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 “의대·약대처럼 전문직 기준 맞춰야”… 로스쿨 4년제 개편론 확산
현행 로스쿨 제도 변호사시험 편중, 기초법학·실무교육 약화…3년제 한계
교육부·법무부 등 정부, 대학은 신중한 입장 “학생·재정부담 현실적 과제”
[한국대학신문 김의진 기자] 법학전문대학원(이하 로스쿨) 제도의 4년제 전환 논의가 정책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다. 최근 법조계를 중심으로 3년제의 한계가 명확해졌다며 4년제 개편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의대·약대 등 전문직 교육과 비교해 법조인 양성 시스템 전반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는 주장이 법조계를 비롯해 교육계까지 번지는 분위기다.
13일 교육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로스쿨 제도의 4년제 전환 논쟁이 급속히 확산하고 있다. 현행 3년제인 로스쿨 교육 기간에 대한 논의는 그간 수차례 있었지만, 최근처럼 정책 개편을 공개 요구할 만큼 크게 다뤄진 적은 없다는 게 법조계 여론이다.
조순열 성균관대 로스쿨 객원교수(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는 이날 본지에 “현행 방식으로는 제대로 된 법조인을 키우기 어렵다”며 “법조인 양성의 전문성, 실무교육(임상법학)을 위해선 3년제는 너무 짧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이어 “의과대학과 약학대학은 6년제 과정을 운영한다”며 “로스쿨은 단일 3년 과정에 모든 교육을 몰아넣고 있어 사실상 속성 과정처럼 운영될 수밖에 없다. 로스쿨도 의사·약사처럼 교육 연한을 늘려 제대로 된 전문직 교육 시스템을 만들 때가 됐다”고 주장했다.
■ 변호사시험 쏠림에 기초·실무교육 약화 = 법조계에선 로스쿨 학생들이 법학의 기초를 다지는 ‘기초법학’, 기업·형사·행정 등 실제 사건에서 쓰이는 ‘전문법학’, 실제 사건을 체험하는 ‘임상법학(실무교육)’ 등을 배워야 하지만 3년제로는 충실하게 배우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변호사시험 준비에 시간을 쏟느라 기초는 소홀해지고 실무는 형식적인 수업 수준에 머물게 된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기초법학이나 실무교육에 소홀한 것은 변호사시험에 이들 과목은 도움이 안 된다고 여기는 탓이다. 변호사시험 합격이 사실상 로스쿨 진학의 유일한 이유인 상황에서 법학의 기본을 깊이 있게 공부한다거나 실습형 교육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학생들에게 사치로 여겨져 뒷전으로 밀리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3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시험 대비까지 하는 탓에 로스쿨 교육이 다양해질 수 없다고 지적한다. 변호사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시험에서 출제되는 과목만 빠르게 준비하는 형태로 갈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강인구 법무법인 테헤란 변호사는 통화에서 “법조인에게 필요한 역량은 사고력, 분석력, 실무 대응력인데 시험 중심 구조에서는 키우기 어렵다”며 “학생들에겐 시험 합격이 가장 급한 현실일 수밖에 없고, 학교별 합격률 차이가 매년 벌어진다는 통계를 보면 로스쿨 입장에서도 교육 전반을 시험 중심으로 수렴하는 게 불가피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본지가 올해 변호사시험을 분석한 결과, 실제로 학교별 합격률은 지역에 따라 상당한 격차가 확인됐다. 올해 변호사시험의 전체 합격률은 약 52.3%였다. 하지만 서울·수도권에 위치한 상위권 로스쿨의 합격률이 70~80%대인 반면 지방 소재 로스쿨 합격률은 30%대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합격률을 관리해야 하는 로스쿨로선 시험 대비에 교육이 몰려 균형을 갖춘 교육 커리큘럼 구성이 사실상 불가능하단 지적이다.
