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교육, 전공 대비 낮은 지위와 축소된 학점… 표준 모델 미달
생성형 AI 부정행위 확산… AI 속성 이해·AI 활용 중점 둔 교육돼야
학생의 전인적 성장 위한 ‘교양교육진흥법’ 제정 등 국가적 관리체계 필요

최근 대학가는 인공지능(AI) 기술의 급속한 발전과 함께 학생들의 AI 활용 컨닝 문제 등 디지털 윤리 이슈로 뜨거운 감자처럼 변모하고 있다. 이런 변화 속에서 대학 교육의 근간인 교양교육을 청년 대학생들을 미래 사회로 연결하는 핵심 통로로 재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진은 인천대 학생들이 교양강좌인 GB 토의 세미나에 참여하고 있는 모습. (사진=한국대학신문DB)
최근 대학가는 인공지능(AI) 기술의 급속한 발전과 함께 학생들의 AI 활용 컨닝 문제 등 디지털 윤리 이슈로 뜨거운 감자처럼 변모하고 있다. 이런 변화 속에서 대학 교육의 근간인 교양교육을 청년 대학생들을 미래 사회로 연결하는 핵심 통로로 재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진은 인천대 학생들이 교양강좌인 GB 토의 세미나에 참여하고 있는 모습. (사진=한국대학신문DB)

[한국대학신문 임지연 기자]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청년 세대는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한 미래와 마주하고 있다. 대학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기관을 넘어 청년이 안정적이고 희망적인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돕는 인큐베이터이자, 사회 변화의 동반자가 돼야 한다. 이에 본지는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이하 대교협)와 공동으로 ‘청년 세대와 함께하는 지속가능한 대학 정책’을 주제로 미래를 이끌어 나갈 청년들을 위한 현 대학 정책의 한계는 무엇이며, 지속가능한 대학 생태계를 위해 어떤 제도적 보완이 필요한지 진단, 청년과 대학이 함께 만들어갈 지속가능한 미래의 실질적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청년, 불안에서 희망으로’ 대학의 새로운 책임
② 청년과 사회를 잇는 교양교육의 새로운 방향
③ 청년 전환기 지원하는 ‘취·창업’ 정책

최근 대학가는 인공지능(AI) 기술의 급속한 발전과 함께 학생들의 AI 활용 컨닝 문제 등 디지털 윤리 이슈로 뜨거운 감자처럼 변모하고 있다. 이런 변화 속에서 대학 교육의 근간인 교양교육을 청년 대학생들을 미래 사회로 연결하는 핵심 통로로 재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교양교육의 지위 격상과 AI 시대에 맞는 커리큘럼 개편을 위해서는 대학 차원을 넘어선 국가적 관리와 시스템 개혁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 전인교육의 마지막 다리 ‘교양교육’, 중요성에서 한참 밀려나 = 현재 대학 내에서 교양교육은 전공교육에 비해 중요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교수진 배치에 있어서도 전공은 정년 트랙 교수가 주를 이루지만, 교양교육은 비정년 트랙 교수가 대다수를 차지하는 등 직업적 안정성마저 떨어지는 상황이다. 과거 대학 자율화의 명분으로 교양교육에 대한 국가적인 규제나 가이드라인이 사라진 것이 이러한 현상을 더욱 심화시켰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대교협 부설 한국교양기초교육원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2학년도 대학의 평균 졸업 요구학점은 129.42점으로, 이 가운데 학위 취득을 위해 전공 교육과정에서 요구하는 이수학점은 평균 65.48학점(50.63%)이었고, 교양 교육과정에서 요구하는 이수학점은 평균 34.60학점(26.82%)이었다. 전공 이수학점과 교양 이수학점을 제외한 나머지 일반선택 교육과정에서 이수할 수 있는 학점은 평균 29.34학점(22.61%)이다. 2019학년도에 비해 졸업 요구학점이 줄어들면서 전공 이수학점과 교양 이수학점도 줄어들었으며, 이와 같은 교양 이수학점 비율은 ‘대학 교양기초교육의 표준 모델’에서 권장하는 졸업 요구학점의 35%에 미달하는 수치다. 졸업 요구학점의 36~39%를 교양 이수학점으로 이수하게 하는 미국 대학과도 커다란 격차를 보이고 있다.

