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준 단국대 석좌교수

김학준 단국대 석좌교수
김학준 단국대 석좌교수

필자는 대학원 정치학과 석사과정 첫 학기에 「과학과 사회」라는 과목을 수강했다. 정치학과에 어울리지 않는 과목이라는 선입견이 있었으나, 막 개설된 이 과목을 수강과목에 포함시키라는 지도교수의 말씀을 따른 것이었다. 이 과목의 취지는 과학의 발전은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키며 그 변화를 정치와 정부는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가에 있었다. 이 과목을 담당한 교수는 필자에게 ‘후진국 코리아’의 학생이 반드시 익숙해야 할 과목인 만큼 이 주제로 석사논문을 쓰는 것이 좋겠다고 강력히 권고했다. 그러나 사양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자연과학에 흥미는 있었지만 재능이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공계 학과에 지망할 꿈을 한 차례도 꾼 일이 없었다. 거듭 말하지만 그 분야에 소질이나 재능이 없다고 자각했기 때문이다.

최근에 신문을 읽으면서 필자는 과학과 기술에 관한 보도에 접할 때마다 자신의 무지를 거듭 확인하곤 한다. 정말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단어들과 설명들에 골머리를 앓고 지낸다. “그때 그 교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과학과 기술에 대해 깊이 공부했을 것을”하는 뒤늦은 후회도 뒤따랐다.

초지능시대에 들어선 인류
구체적 사례를 들어본다. 최근 서울에서 열린 과학과 기술에 관한 국제학술대회를 보도한 기사들 가운데 필자는 두 대회에 주목했다. 11월 5일에 그랜드워커힐서울에서 열린 ‘글로벌인재포럼 2025’에 관한 기사, 그리고 12월 4일에 신라호텔에서 열린 ‘동아비지니스포럼 2025’가 그것들이다.

우선 ‘글로벌인재포럼 2025’에 관해서다. 『한국경제』(2025년 11월 6일)에 따르면, 독일 지멘스 회사의 짐 하게만 스나베 이사회 의장은 기조연설에서 “인쇄술 발명이 ‘지식의 민주화’를 이끌었다면, 인공지능(AI)은 ‘지능의 민주화’를 통해 인류의 역사를 바꿔놓을 것”이라고 말한 데 이어, “모든 인류가 초지능(superintelligence)을 갖추게 된 시대, 이제는 기술이 아니라 우리의 상상력이 한계를 정합니다.”라고 선언했다. 이 발언에 대해, 『한국경제』는 “AI와의 공존과정에서 새로운 꿈을 꾸는 상상력, ‘인간다움’이 핵심가치로 부상할 것이라는 의미이다”라고 설명했다. 이 설명을 듣고나니 스나베 의장의 모두 발언의 의미를 어느 정도 이해할 것 같았다.

그래도 필자의 이해는 충분하지 않아 이 기사를 더 따라 갔다. 그러자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의 부연설명을 접할 수 있었다. 그는 “AI는 결론을 내면 끝이지만, 인간은 그 결론을 토대로 이게 옳은 길인지를 한 번 더 판단한다”라면서 “‘지능’보다 진화한 ‘지성’을 갖춘 인간만이 가진 고유의 힘”이라고 말했다.

이 기사는 루먼 초두리 휴메인 인텔리전스 최고경영자의 발언으로 이어졌다. 그는 “대중적 프로파간다와 과학적 진실이 충돌할 때 데이터 양의 격차로 잘못된 정보가 진실처럼 확대 재생산될 우려가 높다”라면서 “개발자뿐 아니라 사회의 다양한 구성원이 참여해 잘못된 알고리즘을 수리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에서 소개한 스나베 의장의 발언, 그리고 그 발언에 대한 최 교수의 부연설명은 두어 차례 읽고나면 윤곽을 잡을 수 있었으나, 초두리 최고경영자의 발언은 서너 차례 읽어도 감이 정확히 잡히지 않았다. 거듭 말하지만 이제 과학과 기술 분야의 신문기사는 필자를 비롯한 일반독자에게는 어려운 읽을거리가 됐다.

인공지능에 대한 무지가 빚어낼 위험
‘동아비즈니스포럼 2025’에서 기조연설한 톰 데이븐포트 뱁슨대학 교수의 발언 역시 따라가기 쉽지 않았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데이븐포트 교수는 빅데이터의 창시자로 불릴 정도로 데이터를 활용한 비즈니스 혁신과 관련해 독보적 연구 성과를 낸 학자로, 피터 드러커 교수 및 톰 프리드먼 교수와 함께 세계 3대 경영사상가로 꼽힌다.

