 인용돼 글로벌 무대에서 널리 알려지는 데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교육계에선 리스의 다국어 초록 서비스의 경우 정부가 운영하는 학술번역 시스템이라는 점에서 세계적으로도 이례적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대학·공공기관이 생산한 연구 자료를 무료로 열람할 수 있도록 해 공공 자산으로 개방하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라는 의미다.

구글 스칼라(Google Scholar)나 리서치게이트(ResearchGate) 등 서비스는 AI 번역 기능을 갖추고 있어 영어로 된 논문을 다른 언어로 바꿔 볼 수 있다. 하지만 민간 기업이 운영하기 때문에 모든 나라의 논문을 자유롭게 번역하거나 접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 논문 제공 범위가 제한적이고 유료 구독이나 회원가입이 필요한 경우도 많다.

김경성 전 서울교대 총장(교육학박사)은 통화에서 “학술 분야가 영어 중심으로 돌아가며 정보 접근의 격차가 컸던 것이 사실”이라며 “번역 인프라가 늘어나게 되면 학문 연구 영역에서 언어가 벽이 되는 시대는 끝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외국인 유학생 25만 명… 연구 경쟁력은 ‘언어’ = 교육부에 따르면 올해 국내 외국인 유학생은 약 25만 3000명에 이른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10만 명 수준이었지만 두 배 넘게 늘어난 셈이다. 일부 통계에서는 27만 명에 근접했다는 분석도 있다.

유학생의 국적도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중국과 베트남 출신 학생이 여전히 전체 절반 이상을 차지하지만 최근에는 인도네시아, 몽골, 우즈베키스탄, 태국 등 아시아 전역에서 오는 학생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

특히 학위과정 중심의 유학생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과거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잠시 머무는 어학연수생 비중이 높았던 데 비해 최근에는 석사·박사과정에 진학해 연구에 참여하는 학생 비율이 급격히 높아졌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외국인 연구자에게 국내 논문 읽기는 여전히 가장 어려운 일로 꼽힌다. 대부분 국내 학술논문과 연구보고서가 한국어로만 작성돼 있고 주요 데이터나 통계자료도 한국어 기반으로 제공되기 때문이다.

최용주 인제대 취업진로처장(전 산업융합대학원장)은 본지에 “한국에 와서 공부하는 외국인 학생들이 의욕은 높지만 논문이 대부분 한국어라서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며 “연구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실제로 많은 유학생들이 국내 논문 제목이나 초록의 키워드만 보고 대략적인 내용을 추측하거나 영어로 작성된 해외 논문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다. 국내 연구성과의 국제 인용률이 저조한 이유도 이러한 영향에서라는 분석도 나온다.

최 처장은 “외국인 유학생이 대학원 연구실에서 연구하고, 교수와 논문도 쓰고, 기업 프로젝트에도 참여하려면 국내 학술자료를 자유롭게 찾아보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며 “국내 연구결과를 외국인 학생이 자기 언어로 바로 확인할 수 있다면 대학 연구의 국내·외 협력도 훨씬 활발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번역 품질의 신뢰성과 대학별 보유 학술자료와 연계 등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고 진단한다.

김 전 총장은 “AI가 문장을 번역할 때 전공·분야별 전문가가 검증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AI가 학문적 맥락까지 이해할 수 있도록 꾸준한 품질 개선이 필요하다”며 “대학이 따로 관리하는 리포지터리(대학 자체 학술자료 저장소)까지 통합돼야 완결형 플랫폼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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