교양교육은 학생들의 인성교육이 초중등에서 끝나고 평생교육이 대학 졸업 후 시작되는 상황에서 대학 4년 동안 전인교육의 공백을 메우는 중요한 중간 다리 역할을 수행한다. 고등학교까지 일률적인 교육을 받던 청년들에게 교양교육은 대학에 와서 자신의 진로를 탐색하고 방향성을 제시하는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교양교육과목들이 전공이나 진로와 연결되지 않고 학점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본래 목적인 ‘비판적 사고력’과 ‘통합적 지식’ 함양이 아닌 최소한의 노력으로 학점을 확보하는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는 모양새다. 이는 상당수 대학 교양교육이 지식 전달 방식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수도권 한 일반대학 교양교육 담당 교수는 “ChatGPT가 일상화된 시대에 대학 교양교육은 여전히 전통적 방식으로 가르치는 곳이 다수”이라며 “교양교육의 본질은 시대를 읽는 눈을 키우는 것인데, 정작 우리는 학생들이 살아갈 미래가 아닌 교수들이 배웠던 과거를 가르치고 있다”고 말했다.

■ 다양화된 전공 엮는 ‘메인 보드’ 역할로서의 교양교육 = 물론 전통적인 방식만으로 교양교육이 운영되는 것은 아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대학의 전공교육이 융합전공, 자기설계전공, 마이크로디그리 등으로 다양화되는 만큼, 교양교육도 학생이 이수하는 주전공·복수 전공·마이크로디그리 등의 모든 지식과 경험을 통합하고 연계시키는 ‘메인 보드’ 역할을 수행 중이다. 이는 학생들이 사회에 진출해 여러 차례 직업을 바꿀 때도 다양한 지식들을 새로운 직업에 유연하게 전이하고 적용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는 것이 전문가의 설명이다. 학생들이 자신이 배운 지식들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스스로 체득하게 하고, 향후 진로를 위한 이정표가 될 수 있도록 교육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최근에는 디지털 시대로의 대전환이 급속도로 이뤄지면서 교육을 비롯한 사회 전반에 디지털 핵심기술 및 생성형 AI 활용이 늘고 있다. 이에 따라 학생들의 디지털 관련 핵심역량을 제고하고, 격차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방향으로의 교육이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이러한 교육도 대학 소재지와 가계소득기준에 따라 큰 차이가 있다. 대교협이 발간한 <대학교육> 229호 ‘대학생의 디지털 리터러시 진단과 디지털 격차 탐색’에 따르면, 가계소득수준이 높더라도 수도권보다는 지방의 대학생이 더 낮은 디지털 리터러시 역량 수준을 보였으며, 지방의 하위 소득 수준에 속하는 학생들이 가장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데이터를 분석하거나 활용하는 등 고차적 활동을 수행하거나 학습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부분에서 격차가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AI 리터러시’와 ‘디지털 윤리’ 교육에 대한 필요성도 대두되고 있다. 주요 대학에서 학생들이 챗GPT 등 생성형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집단 부정행위가 잇따라 적발되면서다.

최근 서울대 ‘통계학실험’ 중간고사에서는 대면시험임에도 다수 학생이 AI로 답안을 작성해 시험이 전면 무효화됐고, 고려대에서는 1400여 명이 수강하는 강의에서 오픈채팅방을 통한 답안 공유가 문제가 됐다. 학생들 사이에선 ‘들키지만 않으면 된다’는 인식이 만연하고, 시험뿐 아니라 리포트 작성 시에도 AI 활용이 당연시되는 분위기다.