김기원 변호사(서울지방변호사회 수석부회장)는 본지에 “로스쿨 교육을 제대로 하려면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이 4년”이라며 “로스쿨을 시험 준비 기관으로 운영되는 것을 방치해선 안 된다. 부족한 교육 내용을 제대로 채워 로스쿨을 전문직 대학원으로 거듭나게 만들려면 4년은 필수”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이어 “최근 AI 법제, 환경·기후 규제 등 법률환경 분야가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기업과 사회가 요구하는 법률 전문성도 훨씬 복잡해졌다”며 “현행 3년제 구조에서는 신규 분야를 심도 있게 배울 여유가 거의 없다. 4년제가 되면 교육을 충분히 편성할 수 있고 실무역량도 체계적으로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 학생·재정 부담 커질 수 있어 부작용 고려해야 = 반면 4년제 전환에 대한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학생들이 감당해야 할 부담이 현행 3년제보다 훨씬 커질 것이라는 게 가장 큰 이유다. 또 변호사시험 준비 기간이 늘게 된다는 점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중앙대 로스쿨에 재학 중인 장해진(25·가명) 씨는 “등록금이 지금도 3년 동안 수천만 원이 들어가는데 4년제가 되면 등록금 1년치가 그대로 추가되는 것이지 않냐”며 “생활비까지 포함하면 학생 한 명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훨씬 늘어나는 것인데, (4년제 전환은) 반대”라고 말했다.
연세대 로스쿨에 다니는 김경남(25·가명) 씨는 “3년 과정이 끝나면 시험을 준비하는데 4년제가 되면 사회진출 시점도, 졸업 연령도 더 늦어지게 된다”며 “이미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에 변호사가 되는 게 기정사실인데 1년 더 길어지면 부담이 너무 커진다”고 했다.
김 씨는 이어 “4년제가 되면 시간적 기회비용이나 생활비 압박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경제적 여유가 있는 학생이 유리해지고 그렇지 못한 학생은 오히려 불리해질 것”이라며 “법조계로 진입하는 문이 좁아져 로스쿨의 원래 취지가 훼손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교육부와 법무부는 신중한 입장이다. 기초법학 강화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교수·재정 여건 등 지방 로스쿨의 운영 역량 등 종합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구본억 교육부 인재양성지원과장은 “기초법학을 강화해야 한다는 데에는 분명히 동의한다”면서도 “정책의 부작용 등 복잡한 요소들이 얽혀 있기 때문에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이동근 법무부 법조인력과장도 “로펌·법률구조공단 등 실무수습처를 늘린다든지 전문과목을 열심히 운영하는 로스쿨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 등을 고려하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면서도 “필요성은 이해하지만 실효적인 제도 운영을 위해 로스쿨별 교과목 개설 현황을 충분히 조사한 후 신중하게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학 현장에선 4년제로 전환하는 데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은 재정이 문제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교육 기간이 1년 늘어나면 로스쿨이 감당해야 할 비용도 커지기 때문이다. 이미 상당수 로스쿨이 재정이 빠듯한 상황이고 특히 일부 국립대 로스쿨의 경우 교수 부족 등 인프라 자체도 충분하지 않은 상태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의 한 사립대 로스쿨 교수는 “정부가 추가 예산을 지원하지 않으면 4년제 전환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사립대는 국립대보다 정부 재정지원이 적기 때문에 4년제가 되면 등록금 인상 압박이 훨씬 세게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등록금으로 충당해야 하는 비용이 늘어나기 때문인데 자연스럽게 학생 부담도 커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로스쿨이 어떤 역할을 할 기관인지 먼저 정의해야 제도 개편 방향이 보일 것이라고 조언한다. 로스쿨을 변호사를 길러내는 전문직 양성 기관으로 볼지, 법학 연구자를 키우는 학문 교육 기관으로 볼지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뜻이다.
박종철 중앙대 보안대학원 겸임교수(미국변호사)는 “로스쿨을 전문직 교육기관으로 본다면 로펌·공공기관 등 실무수습 교육을 정부 차원에서 확충하고 보장해야 한다”며 “반면 법학 학문 후속세대를 키우고 싶다면 로스쿨과는 별도의 트랙으로 학문 중심의 법학대학원 시스템을 논의해야 할 문제”라고 조언했다.
박 교수는 이어 “로스쿨 제도가 2009년 도입된 이후 17년간 쌓인 논란과 성과를 정리하고 로스쿨이 어떤 전문직 모델을 지향해야 하는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만들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며 “미국식 전문직 모델을 따를 것인지, 의대·약대처럼 심층 교육을 중심으로 한 모델을 따를 것인지 국내 법조 교육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차원에서 종합적으로 설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