그는 『동아일보』와의 회견에서, AI를 ‘분석형’과 ‘생성형’ 및 ‘에이전트형’의 세 가지 형으로 구분하고, (ⅰ)분석형 AI는 ‘판단,’ (ⅱ)생성형 AI는 ‘표현,’ (ⅲ)에이전트형 AI는 ‘행동’을 담당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에이전트형 AI에 대한 과대광고가 넘쳐나고 생성형 AI가 시장을 뒤흔들고 있지만 시류만 좇는 기업은 AI에 투자해도 가치(ROI)를 만들어내기 어렵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많은 비즈니스 리더가 분석형, 생성형, 에이전트형 등 AI의 유형과 그 기본적인 차이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라면서 “이러한 이해 없이는 AI가 조직과 전략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어떤 유형의 AI로 대응해야 할지 파악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이 말도 이해가 쉽지 않다. ‘경고’를 알아듣지 못한다면 이 얼마나 큰 위험인가. 다만 필자가 비즈니스 리더가 아니라는 사실에서 위안을 얻는다.

첨단 기술분야에서의 인재 육성
그러나 대학의 일원으로 ‘글로벌인재포럼 2025’에서의 발표 내용에 무심할 수는 없다. “기술경쟁력을 갖춘 인재를 세계에서 얼마나 확보해 오느냐가 한 국가의 경쟁력을 결정할 것입니다”라는 발언, 보다 구체적으로 “인공지능, 양자컴퓨팅, 반도체 등 첨단 기술분야에서 인재를 얼마나 모으느냐, 어떻게 키우느냐가 우리의 생존여부를 가를 것입니다”라는 발언은 대학들에게 자신들의 앞날에 관한 하나의 지침이 아닐 수 없다. 외국으로부터의 인재 유치와 영입 그리고 국내에서의 인재 육성이 큰 과제로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인재 유치와 영입에 앞서 인재 유출을 막는 일이 시급하다. 『조선일보』(2025년 11월 6일) 보도에 따르면, 특히 AI산업에서 일할 인재는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고,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차는 있는데, 운전사가 없고 총은 있는데 총알이 없다”라는 자조가 쏟아지고 있다. 우리보다 앞서 ‘AI인재유출’에 시달렸던 대만은 반전에 성공했다. 정부와 대학 그리고 기업이 적극 협력해 미국으로 갔던 유학생들도 돌아오고 있다는 것이다. 『조선일보』 기자들과의 회견에서 존 카오 대만 칭화대 총장은 “정부는 적재적소에 지원하고, 대학이 기술발전에 맞춰 교육과정을 혁신했으며, 기업은 성장했다. 이를 통해 대만의 ‘인재 유출’문제는 많이 해소됐다”라고 설명했다.

혁신은 모든 대학에 필수적
다행히 한국의 대학들도 상황의 엄중함을 직시하고 있다. 대학혁신지원사업총괄협의회장 이주열 교수는 『동아일보』와의 회견(2025년 11월 6일 보도)에서 “대학이 미래사회에 필요한 인재를 길러내려면, 무엇보다 대학부터 혁신해야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현재 국립대를 제외한 4년제 일반대학 138곳이 참여하고 교육부가 지원하는 이 협의회는 “대학 혁신은 대학이 단순히 사회환경 변화에 적응하는 것을 넘어서 대학이 새로운 가치와 역할을 모색해 가는 과정이다”라는 전제 아래, “각 대학 여건과 특성에 따라서 혁신 내용은 다를 수 있지만, 혁신은 기본적으로 모든 대학에 필수적”임을 자각하고 전공자율선택제 확산이라는 방향으로 현재의 학과 구조를 조정하는 등 여러 방면에서 노력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윤동섭 연세대학교 총장의 구상이 고무적이다. 그는 『조선일보』와의 회견(2025년 11월 6일 보도)에서 연세대가 국내 최초이면서 세계 대학들 가운데 둘째로 127큐비트 양자컴퓨터를 도입한 사실을 공개함과 동시에 의대생 7~8%를 의사과학자로 양성하고 있는 사실도 밝혔다. 지난 해 7월에는 ‘노벨상 사관학교’로 불리는 독일 막스프랑크협회와 한국 기초과학연구원(IBS)이 제휴해 연세대에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공동연구센터를 세운 사실도 상기시켰다.

한국의 대학들이 본질적으로 구조개혁과 체질개선으로 새 시대를 이끌 인재들을 길러내길 기대한다. 한국의 미래는 그들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

<한국대학신문>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