전문가들은 이를 개인의 양심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대학 차원에서 AI 활용 범위와 부정행위 기준을 명시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AI 리터러시’와 ‘디지털 윤리’ 등의 교육을 의무화하고, 대학생이 방대한 디지털 정보 속에서 편향된 의견, 유해 정보, 자극적인 가짜뉴스를 구별하는 사실 검증 능력을 기를 수 있도록 교육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교양교육에서의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의 필요성과 함께 교양교육의 지위 격상, AI 시대에 맞는 커리큘럼 개편을 위해 국가적 관리와 시스템 개혁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그렇다면 교양교육에서의 ‘AI 리터러시’, ‘디지털 윤리’는 어떻게 진행돼야 할까.

이재성 한국교양기초교육원장은 “대학 교육은 학생들이 AI를 개발하는 개발자가 아닌 AI를 어떻게 잘 활용할 수 있을지 가르치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며 “글쓰기, 컴퓨터적 사고 등 기초 문해 교육에서는 AI를 학습 도구로 활용하는 교수법을 가르치고, 자유 학예 또는 주제별 교양 과목에서는 환경, 인간, 죽음과 같은 전통적인 주제들이 AI와 결합해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지 탐구하는 주제로 다뤄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이 원장은 “AI 자체에 대한 속성 교육도 필요하다”며 “이용자의 말에 따라 답을 바꾸는 등 AI의 유저 친화적인 속성을 이해하고, 그 메커니즘을 파악하는 ‘AI 심리와 행동의 이해’ 등과 같은 교육을 통해 AI를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전공 불문 AI 기초 교양교육’의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단순한 과목 개설에 그치지 않고 교육 시스템 전반에 AI를 녹여 넣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 원장은 “대학 자체의 역량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므로, 국가적 차원의 컨설팅이 필요하다”며 “재정 지원과 함께 각 대학의 상황에 맞는 교양교육 체계 개편 방향을 제시하고, 역량이 부족한 중하위권 대학에는 멘토 대학 연계 등을 통해 지원해야 한다”고 밝혔다.

생성형 인공지능(AI) 관련 교수학습 활용 가이드라인을 보고 있는 전북대 학생들 (사진=한국대학신문DB)
생성형 인공지능(AI) 관련 교수학습 활용 가이드라인을 보고 있는 전북대 학생들 (사진=한국대학신문DB)

■ 평가 방식의 근본적 전환과 교수자의 자질 강화 = AI 시대로의 전환은 대학의 평가 방식과 교수자의 역할 변화도 요구한다. AI를 활용한 컨닝 문제를 단순히 윤리 교육만으로 해결할 수 없으며, 근본적으로 평가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의미다.

이 원장은 “학생들에게 AI를 활용해 시험 문제를 풀 수 있도록 허용하되, 서술식 또는 서술형 평가를 확대해 지식의 자기화 없이는 정답을 쓸 수 없도록 해야 한다”며 “프랑스의 바칼로레아처럼 지식을 단순히 암기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언어로 재구성할 수 있어야만 하는 평가 환경을 조성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또한 이러한 변화를 이끌기 위해서는 교수자의 자질 강화가 필수적이다. 교양교육 교수진은 AI에 대해 쓰면 안 된다는 ‘포비아(Phobia)’적 태도와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매니아(Mania)’적 태도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AI를 활용해 학생들의 문해력과 학습 능력을 함께 높일 수 있는 새로운 교수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대학의 교수학습센터(CTL)와 협력해 교수법 연수를 활성화하고, 교수진이 새로운 시대의 도구를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이 원장은 “AI 시대의 대학 교양교육은 단순히 새로운 지식을 가르치는 것을 넘어, 시스템적인 개혁과 교수자, 학생 모두의 인식 전환을 통해 청년들이 예측 불가능한 사회를 능동적으로 헤쳐나갈 수 있는 역량을 길러주는 데 집중해야 한다”며 “국가적인 차원에서 교양교육을 통괄하여 관리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교양교육진흥법’과 같은 5년 또는 10년짜리 한시적인 법률을 제정해 전공교육에 비해 현저히 낮아진 교양교육의 지위를 끌어올리고, 자생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면 윤리적인 문제나 전인적인 성장을 위한 교육이 대학 교육의 연속성을 가지고 진행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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